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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들른 한 백화점에 실제로 걸린 가격표가 저랬다. "지금 사지 않으면(그래서 행사 기간이 끝나면) '손해일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지갑을 꺼내게 한다"는 게 그동안의 '할인 행사 공식'이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주요 백화점들은 새해 이틀째인 1월 2일부터 신년 할인 행사를 일제히 시작했다. 통상 보름 정도 했던 걸 이번엔 닷새 정도씩 기간도 늘렸다. 손님이 몰리는 주말을 앞두고 했던 관례도 깨고 손님이 가장 적다는 월요일부터 시작했다. 파격은 그만큼 매출 부진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강남점을 증축하면서 매출이 늘었다는 신세계백화점 외에 롯데와 현대백화점은 11월, 12월 매출이 전년 대비 1% 정도씩 감소했다. 10월부터 1월까지 할인 행사 기간이 집중돼 있다는 걸 감안하면 충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매출 부진이다. '할인 행사 공식'이 깨진 것일까.
● '1년 내내 세일'…"세일이 피곤해요"?
'할인 행사 공식'이 잘 통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1년 내내 세일'처럼 느껴지면서 '세일 피로증'이 왔다는 게 이에 대한 유력한 설명 중 하나이다. 즉, 할인 행사는 늘 하는 것 같으니 지금 안 사도 다음 행사 때 사면 된다, 혹은 내내 할인 행사하고 있다면 원래 가격이 '정가' 맞나? 가격 올려놓고 할인한다고 생색내는 거 아냐, 라는 의구심 내지는 불신이 생긴 것도 덧붙은 설명이다. 백화점들의 입장은? "오해"라고 한다. 특히 '1년 내내 세일'은.
그럼 백화점 할인 행사는 1년에 며칠이나 할까? 할인 행사하는 달은 정해져 있다. 1월, 4월, 7월, 10월, 11월 이렇게 다섯 달이다. 현재 할인 행사 기간에 제한은 없으나 보통은 20일을 넘기지 않는다. 2016년 롯데백화점은 모두 95일 동안 정기 할인 행사를 했다. 현대백화점은 88일, 신세계백화점은 81일이다. 2013년부터 보면 롯데는 101일, 현대 101일, 신세계 101일, 짠 것처럼 같은 기간 정기 할인 행사를 했다. 2014년엔 롯데 102, 현대 102, 신세계 102로 역시 같다. 2015년, 롯데 97, 현대 90, 신세계 75로 신세계백화점이 확 줄여버렸다. 2010년대 중반을 놓고 보면 백화점 3사의 정기할인 행사 기간은 2014년 정점을 찍었다가 내려온 상황이다.(2014년엔 세월호 참사, 2015년엔 메르스 사태, 2016년엔 대통령 탄핵 사태가 있었으니 어느 해가 딱히 별일 없었다고 하긴 어렵다.) 백화점의 정기 할인 행사 기간은 2013년 이후엔 1년에 100일 안팎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백화점이 늘 할인 행사 중"이라는 게 오해라는 설명이 맞다. 하지만 손님들이 매일 백화점에 가는 건 아니다. 1-2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 이들도 많다. 연말 연초만 보더라도 10월, 11월, 12월, 1월에 계속 할인 행사가 있었다. (11월 할인 행사는 12월 초까지 진행) 10월부터 보더라도 백화점은 계속 할인 행사 중이다. 각 할인 행사 기간 사이에 최소 20일의 간격을 둔다고 하지만(종전거래가격 유지기간 20일이라는 규정은 없어졌으나 표시광고법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키고 있다 한다.) 손님 입장에선 적어도 연말 연초에는 늘 할인 중으로 착각 혹은 오해할 만하다.
● "1년에 300일 세일" 30년 전 기사…지금은?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앞서 적었듯이 2016년 롯데, 현대, 신세계백화점의 정기 할인 행사 기간은 95일, 88일, 81일이다. 다만 30년 전처럼 브랜드 세일, 각종 사은행사 등을 합치면 이 기간은 165일, 180일, 144일로 각각 늘어난다. 1년의 절반에서 3분의 1 정도는, 넓게 봐서 '할인 행사 중'이다. "입점한 각 업체들이 알아서 하는 개별 할인 행사까지 합치는 건 말이 안 된다, 구매금액 따라 상품권 제공하는 사은 행사까지 할인 행사라고 할 순 없지 않냐....."는 게 백화점 측 항변이다. 일리 있는 설명이나 손님 입장에선 큰 차이를 느끼진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시큰둥해지는 것 아닐까. 원래 가격은 이전보다 믿음이 덜 가고 할인 행사는 늘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니.
● 백화점의 선택은? 소비자의 선택은??
신년 할인 행사의 효과는 어떨까. 일단 개시 이후 각 백화점의 매출은 나쁘지 않다. 롯데는 신년 세일 첫 주 매출이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4% 정도 늘었고 현대 역시 13%가량 매출이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연말 크게 위축된 소비가 회복됐다고 하기엔 조심스럽다는 게 대체적인 첫 주 관측이다.
백화점들은, 백화점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 누적된 '세일 피로증'을 극복하고 여기에 온라인, 모바일 쇼핑에 익숙해진 20-30대를 공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 또한 주어진 조건이다. 자문을 구했던 여준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싸게 사겠다면 온라인, 질 높은 서비스를 통해서 대접을 좀 받아야겠다면 백화점, 그리고 가족이 함께 가서 다양한 소비와 문화생활을 한꺼번에 즐겨야겠다면 도시외곽의 대형 쇼핑몰을 찾는 그런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라면서 일종의 '낀 세대'가 돼 버린 백화점의 위상, 그리고 현시점에서 소비자가 택할 방식에 대해 정리했다.
백화점이 뭔가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란 믿음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지만, 상품의 가성비나, 다양한 문화생활을 함께 즐기는 면에선 온라인쇼핑과 복합 몰을 넘어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시점이다. 할인 행사 위주의 마케팅 전략은 넘어설 필요가 있고 백화점도 사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의 패턴과 미래의 전략이 혼재된 시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