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울타리 때문에 멸종 위기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울타리에 가로막혀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고 있는 겁니다.
이용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멧돼지 차단 울타리가 설치된 강원도 인제의 한 숲속입니다.
지난달 28일 밤, 산양 1마리가 이 울타리에 가로막혀 돌아 나옵니다.
이튿날 아침에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노루도 울타리에 길이 막히자 주변을 서성댑니다.
2년 전 경기도 파주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한 뒤 치기 시작한 멧돼지 차단용 울타리는 현재 강원도 고성까지 1천400km 구간에 설치됐습니다.
이 울타리의 높이는 1m 50cm가량 됩니다.
산양 등 야생동물이 뛰어서 넘어가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태입니다.
먹이를 찾으러 가는 길이 막히고 서식지가 단절된 겁니다.
그 결과 울타리 근처에서는 죽은 산양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강원도 화천과 양구지역 울타리 근처에서 죽은 채 발견된 산양만 19마리입니다.
대부분 굶거나 탈진해 죽었습니다.
지난달 초 울타리에 산양이 다닐 수 있도록 사다리를 설치했지만, 효과는 미미합니다.
[김동주/국립생태원 전문위원 : 산양 생태통로를 이용하는 모습은 아직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산양 서식지에서는 울타리를 일부 걷어내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즘 멧돼지 방어선이 100㎞ 남쪽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안재용/양구 산양증식복원센터 사무국장 : 중간 중간에 개방을 해서 이동로를 조금 개방을 해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나….]
곧 다가올 겨울 폭설로 산양의 생존이 더 위협받기 전에 신속한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영상취재 : 김민철, 화면제공 :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