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국제

[월드리포트] 워싱턴의 지하철 의문의 연기, 왜?

이성철 기자

입력 : 2015.01.15 09:08|수정 : 2015.01.15 10:04


▶[8뉴스] 美지하철에 '의문의 연기'…혼란에 빠진 승객들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답게 지하철이 잘 깔려 있다. 메트로 레일이라고 한다. 오렌지, 레드, 블루, 옐로, 그린 라인에 최근 개통된 실버 라인까지 도심에서 외곽까지 잘 연결돼 있다. 환승하기도 좋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출근길 북새통에 차를 몰고 워싱턴 시내로 들어가느니 외곽 거점 환승역에 주차하고 갈아타면 "약속 시간 어김없이 지하철은 지켜준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다.
 
워싱턴 지하철은 비싸다. 출퇴근 길 10개 역 정도를 가는데 편도에 3~4 달러는 족히 든다. '스마트카드'를 이용하면 버스와 무료 환승도 가능하지만, 기름 값이 싼 때 차를 놔두고 굳이 비싼 전기로 달리는 전철-지하철을 탈 이유는 없다.
 이성철시멘트벽으로 된 지하철역은 어두컴컴하다. 역들이 다 똑같이 생겼다. 열차는 낡았다. 안전 문제 때문인지 한 객차에서 다른 객차로 건너갈 수도 없게 해 놨다.
 
열차가 역사를 지나 터널을 통과할 땐 전화도 끊긴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탈 때마다 드는 생각은 '역시 지하철은 우리나라가 낫지!' 그럼에도 워싱턴의 지하철이 늘 바글바글한 건 출퇴근 환승 체계가 잘 돼 있는 것에 더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서민의 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철그런 지하철에 탈이 났다. 12일 월요일 오후 2시 반쯤 랑팡 플라자라는 역이 '의문의' 연기에 휩싸였다. 시내 중심 메트로센터 역에서 동남쪽으로 3개 역 떨어진 주요 환승역이다.
 
펜타곤 쪽으로 향하던 옐로 라인 열차 한편이 랑팡 플라자 역을 떠난 뒤 갑자기 멈춰 섰다. 객차 문틈으로 짙은 연기가 스며들었다. 승객들은 약 40분을 객차에 갇혀 있다 겨우 구조대의 도움으로 빠져 나왔다고 한다. 80명 넘게 병원 신세를 졌고, 60대 여성 1명은 끝내 숨졌다. 갇혀 있던 승객들의 코와 입가가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이성철취파 이성철취파현장에 도착해 보니 역 주변엔 노란색 줄이 쳐져 출입이 통제돼 있었다. 취재진들은 바빴고 구조대원들은 지친 모습이었다. 한 대원에게 물으니 승객 모두 구조됐다고 했다.
 
화재는 아니었다. 탈선도 아니다. 테러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러면 불 없는 의문의 연기는 어디서 났을까? 초기 조사 결과 '전기 아킹(electric arcing)'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조사에 나선 NTSB 국가교통안전위원회의 마이크 플래니곤 조사관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본다.
 
"The arcing event was on the wayside involving the third rail and the supply cables going to the third rail."
 
아킹 현상 - 전철에 공급되는 고압의 전류가 제 길을 벗어나서 다른 무언가를 태우면서 불까지는 아니더라도 연기가 났다는 것이다.
워싱턴 지하철
▲ 자료 : 워싱턴 포스트
 
'제 3의 레일(the third rail)'이라는 표현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앞에서 워싱턴의 지하철이 우리나라 지하철과 많이 다르다고 했는데 사실 제일 다른 건 전력 공급 방식이다. 열차 위쪽으로 아무 것도 없다. 대신 플랫폼 아래 건너편을 잘 보면 두 개의 철로 레일 바깥으로 레일 하나가 더 있는 걸 볼 수 있다. 제 3의 레일이다. 절연 커버로 덮여 있다. 750볼트 고압 전류가 흐른다는 붉은색 경고문이 붙어 있다. 열차 바퀴 옆쪽에 달려 있는'트레인 슈(train shoe)'라는 장치가 이 제 3의 레일과 닿으면서 전기를 공급받는 구조다.이성철취파이성철취파 
그런데 이 제 3의 레일에 습기가 찾는지 이물질이 붙었는지 어떤 이유로 '전기 아킹'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날 워싱턴엔 비가 내렸다. 초기 조사 결과로 NTSB의 정확한 사고 원인 분석은 6개월 뒤에나 나온다. 지난 2009년 사고 이후 가장 큰 사고다. CNN 같은 네트워크 케이블 방송은 큰 관심이 없었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다음날 1면 머리에 실었다.
 
시민들은 연기 자욱한 사고 사진을 표지에 올린 무가지를 집어 들고 오늘도 출근길 지하철을 탔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