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학·연수·자격증 취득으로 시간을 낭비한 사람에게 채용과정에서 불이익을 주고,
- VR(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배우자 탐색 기술을 개발하고,
- 고학력 여성이 학력이나 소득이 낮은 배우자를 택(하향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
이 같은 대책을 제안한 사람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입니다. 연금 관련 정책을 연구해온 경제학 박사인데, 최근 저출산 해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자 지난해 6월부터 이 문제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80조 원을 투입해 다양한 정책을 써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니,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보고자 시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원종욱 박사가 위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대책을 제안한 <제13차 인구포럼>에는 김상호 보건사회연구원장도 참석했는데, 김상호 원장도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해보고, 결혼 전 ‘교육 투자 기간’과 ‘배우자 탐색 기간’을 줄이면 혼인율을 높일 수 있다는 공식을 도출해낸 것까지는 그렇다 칩시다. 결혼을 둘러싼 수많은 변수를 외면하고, 아주 단순한 모델을 만들었다고 애써 이해해 봅시다. 만약 각각의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 수만 있다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책으로 제안한 것들이 어떻습니까?
“일자리가 부족해 불가피하게 휴학하고 연수를 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대책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이렇게 답합니다. “일자리 늘리는 것은 좋지만, 일자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기업과 지원자가 1년이라도 빨리 매칭(matching)되게 해 주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실현 가능성도 낮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 의지 없이 현상만 바꿔보자는 것을 과연 대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취업을 위해 불가피하게 휴학하고, 힘겹게 스펙을 쌓으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젊은이들, 그리고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수많은 변수 때문에 번민하고 있는 여성들만 분노할 일이 아닙니다. 이번 대책을 통해 본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를 둘러싼 논의와 정책의 문제점은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다는 점입니다.
<제13차 인구포럼> 하루 전인 지난 23일에 열린 <제1차 한일 사회정책 정례포럼>에는 ‘저출산 고령화의 충격과 대응’이라는 주제 하에 한일 두 나라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각국의 저출산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일본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카츠마타 유키코 박사가 발표한 내용 가운데 일본의 ‘저출산 정책의 기본방침’을 꼭 공유하고 싶습니다.
- 결혼하고 출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
- 결혼이나 출산을 원치 않는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한다.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려는 사람이 결혼할 수 있고,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이런 역할을 하도록 연구하고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국책연구소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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