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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15년,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박원경 기자

입력 : 2015.04.14 09:33|수정 : 2015.04.14 15:33


1년 만에 찾은 진도 팽목항은 잔인할 정도로 평온했습니다. 구조하는 사람,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밤새 불을 밝혔던 항구는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유가족들과 정부 관계자, 구조대원, 기자들로 붐볐던 선착장은 이제 인적이 끊겨 적막감이 가득했습니다. 항구 곳곳에 자리한 노란 리본과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현수막만이 이곳이 1년 전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찼던 곳임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1년 전 맹골수도의 모습도 지금의 팽목항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했던 2014년 4월 16일 오후 4시 20분. 선수 일부만 남긴 채 바다 속으로 잠긴 세월호 주변은 평온했습니다. 열띤 구조작업으로 평온하지 말았어야 하는 곳에서 본 평온함이었기에 잔인했습니다. 세월호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만 하던 구조선들. 결국 침몰하고 있던 세월호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 했습니다.

● 2015년,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누군가는 그랬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뭔가 획기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1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찾아온 잔인한 4월.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획기적인 변화를 겪었을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5년 4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해 4월. 진도 체육관에서, 그리고 팽목항에서, 자식을, 가족을 구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던 세월호 유가족들. 그들은 여전히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살려달라는 외침이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철폐로 바뀌었을 뿐 호소의 대상은 1년 전과 같이 정부와 정치권 그대로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등 뭐든 해줄 것 같았던 정부와 정치권은 유가족의 눈물조차 아직 닦아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1년.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다른 생경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숨진 가족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나선 유가족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됐습니다. 아니, 누군가 사회로부터 그들을 고립시켰습니다. 단식하던 유가족 옆에서 폭식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얼굴을 내밀고, 세월호 사고는 교통사고라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누군가겠죠.

염치가 없어진 사회에서 유가족들이 고립되는 사이, 세월호 참사는 어느새 국가의 총체적 부실을 상징하는 사건에서 지난해 우리 경제 부진에 대한 변명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왜 구조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배 속에 있던 사람들은 왜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 했는지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하는 하는데 주저하던 정부도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로 시작되는 말로 경제 부진의 책임을 세월호 참사로 돌리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세월호 1주기 캡쳐위로의 대상이 되어야 할 유가족이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부로 인해 발생한 참사가 정부 실책을 변명하는 구실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당당히 내놓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뭔가 획기적인 변화를 겪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던 주장이 허언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국가는, 정부는, 그리고 대통령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위기 상황에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국민이 품었던 질문입니다. 누구도 시원스레 대답해 주지 않은 이 질문에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답을 줬습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이 발생하자,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뒤 바로 병원으로 달려간 박근혜 대통령. 국내에서 외교 사절에 대한 흉악한 범죄가 일어났으니,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걸 막기 위해 기민하게 대응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 기민한 대응이 세월호 참사 때는 나오지 않았을까? 같이 가자며 리퍼트 대사와 맞잡은 손을 왜 한번만 만나 이야기라도 들어달라는 유가족들에게는 내밀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유가족에게 손을 내밀어 줬다면, 2015년 4월의 풍경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달랐을 겁니다.

● ‘어쩔 수 없다’

지난해 눈물의 대국민담화를 한 날 중동 순방에 나섰던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올해 4월 16일에도 해외 순방에 나섭니다.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1년 전의 변명은 상대 국가와 일정을 조율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올해도 반복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일정을 좀 조절하자, 그 말을 상대국에 할 수는 없었을까?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겠다, 잊지 않겠다던 1년 전의 눈물은 진심이었는지, 위기 상황에 국민들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 세월호 참사 2주기는 어떤 모습일까?
세월호 1주기 추모올해 3월 26일, 천안함 용사 5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엄수됐습니다. 5년 전 그날의 기억을 잊지 말자는 다짐도 이어졌습니다. 그 날의 기억을 잊으면 우리 안보에 또 구멍이 뚫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1주기가 되기도 전에 이제 떠나보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종북’이라는 색깔을 덧씌워 일반 시민들이 넌덜머리나게 하려는, 망각을 유도하려는 시도들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죠. 정부는 맞장구라도 치려는 듯 부풀린 세월호와 관련된 배상금이난 비용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애들이 놀러가다 죽었는데 왜 이리들 난리냐’, ‘돈 때문에 그러는 거다. 이제 지겨우니 그만 좀 하자’

1년도 되기 전에 이런 주장이 난무하는 2015년, 대한민국. 이런 주장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 세월호를 둘러싼 이념 논쟁과 망각을 유도하려는 시도 속에 세월호 참사에 2주기는 어떤 모습일지, 1년도 되지 않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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