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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광복 70년…'위안부 피해자'에게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노동규 기자

입력 : 2015.01.10 08:45|수정 : 2015.01.10 09:48


지난해 마지막 날 서울 연남동 '평화의 우리 집'(우리 집)을 찾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할머니들이 모여 머무는 쉼터로, 위안부 피해 문제를 앞장서 공론화 해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마련한 공간입니다. 지난 2003년,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에 참석했던 고 황금주 할머니가 "집에 돌아가는 길을 기억하지 못 했던" 게 계기였습니다. 고령에 병치레가 잦은데다 자신의 피해 경험을 어디 털어놓기도 힘든 할머니들을 한 곳에 모아 서로 의지하며 살게 하자는 생각으로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성산동에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처음 집은 낡을 대로 낡아 비만 오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통에 양동이를 몇 번이고 비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한 교회의 후원으로 지금의 번듯한 2층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 한번 받지 못 한 할머니들에겐 말 그대로 '평화의 우리 집'입니다.

한 때 10명에 달했던 할머니들이 한 명 한 명 세상을 뜬 뒤 이제 이곳엔 이순덕(97살) 김복동(90살) 길원옥(88살) 할머니만 남았습니다. 모진 고초를 겪은 할머니들 몸은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습니다. 길 할머니 표현대로 "종합 병동"인 할머니들은 매일같이 5~6개 씩 되는 약봉지를 털어 넣으며 "순전히 약 힘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할머니를 뺀 김, 길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을 찾아 나섭니다.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며 23년 째 계속돼온 정대협 수요 집회에 참석해 힘 보태기 위해섭니다.

이 날도 김 할머니는 "(시민들이) 우리 위해 추우나 더우나 집회에 나오는데, 우리는 춥다고 안 나가고 덥다 하고 안 나가면 예의가 아니다"며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한 쪽 시력이 실명상태에 가깝게 나빠진 탓에, 남의 도움 없인 혼자 걷기도 힘든 김 할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김 할머니는 "춥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아직까진 괜찮다"면서도 "지금은 괜찮은데 거기(일본대사관)만 가면 춥다. 거기 독한 놈들이 살아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육신은 날로 쇠해가도 해학은 잃지 않는 기품을 느꼈습니다.

김, 길 두 할머니는 우리 집 손영미 소장이 모는 차를 타고 일본 대사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추위 속에서도 1시간 남짓 열린 집회의 시종을 꼼짝 않고 지켰습니다. 30대인 저도 발이 시려 혼났는데 말입니다. 할머니들이라고 춥지 않은 건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먼 곳에서 모여든 시민 250명이 함께해주는데 먼저 자릴 뜰 수 없었던 겁니다.

어린 학생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유명한 수요 집회답게, 이날도 할머니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겠다며 경남 사천시에서까지 여고생들이 찾아왔습니다. 새벽 첫차를 타고 도착한 삼천포여고 학생들은 두 할머니에게 털모자와 직접 쓴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이 학교 2학년 김민지 양은 "꼭 한번 와보고 싶어 어렵게 왔는데, 일본대사관 모든 창문마다 쳐진 블라인드가 할머니들 요구를 듣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화가 난다"며 "나 같은 학생들이 위안부 만행을 외면하지 않게끔 학교 교육이 잘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캡쳐
집회를 마친 김 할머니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김 할머니의 새해 소망은 수십 년 째 한결 같습니다. '올해는 꼭 일본이 사과하고 배상 문제를 제대로 해결 짓기를 바란다'는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맺은 한일협정이 남긴 숙제를 그의 "따님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김 할머니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일본은 올해 50주년을 맞는 한일협정으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모든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김 할 머니에게 하루가 머다 하고 들려오는 일본의 우경화와 끊임없는 역사 부정 소식은 더 없이 화가 나는 일입니다. 일본 위안부 만행의 '증인'인 자신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눈을 감을 수 없다"며 지난 7일 열린 새해 첫 수요 집회에도 나선 이유입니다.

1992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증언한 뒤, 정부에 피해자로 등록한 할머니는 모두 239명입니다. 이 가운데 184명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 한 채 한 많은 삶을 마쳤습니다. 작년에도 배춘희, 황금자 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할머니 55명의 평균 연령도 89살에 달합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위안부 피해자 복지시설 '나눔의 집' 할머니들도 이제 9명뿐입니다. 여기엔 오랜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일본이 (사과·배상) 안 해주겠다는데 더 뭘 어쩌겠느냐"며 사실상 체념한 박옥선(91살) 할머니 같은 분도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국회에 나가 침략전쟁을 일으켜 강제 성노예를 만든 야만의 역사를 부정했습니다. 이렇게 일본 정치인들이 망언을 일삼고, 우리 사회 일부가 이에 동조하는 걸 보며 박 할머니의 체념이 나온 건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나눔의 집 이옥선 할머니(88살)는 말합니다.

"우리는 완전 해방을 못 봤어요. 우리는 지금 여전히 전쟁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 끝나게 하려니까 여러분들이 우리한테 힘을 좀 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광복 70주년이지만, 할머니들에게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습니다.



▶ 남은 위안부 할머니 55명뿐…가슴에 맺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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