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가 발생했다면 다 공개해야지, '정오표에 탑재되지 않은 오류'라니?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대다수의 반응이 "절대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수험생들에게 아주 작고 사소한 혼란이라도 줄 수 있는 일체의 오류는 나와서는 안되기 때문에, EBS가 정오표로 오류를 열심히 공개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의 반응이었습니다. "수능 시험과 70%나 연계되는, 그 자체가 '수능 예비 문제'인데, EBS가 그렇게 '간 큰 짓'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반응까지 있었습니다.
의문은 사소한 곳에서 풀렸습니다. '윤문'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닥치는 대로 사람을 만나고, EBS 자료를 뒤지다가 '윤문'이라는 글자를 만나게 된 겁니다. 사전엔 '글을 윤색하여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글의 의미와 주제, 내용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글을 다듬는 걸 '윤문'이라고 하는 겁니다. 요즘엔 사실 거의 쓰지 않는 말이지요.
EBS 2013년 문건을 보니 '오류-오탈자-윤문'이라고 기준이 나눠져 있고, 오류나 오탈자는 문제해결과 내용이해에 지장을 주는 것, 윤문은 그렇지 않지만 교재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정하는 것이라고 돼 있었습니다. (중요도로 보면 1단계 오류, 2단계 오탈자, 마지막 3단계가 윤문입니다.)
취재과정에서 감사원이 최근 EBS에 대한 정기감사를 통해 'EBS가 오류와 표기정정(2012년까지 '오탈자'로 분류), 윤문 등 오류를 3등급으로 나눠서 관리했고, 등급을 정하는 과정에서 EBS의 오류 축소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EBS 내부 기준에 따르면 오류나 표기정정 사안인데, 사후 처리 과정에서 표기정정이나 윤문으로 단계를 낮춰서 통계를 '관리'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그러고 나니, 이 글 처음에 언급했던 문건 내용이 이해가 됐습니다.
(대내외 기관의 요구=감사원 감사, EBS 교재 출간 후 품질관리 및 신뢰성 제고=사후관리 부실 지적, 교재의 오류 및 표기정정 분류가 부서원 논의에 따라 결정=EBS에 유리하게 적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 그래서 '다소 방어적으로 적용된 기존 오류와 표기정정 사안에 대해 EBS의 오류 축소 의혹 제기'라는 말도 나온 것이겠죠.)
문서 작성 시점인 4월 2일이 감사원 감사가 마무리되던 시점이라 감사원 지적 사항에 대한 내부 대응 회의가 있었고 감사원에서 '윤문'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간 EBS가 외부에 알리지 않고 내부적으로만 처리해왔던 '윤문'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런데 EBS 임원 회의에도 '윤문'은 보고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용어도 쓸 수 없고... 그래서 이런 용어 대신 '정오표에 탑재되지 않은 오류 사항'이라고 풀어 쓰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큰 틀에서 이런 취재과정을 거쳐 'EBS가 지난 2년간 크고 작은 오류 226개를 비공개 처리하고, 내부 자료로 관리해왔다'는 보도를 하게 됐습니다.
표기정정도 대외적으로 통계숫자는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EBS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오표 엑셀 파일을 다운받아서 (엑셀 파일도 총합이 아니라 정오표 한건당 하나씩이라 엑셀 파일을 몇십개나 다운받고) 일일이 세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제 부탁을 받고 이걸 다운받느라 SBS 인턴 대학생들이 엄청 고생했지요.)
게다가 '윤문'은 아예 '대외비', '외부발송 금지'로 관리돼왔고, EBS 담당 부서 안에서 자신들이 판단하고 자신들만 공유하고 수험생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교재 원본 파일만 수정해 왔습니다. 그런데 교재가 출판되고 서점에 깔리고 나서 발견되는 오류들을 반영해서 원본파일을 수정하고 추가 출판하는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어느 수험생은 '오류-표기정정-윤문'이 하나도 반영 안 된 초판 인쇄본으로 수능을 준비할 것이고 (대다수의 수험생이 EBS 교재 나오는 첫 날 구입하지요), 첫날 교재가 품절돼 며칠을 못사고 발을 동동 구르다 늦게 교재를 입수한 수험생은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운 좋게도 몇개의 오류와 표기정정, 윤문이 정정된 책으로 수능을 준비하게 되겠지요.(수능 교재 재인쇄본 사는 학생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오류를 어디까지 공개하느냐, 비공개하느냐, EBS측의 자의적인 판단 때문에 수험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복불복' 상황에 놓이게 되는 현실이 과연 정상적인 걸까요.
보도가 나간 직후, EBS 측은 저에게 '오보를 낸 취재 기자는 사과하고, SBS 보도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보도자료를 내고 SBS 보도가 오보라는 내용을 한번 더 강조했습니다.
다음 취재파일을 통해 취재 과정에서 EBS가 '정오표에 탑재되지 않은 오류'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EBS의 논리는 어떤 것인지, 방송에는 공개하지 않았던 추가 문건들과 자료들을 시청자 여러분께 보여드리며 설명드리겠습니다.
<참고>
EBS 수능연계교재 정오 컨퍼런스 개선 방안
20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