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앞서 언론 인터뷰도 있었고 특검에도 출석한 직후인지라 앞서 언급한 이슈들보다는 관심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증언을 통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폭로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유진룡 전 장관을 통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내 온 지난 4년 여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유 전 장관의 증언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게는 두 개의 터닝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지내다 산하기관 기관장 인사를 거부하면서 공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979년 시작한 공직 생활을 30년 조금 안 돼 마무리한 거죠. 당시 유 전 장관은 '더 이상 공직생활 할 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를 박 대통령은 "오랫동안 지켜봤다"며 문체부 장관직을 제의합니다. 유 전 장관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박 대통령은 "젊은 문화예술인 대부분이 나를 반대했는데, 그들도 안고 갈 수 있는 역할을 해달라"며 재차 장관직을 권했고, 이에 유 전 장관도 '보람있는 일'로 생각해 승낙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2013년 8월 김기춘 씨가 비서실장으로 부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고, 대통령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유 전 장관은 증언했습니다. 정부에 반대하고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 '응징'하고 불이익을 주라는 요구가 김 전 실장으로부터 직접, 또는 모철민 전 교육문화수석을 통해 내려왔다는 겁니다.
● 터닝포인트 ② - 2014. 4. 16. 세월호 참사
그래도 세월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박 대통령의 태도는 조금 달랐다고 합니다. 김 전 실장의 '전횡'이 시작되자, 그는 2014년 1월 29일 모철민 당시 교육문화수석이 동석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 면담합니다. 그 자리에서 유 전 장관은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도 안고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일 맡겨줘서 (내각에) 들어왔고, 그게 아니라면 여기 있을 이유 없다. 자신있다"고 간언했다고 합니다. 그때 박 대통령의 대답은 "원래 했던 것처럼 그대로 하세요."였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긍정적 대답을 얻은 그는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모 전 수석에게 "모 수석이 확인하신 것처럼 대통령이 분명히 약속했다"면서 "나는 대통령 지시를 받을 의무가 있지 김기춘 실장 지시를 받을 의무가 전혀 없다. 대통령 약속대로만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동안은 김 전 실장의 부당한 지시는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던 분위기가 바뀐 것이 2014년 4월 16일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이 해경을 해체하는 등 정부조직 개편안 등을 국무위원과 상의하지 않고 결정하자, 유 전 장관이 이의를 제기했던 겁니다. 또, 대통령이 지시하지 않으면 국무위원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 또한 고쳐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전과 달리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고 유 전 장관은 증언했습니다. 특히 정부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을 땐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의견을 제가 들어야 합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6월 처음 본 블랙리스트가 A4용지 한두 장 정도에 손글씨로 돼 있었고, 수십 명 정도의 인사가 들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최근 언론을 통해 확인된 숫자는 9천여 명이고, 정황상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아킬레스건으로, 그리고 또 역린으로 여기면서 쓴 소리에 귀를 막았던 것의 결과물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글의 마무리는 현재 SBS 8시 뉴스를 진행하는 김성준 앵커의 2017년 1월 23일 클로징 멘트로 대신하겠습니다. ( ▶ [김성준의 클로징] "대통령도 쓴소리에 귀 기울였더라면")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 안된다고 했더니 묵묵부답이었다죠. 오히려 장관이 물러나야 했습니다. 저희는 시민단체에 비판적인 일일 뉴스 모니터를 부탁합니다. 쓴소리로 지적받으면 억울하기도 하지만, 뉴스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뉴스나 국정이나, 국민 상대로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대통령도 쓴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좋았을걸. 너무 늦었습니다. 뉴스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