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론 아체몰루는 MIT 경제학과 교수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 잡힌 것 같다. 고용 시장도 여전히 견고하다. 저임금 직종을 포함한 임금 역시 오르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은 일종의 소강상태일 뿐이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
향후 몇 년간 미국 경제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인구 고령화와 AI의 부상, 세계 경제의 재편이라는 세 가지 획기적인 변화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우리 눈앞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만큼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은 이 세 가지가 어떻게 결합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인가다. 그 변화는 아마도 임금 불평등이 치솟고 하위 계층의 임금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하락했던 1970년대 후반 이후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변화가 될 것임에도 말이다.
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한다면 우리 사회는 컴퓨터 혁명이 약속했지만 실현하지는 못했던 것, 즉 노동 개념의 재정립과 생산성의 향상, 임금 상승, 더 많은 기회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순간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면 좋은 보수를 받는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제의 역동성은 떨어지게 될 것이다. 향후 5~10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길이 결정될 것이다.
국가의 비전을 점점 근시안적으로 만들고 있는 망가진 우리의 정치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캠프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캠프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보지 않고 있다. 어느 쪽도 미국 노동자들이 새로운 도전에 대비할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필요한 투자를 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의 노동력은 그 어느 때보다 나이 들었다. 2000년에는 한창 일할 나이(20~49세)에 해당하는 미국인 100명당 65세 이상인 미국인이 27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이 숫자가 39명으로 늘어났다. 2040년이 되면 54명에 달하게 된다. (노동 인구가 부양해야 할 노년층이 많아지는 거다)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출생률 감소에 따른 것이라 미국의 노동력 성장 속도도 둔화할 것이다.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의 수는 줄어들 텐데, 이 역시 인구 고령화를 더 부추길 것이다.
제조업과 건설업 등 힘과 체력이 필요한 일자리는 여전히 많다.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지고는 있다지만, 힘이나 체력은 나이가 들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생산성은 주로 40대에 최고조에 달한다. 미국은 물론이고 모든 국가에 필요한 기업가 정신이나 리스크를 지려는 태도 또한, 주로 젊은 사람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지난 30년간 일본과 독일, 한국은 현재 미국의 고령화 속도보다 두 배 더 빠르게 고령화된 만큼 우리에게는 따를 수 있는 모델이 있다. 좋은 소식은 이들 국가의 경제 성장 속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고, 자동차, 기계, 화학 등 노동력에 의존하는 부문도 크게 타격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국가는 산업용 로봇과 기타 자동화 기술을 탑재한 새로운 기계를 도입해 젊은 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대신하게 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자동화를 보완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투자했다.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수리, 품질 관리, 디지털 기계 작동 등 보다 기술적인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재교육했고, 그 결과 생산성이 급증하고 임금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노동력 부족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저학력 노동자의 임금은 1980년부터 2010년대 중반 사이 정체되거나 심지어는 줄어들었다. 노동력 부족이 설비와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투자와 맞물리게 된다면 임금은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나리오는 미국의 상황에 적용하기 어렵다. 로봇에 대한 투자는 급격히 증가했지만, 사람과 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투자가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업무나 고급 정밀 작업을 포함한 새로운 일에 투입될 노동력은 여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다. TSMC가 미국 첫 반도체 공장 설립을 미룬 이유도 바로 이런 노동력이 부족해서였다. 미국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 기술과 적응력을 갖춘 노동력을 새로운 기계와 결합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전통적으로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온 미국의 제조업은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AI 역시 비슷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이를 헛되이 흘려보낼 가능성도 마찬가지 이유로 크다. AI 만능론자들은 AI가 모든 기술 혁신의 어머니이자, 디지털 시대의 정점이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초지능 알고리즘을 둘러싼 거품을 걷어내고 보면, AI가 가져오는 도전 과제는 고령화 적응 문제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AI는 정보 기술이다. 케이크를 만들어주거나 잔디를 깎아주지 않는다. 기업을 운영해 주거나 과학 탐구를 대신해 줄 수도 없다. 대신 사무실이나 컴퓨터 앞에서 수행하는 인지 작업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해 줄 수 있다. 또한 언젠가는 의사결정을 하는 인간에게 보다 나은, 어쩌면 훨씬 나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주 빨리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2024년 2월 현재 미국에서 AI를 활용하는 기업은 전체 기업의 5%에 불과하다. AI 기술도 여전히 완벽하다고 하기엔 부족한 점투성이다. ( 구글의 AI는 초기에 ‘돌을 먹는 것이 현명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데도 어려워했다) AI가 확산하는 속도는 느릴 것이고, 2030년 중반까지 진정한 의미의 영향력을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기업과 노동자들의 준비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AI가 업무를 자동화하고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업무와 역량을 만들어내도록 하려면 광범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급격한 자동화가 가져올 불평등 또는 그로 인한 실직으로 폭동이 일어날 거라는 기술 엘리트들의 두려움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은 노동자와 함께 할 때 더욱 일관되게 생산성을 높여 더 나은 업무 수행과 새롭고 복잡한 업무 수행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헨리 포드의 혁신적 자동차 공장의 비밀은 단순히 더 나은 기계를 더 널리 사용한 데 있지 않고, 이와 함께 수리나 유지·보수와 같이 기술적인 업무를 할 수 있는 노동자를 교육한 데 있다.
오늘날 대출이나 고용 결정을 내리는 사무직 직장인,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과학자나 언론인, 기계 고장이나 다른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전기수리공, 목수, 장인 등 대부분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즉, 대다수가 더 나은 정보를 얻으면 생산성을 높이고 활약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령화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 파도를 제대로 타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다. 업계 내 경쟁은 ‘인공 일반 지능’, 즉 인간과 똑같아서 인간의 모든 업무를 대신할 기계를 만들어내겠다는 원대한 꿈에만 집중되어 있다. 기업들은 디지털 광고 수익을 내거나 자동화를 위해 이 기술을 사용하는 데 몰두하는 중이다.
AI의 진정한 가능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AI 모델은 더 전문화되고 더 높은 품질의 데이터로 구동되어야 하며, 더 신뢰할 수 있고 현존하는 지식과 노동자의 정보처리 능력에 더 잘 부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현재 빅테크 기업들의 최우선 과제가 아닌 듯하다.
고령화와 AI가 가져올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확실한 정책 하나를 꼽자면, 세금 공제나 교육 보조금 등을 통해 노동자 교육을 강화하고 이들이 새로운 업무와 일을 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해리스 후보의 경제 계획이 트럼프의 계획보다 이 부분을 훨씬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더 많다.
노동자만 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기술적 역량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서 연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다가올 노동력 부족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AI 기술의 유형을 파악하고,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제때 지원하는 새로운 정부 부서를 설립해야 한다.
세계화가 초래한 변화는 전혀 다른 차원의 주제 같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소련 붕괴 이후 이어진, 급속하고 고삐 풀린 세계화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서구 소비자와 다국적 기업은 값싼 해외 노동력을 확보하면서 이익을 봤지만, 노동자는 그다지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무엇이 세계화를 대체하게 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비슷한 흐름(중국과의 교역은 줄어들고 베트남과의 교역은 늘어나는 것 등)처럼 각국이 동맹이나 우방국과 교역하는 파편화된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관세는 높아지고, 교역이 줄어들 수도 있다. 무역 제한과 산업정책이 결합한 형태일 수도 있다. 투자를 독려하고 첨단 전자, 전기차, 재생 에너지 등의 산업을 미국 내에 유치하고자 한 바이든의 인플레이션감축법이나 반도체지원법이 그렇다.
이런 변화는 느리지만 노동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제조 역량의 가능성은 새로운 일자리 기회나 더 높은 임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새로운 제조 역량은 하루아침에 구축될 수 없으며, 기술력이 부족하면, 산업이 재생하고 반등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다시금 안타깝게도, 미국, 특히 미국의 노동력은 여기에 대비되어 있지 않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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