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꼬마 난민 주검으로 돌아와 묻힌 고향땅 시리아 코바니

꼬마 난민 주검으로 돌아와 묻힌 고향땅 시리아 코바니
파도에 밀려 터키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살배기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가 4일 고향인 시리아의 코바니로 돌아왔다.

코바니를 떠나 유럽행을 시도하다 바닷속에 빠져 익사하고 나서 주검으로 고향에 복귀한 것이다.

아일란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는 이날 아일란을 포함해 두 아들, 아내의 시신과 함께 코바니로 돌아와 가족의 장례식을 치렀다.

아버지는 유럽행을 시도하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 장례식에는 수백명의 지지자들과 쿠르드족 관리, 시민 등이 참석했다.

아일란 가족에게 코바니는 자신의 고향이자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피해 부득이하게 떠나야만 했던 분쟁지이면서 결국엔 다시 돌아와야 했던 비극의 땅이었다.

시리아 북부와 터키 남부 국경 지대에 있는 코바니는 시리아 내전 기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동맹군과 쿠르드족 민병대가 IS와의 교전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만큼 이 지역을 차지하려고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가 오랫동안 벌어졌다.

아랍어로 '아인 알아랍'으로 불리는 코바니의 비극은 2014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가 관리를 해 오던 코바니를 IS가 대대적으로 공격하면서 양측의 본격적인 전투는 시작됐다.

IS는 몇달 뒤인 2014년 9월 코바니 장악을 선언했고 2015년 1월까지 이곳을 계속 점령했다.

그 사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군은 코바니를 집중적으로 공습했고 쿠르드 민병대는 측면 지원을 했다.

IS는 동맹군과 쿠르드군의 공습에 맞서 코바니에서 전력을 집중하고, 선전용 동영상도 이곳에서 촬영해 배포했다.

양측의 공습이 치열했던 2014년 10월~2015년 1월 코바니에서 1천800여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IS가 지난 6월 코바니를 급습해 민간인 200여명을 학살했다고 쿠르드계 매체인 루다우가 보도하기도 했다.

양측 교전이 지속하면서 코바니 시내의 건물들은 초토화됐다.

현지 주민 중 상당수가 인접국 터키로 탈출했고 코바니는 유령의 도시로 바뀌었다.

아일란의 가족도 IS가 공격해오자 올해 초 터키로 피란길에 올랐다.

이후 그리스 코스섬을 향해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뒤집혀 변을 당했다.

코바니는 2015년 1월부터 쿠르드족 민병대가 다시 장악한 상태다.

올해 들어 다수의 쿠르드족 주민이 고향으로 복귀해 재건을 시작했다.

코바니는 시리아 내전 이전에는 인구가 4만5천명에 달했다.

쿠르드족이 다수를 차지했고 소수 민족으로 아랍인과 투르쿠멘족, 아르메니아인들이 함께 거주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