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있어보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지난달 21일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평온한 토요일 저녁을 보내던 검찰수사관 A씨는 순간 직업병이 도지는 것을 느끼며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습니다.
한 지상파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 나와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 대역 배우가 분명히 4년 전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도망간 정 모(52)씨가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A씨는 정 씨 같은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는 서울 서부지검 자유형(신체적 자유를 빼앗는 형벌) 미집행자 검거팀 소속 수사관이었습니다.
범행 후 달아난 피의자에 대한 공소시효는 정지되지만, 자유형 미집행자에 대한 형의 시효는 범죄자가 달아나고 나서도 진행됩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형이 확정된 장기미제 사건에 대해 특별 검거팀을 구성해 운영 중입니다.
그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 스마트폰에는 그가 행방을 추적하고 있는 자유형 미집행자들의 사진이 담겨 있었습니다.
"맞아, 이 사람이야." 4년이 흘렀지만 TV에 버젓이 나온 대역배우는 바로 스마트폰 화면 속 '도망자' 정 씨의 얼굴이었습니다.
정 씨는 지난 2008년 지인 2명으로부터 2억 원 상당을 빌렸다가 갚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2011년 법원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법정구속되지 않은 틈을 타 그대로 도주했고, 궐석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됐습니다.
수사팀이 방송국에 확인한 결과 그 배우가 방송국에 등록한 이름은 정 씨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쓰는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분석해 보니 정 씨의 친형과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역배우가 정 씨라는 사실을 확신한 수사팀은 같은 달 25일 정 씨의 거주지인 양천구의 주택가에서 잠복하다 귀가하던 그를 붙잡았습니다.
정 씨는 체포된 직후 서울 남부교도소로 이송됐으며 검거 시점을 기준으로 3년 형을 살게 됩니다.
검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특별검거 활동을 강화해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도 도주하거나 잠적한 형 미집행자가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