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접수는 8시 52분, 대통령 첫 지시는 10시15분…그 사이 '83분'동안에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대통령의 위치와 동선은 국가기밀로서 어떤 나라 어느 정부에서도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행적에 대한 유언비어가 횡행해 결국 국회 국정조사, 특별검사 수사, 탄핵소추까지 이어져 국가 혼란이 가중되는만큼 부득이하게 당일 행적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리인단을 통해 공개된 행적은 지난해 11월 19일,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올린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글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4년 4월 16일, 참사는 오전 8시 49분에 시작됐다. 배가 기울기 시작했던 시점이다. 단원고 학생이 전남 119상황실로 오전 8시 52분에 첫 신고를 했다. 해경은 이 때 사고를 처음으로 인지했다. 세월호 항해사가 제주VTS(해상교통관제센터)에 8시 55분에 추가로 신고를 한다. 9시 20분 해경과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이 첫 통화를 했다.
답변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받은 건 10시다.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고 상황 및 조치 현황보고서(1보)’를 10시에 ‘서면보고’ 받았고, 박 대통령은 15분 뒤인 10시15분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렸다. 해경 사고 접수부터 박 대통령 서면보고까지 1시간8분, 첫 구두 지시까지는 1시간23분이 걸렸다. 사고 발생 초기 1시간23분(83분)동안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박 대통령 측의 답변은 없었다.
● 90% 이상 기운 배에서 보낸 마지막 메시지 “보고싶어요”…박 대통령의 지시는 “객실을 철저히 확인하라”
대통령의 첫 지시가 내려지고 2분 뒤인 10시17분 세월호에서 마지막 메시지가 발송됐다. “엄마 아빠…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요, 보고 싶어요 ㅠㅠ 90% 이상, 기울었데 너무 무서워”라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의 첫 지시가 나왔을 때는 이미 세월호가 많이 기운 상태였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세월호는 10시 17분에 108도 기울어졌고, 10시 31분에 완전히 침몰했다. 그런데 답변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첫 지시(10시 15분,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통화)는 “단 한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여객선 내 객실을 철저히 확인해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배가 거의 침몰한 상황인 걸 알았다면 이런 지시를 내렸을까? 4.16가족협의회는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상투적인 지시로 왜 내려졌는지 의문 투성이”라고 지적했다.
● "TV가 없다"…"그럼 그 시간에 무엇을 했나"
현장 상황과 동떨어진 지시를 두고 “텔레비전만 봐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근무한)관저 집무실엔 TV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를 인지한 것은 9시19분 YTN 첫 속보를 통해서다. TV를 보고 청와대가 해경에 전화(9시20분)를 걸어 상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국회 청문회에서 출석해 당시 통화(10시15분)에서 박 대통령에게 “(상황파악을 위해)YTN을 보면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은 속보를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TV를 봤다면 실시간 상황 파악이 가능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대통령이 참사 당일 아침 9시부터 관저에서 정상 근무를 했다”며 성실히 직무 수행했다고 주장했는데, 9시부터 10시까지는 물론, 첫 서면보고를 받은 10시부터 첫 지시(10시15분)를 내리기까지 TV도 보지 않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때문에 “관저에 TV가 없다”는 박 대통령 측의 방어논리는 제대로 뒷받침을 받을 수 없다.
● TV는 없지만, 언론 탓?…꼬이는 해명
박 대통령은 허술한 지시와 부실한 대응의 원인 중 하나로 “언론의 오보”를 들었다. ‘전원 구조’라는 언론 오보로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측은 “전원 구조 보고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오후 2시50분에 알게 됐고, 오후 3시 중대본 방문을 바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는데 왜 관저에만 머물렀느냐”는 세월호 7시간의 핵심 의혹을 언론의 오보 탓으로도 돌린 것이다.
박 대통령 측 주장대로라면 관저 집무실에 TV가 없지만 오보가 방송되던 11시 즈음에만 어디선가 잠깐 TV를 보고 잘못된 정보를 얻은 후 몇 시간 동안 TV를 보지 않았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또는 박 대통령이 검토했다고 주장하는 당일 참사 관련 7차례에 걸친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 보고서’(11시부터~14시 50분 사이 서면 보고 기준)는 11시 즈음 언론 오보에 기반해 작성된 후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 해경-청와대 녹취록…대통령은 보고서를 읽었을까
그런데 참사 당일 ‘해경-청와대 핫라인 통화 녹취록’을 보면 10시52분 청와대는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청와대가 “배가 완전히 뒤집어졌는데 승객들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자 해경은 “대부분 선실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선실에서 못나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박 대통령 측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박 대통령이 해경 보고를 뺀 다른 기관의 보고를 받았거나, 청와대가 중간에서 관련 보고를 누락 또는 부실하게 했거나, 박 대통령이 관련 보고서를 받고도 읽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녹취록을 보면 청와대가 해경이 파악한 구조 현황을 공식적으로 것으로 하겠다고 답한 점, 해경의 보고를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고 답한 점에서 앞의 2가지는 가능성이 낮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관련 보고서를 받고도 읽지 않았다는 가정만 남는다.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는 박 대통령 측 주장과는 상반된다.
박 대통령이 책임을 언론으로 돌린다면 오히려 탄핵 사유에 힘을 실어준다. 인명 구조 책임은 정부에 있고, 재난 수습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는 잘못된 정보를 정정해 나갈 책임도 있다. 박 대통령 측의 주장은 대통령의 무능함을 자인한 것으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대통령직 성실 수행 의무 위반’, 두 가지 탄핵 사유를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 구체적 행적과 증거가 부족한 '반쪽짜리 답변서'
박 대통령은 답변서를 통해 아침 9시53분부터 오후5시15분까지의 행적 33개를 밝혔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이미 공개했던 것 외에 '12시 54분 보고서 검토'와 '오후 3시 35분 머리 손질' 정도가 늘어났다. 추가로 “신체 컨디션이 좋지 않아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했다”며 관저에서 근무한 이유를 댔고, 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이 관저에서 대면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답변서에 명시된 9차례 통화(세월호 관련 8차례), 두 차례 대면보고, 머리 손질(20분), 서면 보고서 검토 외에 나머지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보고서 검토와 통화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보면 여전히 공백이 많다.
또, 박 대통령이 주장한 통화 중 12시50분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의 통화기록만 헌재에 제출했고, 정작 핵심인 김장수 실장과의 통화기록은 제출하지 않았다. 때문에 실제로 통화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게다가 “보고서를 검토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 보고서 내용과 보고서 검토 후 내린 상세 지시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아 실제 보고서를 검토했는지 조차 의심받고 있다. 이 때문에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모임인 ‘4월16일의 약속국민연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린 자료는 없고, 대리지시 의혹만 드러났다”며 “ 박 대통령의 거짓말을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고 조기 탄핵을 요구하고 나섰다.
헌재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판관이 직접 나서 질타까지 했다. 이진성 재판관은 “피청구인(대통령)의 기억을 살려서 당일 행적을 밝히라고 했는데, 오늘 답변서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말했다. 의혹 해소와 탄핵 사유 반박을 목적으로 제출한 답변서가 도리어 박 대통령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디자인/개발: 임송이
리서처:장동호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