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 이들의 춤은 한번 보면 잊을 수가 없습니다. 표정 없이 선글라스나 물안경을 낀 채로 이상하게 멋지고 복잡하고 어려운 동작을 구사한 이들은 '춤도깨비'라고 불렸습니다. 쭉 이날치와 함께한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 영상,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뮤직비디오, 구찌 광고, 이 춤도깨비들은 팬데믹 기간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이 춤꾼들의 정체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였습니다.
△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 영상 보기
저는 2020년 당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춤꾼이자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인 김보람 씨를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그는 출연을 고사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고, 저는 얼마 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대표작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 공연을 예술의전당에서 열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출연을 요청했고, 이번에는 성공했습니다.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며 SBS 스튜디오에 처음 들어선 김보람 예술감독은 웃기고, 놀랍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길게 들려줬습니다. 둘도 없는 개성으로 똘똘 뭉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철학과 매력을 그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1. 애매모호한 춤 회사, '앰비규어스'가 곧 장르다
"발레도 있고 다양한 장르들의 춤이 있잖아요. 근데 저희는 거기에서 벗어나서 좀 더 본질적으로 춤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단체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것이 춤이고. 어떤 것이 춤이 아니고, 그런 것들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서 벗어나서 모두 다 춤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춤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힙합, 이런 장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춤 자체를 파고듭니다. 김보람 감독은 10대 때부터 유명 가수들의 백업댄서로 TV 무대에서 활약했고, 이후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기존의 현대무용 공연들이 너무 재미없어서 직접 안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앰비규어스가 곧 장르'라고 말합니다.
▷ '콜드플레이도 반한 한국의 춤꾼들' 뉴스 영상 보기 (SBS 8뉴스 더스페셜리스트)
2.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을 가리는 이유
김보람 감독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카메라가 돌아가면 선글라스를 쓰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글라스는 단순히 김보람 감독 개인의 스타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작품 세계 전체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작품들의 시그니처예요. 선글라스를 낀다거나 얼굴을 가린다거나, 그래서 최대한 얼굴을 가려 몸으로만 소통을 해보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어요."
"춤에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하려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네. 눈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최초의 생물이 나타났을 때부터 발전해 온 어떤 역사를 다 담고 있어서, 눈이 이미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눈을 보고 춤추는 사람을 봤을 때, 이미 눈에서 저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이해를 해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가리고 정말 몸의 움직임만으로 소통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눈을 가리는 선글라스나 물안경뿐 아니라 형형색색 다채로운 의상과 소품도 인상적입니다. 색동옷, 형광색 옷, 일체형 의상도 있고, 얼핏 중구난방인 것 같아 보이지만, 춤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제가 제안하는 것 같고, 저희가 직접 찾아서 만들 때도 있고, 디자이너하고 공동 제작할 때도 있어요. 제가 일상에서는 입고 싶어도 너무 튄다거나 보는 분들 시선 때문에 못 입는 옷들이 있어요. 그럴 때 작품을 통해서 해소하는 경우가 있죠. 이걸 진짜 입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 의상으로 해보자, 그러는 거죠. '범 내려온다' 같은 경우도, '내 눈에는 전통 의상이 멋있는데 왜 아무도 모르지?' 이런 생각으로 전통 의상을 저희가 좀 새롭게 해본 거였고요."
3. '범 내려온다'는 취미생활, 너무 커져서 당황했다
"살다 보니까 그런 일도 있더라고요. 사실 그렇게 뭔가 기대를 하고 했던 작업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날치 장영규 음악감독님하고 작업 그전에도 몇 번 했고 그게 재미있어서 저희도 맨날 무용만 하면 너무 진지하게 하다 보니까, 조금 숨 돌리러 나가는 기분으로 취미 생활처럼 했던 협업이었는데, 너무 커져서 당황하긴 했습니다."
△ 콜드플레이 - '하이어 파워' 영상 보기
그는 당시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일부러 방송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10대 때부터 댄스 크루 '프렌즈' 소속으로 유명 가수들의 백업댄서로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무대에 출연했던 경험도 작용했습니다.
"이날치랑 협업은 저희의 본래 작업은 아니라서 그쪽으로만 가면 그게 부각되고 사람들도 그걸 기대하게 될까 봐. 사실 그거는 저희의 극히 일부분이고 실제로 하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바디콘서트나 이런 게... 그래서 거기에 좀 더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왜냐하면 이게 그렇잖아요, 사실? 방송 아시겠지만 확 떴다가 확 사라지는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원래 자리로 이렇게 잘 와서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최근 발매된 이날치의 새 음반 뮤직비디오에서도 함께했습니다. 이날치의 음악과 이들의 춤이 오묘하게 어울리는 매력은 여전합니다. 커튼콜 녹화 이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두 번째로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굿 필링스(Good FEELiNGS)' 영상도 공개되었습니다. 단원들은 이 필름 제작을 위해 이번에는 영국의 거리에서 춤췄는데, 지나가던 영국인들이 굉장히 박수를 많이 쳐줬다고 하네요.
▷ 이날치 '봐봐요 봐봐요' 영상 보기
▷ 콜드플레이 '굿 필링스' 영상 보기
4. 무용 공연을 15회나? 바보라서 그래요
사실 비교적 인기 높은 발레를 제외하면, 무용 공연은 끽해 봤자 3회 정도 하는 게 현실입니다. 티켓 가격도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청소년 할인, 예술의전당 회원 할인 등 각종 할인 혜택이 있어, 최대 50%까지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무용 공연을 15회나 한다니, 객석을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저까지 걱정이 됩니다. 김보람 감독은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 공연이라 15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바보라는 게 명확해진 공연 기획이죠. 사실 다 3회나 4회를 하는 이유가, 한국에서 무용 공연으로 객석을 채우는 데 그 정도가 적합하다는 건데, 저는 사실 이렇게 정해져 있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15회 해보면 되지! 왜 그렇게 스스로를 이렇게(한정) 하냐!', 이런 생각으로 합니다."
▷ '바디콘서트' 공연 티저영상 보기
5. 관객 반응이 좋으면 실패다?!
발레 공연을 제외하면 무용 공연에서는 끝날 때까지 도중에 박수를 보내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 공연에서는 가수들의 콘서트와 흡사하게,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박수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콘서트처럼 앙코르 무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무용 공연에 앙코르라니, 거의 전례 없는 일이지만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그러니 '바디콘서트' 보러 가시는 분들은 앙코르를 청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김보람 감독은 '반응 좋으면 우리 오늘 실패야, 사람들이 웃으면 오늘 실패야'라고 합니다. 네? 반응이 좋은 게 실패라고요? 이건 또 무슨 뜻일까요?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무용수들이 객석을 의식해 오버하게 되고, 그러면 원래 의도했던 춤으로 하는 소통이 온전히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용수들이 선글라스나 물안경을 쓰고 몸으로만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그는 나아가 궁극적인 목표는 '관객들이 춤에 너무 몰두해서 박수 치는 것조차 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관객이 공연을 좋아할수록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오게 되죠. 그는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걸 목표로 삼는 경향이 있다'며 웃었습니다.
6. 돈을 벌기는커녕 써가면서 무료 공연 하는 이유
"몇만 명인지 모르겠어요. 저 무대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먼 데까지 사람들이 꽉 차 있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 관객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 소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아, 이게 문화구나' 해서 한국에도 저는 이제 무용을 하니까 무용을 정말 그냥 원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런 페스티벌이나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2주 동안 매일 다른 작품을 공연하느라 무용수들은 몸이 부서질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공연은 공공 지원금을 받기는 했지만,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자체 예산도 투입했습니다. 돈을 벌기는커녕 큰돈을 써야 하는 무료 공연에 왜 이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걸까요?
"근데 뭐 돈이야... 사실 돈 벌려고 하고 있어요. 근데 당장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저는 뭐 당연히 문화도 중요하고 한국의 공연을 보는 문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고, K팝, 영화 다 너무 좋은데 기초 예술 장르, 순수 예술 쪽이 그만큼까지 발전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완성은 순수 예술의 발전이다라고 생각하고 문화를 만드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굉장히 몰입해 있는 것 같고, 그게 되면 그 뒤로 먹고사는 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해서 당장 먹고사는 것보다 문화를 만드는 일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또 '해외 무대보다 한국의 지역 무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공연을 접하기 힘든 지역의 많은 관객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예술계에는 해외에서 인정받은 걸 토대로 한국에서 자리 잡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 안에서 인정받은 걸 토대로 세계로 나가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7. 편한 길보다 어려운 길을 택한다
"그냥 제가 이게 맞다고 느끼니까 하는 경우가 많고요. 제 습성이, 남들이 '이게 맞다'고 하면 하기 싫어요. 하기 싫고 안 돼요. 네, 좀 병적인 게 있어요. 저 개인이 보는 눈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 '이게 맞다'고 하면, 오히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그게 진짜 맞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죠.
저는 편한 길과 어려운 길이 있으면 무조건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편한 길은 편하고 싶어서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려운 길은 어렵고 싶어서 가는 걸까요? 저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데 즐거움이 훨씬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왕이면 어려운 길이 재미있는 것도 많고 기억 남는 것도 많고, 죽을 정도로 어렵지 않으면 웬만하면 그 길을 선택하는 본능이 있어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단원들이 본격적인 연습 전에 몸풀기(웜업)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몸풀기가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1시간 반이나 지속됐습니다. 연습 시작도 전에 녹초가 될 것 같았어요. 무슨 몸풀기를 저렇게 '빡세게' 할까 궁금했습니다.
"몸이라는 게, 오늘 엄청나게 힘들었던 게 내일 하면 덜 힘들어요. 원래 몸은 엄청나게 똑똑하거든요. 우리 머리보다 똑똑한 게 몸이에요. 그래서 어떻게든 쉬운 방법, 덜 힘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어제랑 똑같이 했는데 어제보다 덜 힘들게 되거든요. 저희는 그걸 거부해요. 다음 날은 더 세게 하는 방법을 찾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몸풀기가 계속 힘들어지고 복잡해지는 거죠."
"그렇게 신나는 춤을 추시는데, 이렇게까지 힘든 길을 선택해서 오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좋아하면 뭐... 저는 '힘듦'이라는 게 반대로 조금 더 좋은 이미지인 것 같아요. 역으로 편안함이 안 좋은 이미지예요.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지는 않고 힘듦을 조금 더 추구한 거고, 힘듦이나 고통이 제가 느낄 수 있는 혜택이라고 해야 하나. 저희가 살면서 편안함만 느끼는 건 정말... 그러니까 똑같이 느끼는 거잖아요. 편안함도 느끼는 것이고 힘듦도 느끼는 거라면, 느끼는 건 저 자신이기 때문에 둘 다 감사할 일이라는 거죠. 그런데 내가 뭘 더 좋아하는지, 어떤 게 더 재미있는지, 그리고 그게 미래에 어떤 또 좋은 가치가 있는지 이런 걸 고민하는 거지, 힘듦을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8. 화성 로봇 춤 안무하고파... 일론 머스크 연결해 주실 분?
"미국의 스페이스X가 화성 이주를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요. 저나 단원들이 화성까지 직접 가서 춤추기는 어렵고, 거기서 옵티머스라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으니까 로봇에게 가장 맞는 춤 안무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뜻이 있으면 이뤄지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콜드플레이랑 협업했던 '하이어 파워' 뮤직비디오도 마치 우주에서 춤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그 이전부터 그런 꿈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그전부터 있었던 것 같고, 워낙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 작업을 하는 게 몸의 언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몸의 언어라는 건 내가 몸 전체를 다 써야지만 할 수 있는 언어예요. 그 언어가 저는 가장 진화된 언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성에서의 그런 움직임을 만들고, 그걸 지구인 아닌 다른 세계의 생명체가 봤을 때 가장 직관적으로 빠른 소통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구하고는 중력도 다르니까 그런 것도 다 고려해야겠네요."
"그건 다 수학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재미있게도 저는 춤을 추면 출수록 이게 다 수학과 시간에 관련된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음악을 분석하고 했던 이후부터 모든 게 어떻게 보면 그 시간, 시간성이라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음악을 분석하고 정확한 시간을 나누는 것이죠. 그리고 중량, 동작의 개수, 이 모든 게 숫자로 이뤄져 있어서 그런 것까지도 계산된 안무가 필요하겠죠."
그는 시종일관 진지했습니다.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아는 분 계시면 연결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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