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라는 의미인데,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오래 지속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난 21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구속됐습니다. 1960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김 전 비서실장은 50년 넘게 공직에 있었습니다.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국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하지만 특검에 소환된 지난 22일, 김 전 비서실장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권불오십년', 무엇이 50여 년간 권력을 누린 김 전 비서실장의 말로(末路)를 서울구치소로 향하게 만든 걸까요?
오늘 '리포트+'에서는 박정희 정권에서 '똘똘이'라 불리던 김 전 비서실장이 박근혜 정권에서 '법꾸라지'로 불리기까지, 그의 행적을 살펴봤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까지 56년 동안 요직에 있었던 김 전 비서실장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쥐락펴락한 인물입니다.
김 전 비서실장은 1972년 법무부 검사 시절,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1974년에는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현장에서 체포된 문세광을 심문해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을 똑똑하다는 의미에서 ‘김 똘똘이’라고 불렀습니다.
육 여사 저격범 사건을 잘 마무리 지은 공으로 김 전 비서실장은 35살의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국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김 전 비서실장은 대공수사국에서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잡아들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1977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조작사건'과 '2차 인혁당 사건'도 그가 중앙정보부에 있을 당시의 사건들입니다.
두 사건 모두 재심에서 국가가 조작한 간첩사건으로 결론이 나 무죄판결이 났지만, 김 전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김 전 실장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탄탄대로를 걸었습니다. 1986년에는 검사장, 노태우 정권 시기인 1988년에는 검찰총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2년 후인 1991년에는 최연소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됐습니다.
김 전 비서실장이 ‘미스터 법질서’, ‘법의 지배자’ 등으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법의 심판대 앞에 설 때마다 법률 지식을 무기 삼아 법망을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행어를 낳은 ‘부산 초원복집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92년, 김 전 비서실장은 공직 인생에서 첫 번째 위기를 맞게 됩니다.
14대 대통령선거를 사흘 앞둔 1992년 12월 15일, 통일국민당 후보 정주영(현대그룹 회장) 후보 측은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당시 법무부장관이던 김 전 비서실장이 대선을 앞두고 부산시장과 경찰청장 등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자고 모의한 것이 정주영 후보 진영의 도청으로 밝혀진 겁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가 유행어처럼 퍼지면서 당시 김영삼 후보의 지지 열풍이 거세게 일어났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검찰은 김 전 비서실장을 불구속기소 했지만, 그는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청을 했습니다. 199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김 전 비서실장에 대한 재판은 공소 취소로 없던 일이 됐습니다.
1996년에는 국회의원으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김 전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섰습니다.
2013년, 박 대통령이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으로 사실상 정치적 야인이었던 그를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겁니다.
74세의 나이로 청와대에 입성한 김 전 비서실장은 '왕 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렸습니다. 그의 권력을 가늠할 수 있는 별명입니다.
50여 년간의 공직 생활 중 40여 년 동안,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부녀 보좌'라는 화려한(?) 경력을 가지게 된 김 전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 부녀를 '주군'으로 부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김 전 비서실장의 권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김 전 비서실장은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김 전 비서실장의 소개로 최순실 씨를 알게 됐다’고 검찰에 진술한 반면, 김 전 비서실장은 ‘최 씨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주장해 야당 의원들로부터 '법꾸라지'(법률 + 미꾸라지)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산 초원복집 사건으로 불구속기소 된 지 25년 만의 일입니다.
서울 구치소에서 김 전 비서실장은 '김 똘똘이', '미스터 법질서'도 '법의 지배자'도 아닌 '수용자 번호'로 불리게 됐습니다.
(기획·구성 :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