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4억 화재책임 누명 2년만에 벗겨준 화재조사 소방관

4억 화재책임 누명 2년만에 벗겨준 화재조사 소방관
"벌꿀 창고가 홀라당 타버린 것도 억울한데 우리 창고에서 난 불이 옆 건물로 옮겨 붙었다고 저한테 돈을 물어내랍니다. 소방관님한테 가면 무슨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만 듣고 아산에서부터 부천까지 올라왔습니다. 이것 좀 봐 주시오."

2012년 가을 경기소방본부 부천소방서 화재조사관 이종인(47) 소방장을 찾아온 80대 초반의 조 모 씨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달라며 쇼핑백에 가득한 사진을 내밀었습니다.

조 노인이 보여준 사진에는 화재로 완전히 타버린 창고 건물과 반쯤 탄 이웃 원룸건물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불이 난 때는 2011년 5월.

화재 직후 '원룸건물에서 처음 불이 나는 것을 봤다'는 주위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원룸건물주는 조 노인에게 창고 피해를 보상해주기로 구두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약속했던 피해보상은 이뤄지지 않은 채 해를 넘겼습니다.

보상을 기다리던 그에게 날아온 것은 '원룸건물에 지급한 화재보험료 3억8천만 원을 물어내라'는 화재보험회사의 통보였습니다.

경위를 파악해 보니, 목격자의 증언과 달리 경찰의 화재 원인조사에서는 자신의 창고가 발화점으로 결론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화재보험에 들었던 원룸건물주는 보험금을 받았고, 보험회사는 화재조사 결과를 근거로 조 노인에게 불이 난 책임을 물어 구상권을 행사했습니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했다가 졸지에 4억 원에 가까운 거액을 물어내게 된 조 노인은 '누명'을 벗으려면 여기저기를 수소문했고 '부천소방서 이종인 화재조사관을 찾아가 보라'는 말에 이 소방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이 소방장은 2004년 화재조사관으로 발령을 받은 후 화재조사 분야에 매진해 2010년 미국 화재폭발조사관(CFEI) 자격을 취득하는 등 조 노인을 만났을 당시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화재조사관으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창고에는 꿀이 든 드럼통과 냉장고 밖에 없었다'는 설명을 들은 이 소방장은 화재조사 결과에 의문을 품게 됐고 '어르신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화재가 난 지 1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사진만으로 기존 조사 결과를 뒤집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조 노인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는 발화점을 유추하기 불가능했습니다.

이 소방장은 조 노인에게 화재를 진압한 소방서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도록 해 진화 직후 소방서가 찍은 사진 100여 장을 확보했습니다.

그는 비번 날을 이용해 현장 사진을 하나하나 분석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당시 화재 현장이 눈에 보이리만치 생생히 재현됐습니다.

이 소방장은 화재 확산 패턴, 유리파편이 흩어진 형태, 플라스틱의 녹은 모양 등 다섯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발화점이 조 노인 창고가 아니라 원룸건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 노인과 보험회사의 구상권 소송이 벌어진 법원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증언했습니다.

결국, 2013년 3월 보험회사는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억울한 화재책임을 벗은 조 노인 부부는 이 소방장을 다시 찾아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종인 소방장은 오랫동안 화재조사 분야에서 활약하면서 숱한 화재의 원인을 밝혀내 피해복구와 예방에 기여한 공로로 오늘(16일) 제42회 소방안전봉사상 대상을 받습니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하는 화재조사관은 소방조직 내에서도 비인기 한직이라고 합니다.

이 소방장은 "화재 피해를 보고도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억울하게 책임을 지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화재조사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면서 "(상은) 퇴직 때까지 더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