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물건 사기 전에 인터넷으로 제품 후기를 검색해보면 칭찬 일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블로거들에게 돈까지 줘가며 광고성 후기를 의뢰하는 기업들이 제품의 단점을 지적한 후기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며 게시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생생리포트, 김종원 기자입니다.
<기자>
세탁기를 분해한 사진입니다.
부품 여기저기 먼지가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산 지 10달 밖에 안 됐는데 빨래만 했다하면 먼지가 붙어 나온다면서 세탁기 주인이 블로그에 올린 후기입니다.
'뜯어보니 세탁기 설계가 잘못 됐더라', '먼지 거름망이 있어도 소용이 없더라' 이런 나름의 분석부터, '사기 당했다', '이 기업 세탁기는 사지 말라' 같은 감정적인 표현까지 섞여 있습니다.
공감 댓글이 300건 넘게 달렸지만 이 후기는 올린 지 20여 일 만에 인터넷에서 사라졌습니다.
해당 기업이 명예훼손이라며 포털 사이트에 게시 중단을 요청해 차단된 겁니다.
이번엔 치킨입니다.
치킨 상자 한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사실은 쿠폰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알고 보니 해당 점주가 이 쿠폰만 몰래 떼어내고 판매한 겁니다.
치킨 소스 역시 같은 회사 다른 점포 제품과 사진만 비교해 봐도 티가 날 정도로 부실합니다.
이 손님은 서비스가 형편 없다는 후기를 남겼는데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기업이 명예훼손 문제를 제기해 차단됐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취재진이 찾아낸 것만 수십 건, 이 후기 작성자들과 인터뷰를 시도해봤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업으로부터 명예훼손 경고를 받은 소비자들은 모두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후기들은 정말로 명예훼손에 해당할까? 변호사들과 함께 법리 검토를 해봤습니다.
4건의 사례를 문의한 결과 모두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합니다.
제품 후기는 공익에 기여하는 측면이 강해서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김도영/변호사 : (후기에는 과격한 표현은 절대 들어가면 안 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과격한 표현이 다소 들어갔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작성이 된 것이라면 비방의 목적(명예훼손)은 부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도영/변호사 : (썼던 후기 내용 중에 나중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밝혀지게 되면 그때는 처벌을 받나요?) 아닙니다. 전체적인 내용이 객관성에 부합하거나, 그렇게 판단될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하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은 최근 나온 대법원 판례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박준상/변호사 : 업체 입장에서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이 안 될 수 있단 사실을 알면서도 임시중단 조치를 하고 나면 블로거들이 위축될 수 있고 더 이상 게시를 안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명예훼손을 들고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행법은 소비자 후기에 대해 기업체가 명예훼손 등의 문제 제기를 할 경우 작성자 동의 없이도 30일간 글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을 감안해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취재 : 이병주, 영상편집 : 박선수, VJ : 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