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사회

[취재파일] '복지 폭탄'에 줄어드는 예산들…아직 예고편일까

심영구 기자

입력 : 2015.01.09 15:04|수정 : 2015.01.09 15:04


아이를 갖지 않는 건 각자의 선택이고 이유도 제각각이다. 그렇다해도 점점 출산율이 떨어지니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이 아닌 건 분명해보인다. 최근 출산율은 대체로 선동열의 통산 방어율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나 경쟁적으로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시행해왔다. 그 기조는 여전하나 수년전부터 균열이 가고 있는 게 하는 의심이 든다. 징후는 여럿인데 그중 하나가 출산장려금이다.

인천광역시는 2011년 광역자치단체 중엔 처음으로 조례를 제정해 셋째 이상 출산에 장려금 3백만 원을 지급했다. 다음해엔 둘째 출산에 1백만 원씩 줬다. 그 다음해인 2013년엔 첫째 출산에 1백만 원을 지급하고 둘째 출산은 2백만 원을 지급... 하려다 실패했다, 예산이 부족해서. 그리고 2015년, 올해부터는 4년 전으로 회귀했다. 둘째 출산장려금 지급을 중단한 것이다.

조금 성격이 다른 듯도 하지만 서울시는 2008년부터 셋째 이상을 둔 가정에 다자녀 수당으로 월 10만원씩 지급해왔다. 그런데 2013년 3월부터는 이를 중단했다. 지급 근거가 됐던 조례는 아직 살아있지만 2015년이 된 지금도 중단돼 있고 앞으로도 지급이 재개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서울 25개 구에서 각각 지급하던 출산장려금은 어떤가. 첫째 아이 출산에 10만 원이나마 출산장려금이라고 주는 구는 서대문, 서초, 마포, 용산 4곳밖에 없다. 강서구는 둘째 출산장려금도 안 준다. 용산구는 둘째 출산에 50만 원 주다가 20만원으로 줄였다. 중구는 둘째 20, 셋째 100, 넷째 300, 다섯째 500, 여섯째 700, 일곱째 1000, 여덟째 1500, 아홉째 2000, 열째 이상 3000만원씩을 주다가(실수령자가 있었는지가 궁금하지만...) 넷째 이상은 전부 3백만원으로 깎았다. 

이러고 있으니, 25개 구의 지급 총액은 2011년엔 175억 원이었지만, 2014년엔 100억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 됐다. 더욱 줄어들 것이다.

출산장려금 삭감 캡
왜 줄이고 있는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왜 돈이 없을까. 다른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가 고등학교 진학하자 각종 사교육비가 왕창 들면서 부부 용돈을 줄인다든가 뭐 이런 상황과 흡사하다. 무게감으로는 대학 등록금이 더 흡사할 것 같기도 하고.

2013년 3월부터는 전면 무상보육이 시행됐다. 서울의 경우 무상보육 비용은 국비 35%, 시 32.5%, 구 32.5%다.(광역시는 국비 65, 시 17.5, 자치구 17.5, 서울은 국고보조율 35%, 타시도는 65%이기 때문이다.) 2014년 7월부터는 기초연금 지급이 시작됐다. 서울의 경우 기초연금 비용은 국비 69, 시 15.5, 구 15.5다.(광역시는 국비 78, 시 11, 구 11이다. 역시 서울 국고보조율이 낮다.)
심영구 취재파일

2012년에도, 2013년에도, 2014년에도 지자체들은 들고 일어났다. 복지 확대를 반대하진 않지만 재정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세입은 별로 늘지 않는데(국세 대 지방세 비율은 8대 2로 거의 고정이다) 세출은 계속 늘어나니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나마 2014년엔 기초연금이 7월부터 시행됐지만 2015년은 1월부터 계속 지급해야 한다. 

2014년에 이미 자치구들 예산에서 사회복지 예산 비중은 50%를 넘어섰다. 최고는 광주 북구였는데 무려 67.2%가 사회복지 예산이었다. 서울 25개 구의 사회복지 예산 합계는 2009년엔 3조 815억 원이었는데 2014년엔 기초연금 증가분을 반영하지 않고도 4조 5천 136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러니 줄일 수밖에 없다. 중복 예산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은 중앙정부와는 별도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던 사업 예산이다. 이런 게 출산장려금, 노인수당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출산장려금은 사실 말이 출산장려금이지 출산에 큰 영향을 줄만한 돈은 아니다. 저 돈을 받는다고 해서 아이를 한 명 더 낳을 만큼은 아니라는 의미다.(이전의 서울 중구처럼 열째 이상을 낳으면 3천만 원씩 준다면... 혹시?) 

도시기반시설, 이를테면 도로나 교량 등을 유지보수하고 치수, 녹지 관리, 교통, 지역개발 등에 들어가는 예산을 일컬어 '안전 예산'이라고 부른다. 이 안전예산, 서울 25개 구 합계가 2009년엔 1조 970억 원이었는데 2014년엔 3천 80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강화하자고 저마다 외쳤는데 정작 지자체 예산에는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2013년 9월에 이런 취재파일을 썼다. (▶기초연금 줄여도 지방엔 1조 부담…이게 전부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방만하게 예산 낭비하는 부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당장 시급하게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예산도 많을 겁니다. 이번 전면 무상보육에서도 어찌됐든 지급 중단 사태는 막았으니 추가 부담 액수 자체가 크긴 하지만 기초연금 등 이후 추가되는 부분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단 제도가 시행되면 이런 복지 관련 정책에서의 지출은 디폴트, '상수'가 돼 버립니다.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죄다 여기에 투입돼 버린다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져 버리게 되죠.(여력은커녕 이 사업들도 제대로 못할 것 같다는 지자체가 많을 것 같지만요.)

해법 찾기, 쉽지 않습니다. 지방자치라면서도 각 지자체가 사실상 중앙정부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상태에서 뾰족한 묘안이 나오긴 어렵습니다.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같은 상황도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인구가 많고 복지 사업의 대상자가 많은 곳들이 더 문제가 되겠고 그렇지 않은 곳은 상대적으로 덜 압박받겠죠. 

김용익 의원은 재정 부족 때문에 오게 되는 '복지 피로증'을 경계했습니다. 복지 확대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 부분인데 재원 대책 없이 복지를 무리하게 확대하려고 하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되고 복지 정책의 확대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죠. 정부가 약속한 부분이 후퇴하거나 축소되면, 혹은 조금이라도 시행했다가 되돌리게 되면 '무신불립', 정부에 대한 신뢰에도 타격을 주게 되고요.


정부 예산안이 발표되면 비로소 본격적인 예산안 논의가 시작됩니다. 합리적인 복지 확충을 위한 논의와 함께 지방 재정 문제도 함께 논의의 테이블에 오르길 바랍니다. 아직까지 폭탄은 예고됐을 뿐입니다....

---------

취재하면서 만난 한 기초단체장의 말이다.

"...저희도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저희도 찬성합니다. 찬성하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하고 있는데 지금 이런 지방세 구조 하에선 너무 부담이 크고 부담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부족하니까 부족한 것을 정부가 조금 부담을 해달라, 그런 요청이지 이 자체를 저희가 부정하고 하지 말자라는 게 절대 아닙니다...."

폭탄이 이제 터진 건지, 아직도 예고편인지 잘 가늠이 안된다. 중앙 정부 차원의 복지 예산은 전부 정부에서 맡거나, 국고보조율을 높이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이든 대책을 내놓을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지자체들의 주장처럼 '지방 자치'에서 자치는 떼버려야 할 것 같다.

**인천의 경우는 좀 다르다는 의견들이 많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고 치러내는 등 그동안 과도하게 재정을 낭비해왔기에 이렇게 된 거지 이게 복지 확대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것이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다른 곳들도 그곳 만의 사정이 따로 있을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시행, 기초생활보장제도 확대로 인한 재정난은 모두가 겪고 있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