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초기, 그러니까 코로나 후유증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이 처음 감염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중환자실로 가거나, 그게 아니면 대부분 2주 정도 가벼운 증상을 앓고 만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내 처제는 2020년 3월 코로나에 걸린 후 3주 넘게 열이 내리지 않더니, 그 증상이 무려 6주 이상 지속됐다. 여러 매체에 젊고 건강했던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려 죽지는 않았지만, 회복이 아주 더디다는 이야기가 잇달아 보도됐다. 그해 5월 내가 과학자와 임상의들에게 이처럼 지속되는 증상에 관해 물었을 때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2020년 5월이 되자,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수천 명이나 보고됐다. 이들은 '롱코비드(long Covid, long-hauler)'와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자신들의 증상에 관한 연구에 착수했다. 그해 3월 만성피로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근육통성 뇌척수염(M.E./C.F.S.)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 환자들이 코로나가 다양한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지금은 명확해진 사실을 알게 됐다.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은 몇 달, 심지어 몇 년에 걸쳐 극심한 피로, 인지 장애, 흉통, 호흡 곤란, 운동 후 불편감(육체적, 정신적으로 조금만 소모되어도 기존 증상이 악화되는 질병) 등 심신이 약화되는 여러 증상을 앓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2020년 6월에 처음으로 롱코비드에 관한 기사를 썼다. 기사가 나간 후 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또는 그런 말을 들었던 사람들로부터 100통 넘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들은 자신의 실제 경험이 드디어 인정받았다고 느꼈다고 썼다. 이후 나는 롱코비드에 대해 총 7편의 기사를 더 썼는데, 첫 기사 이후에 받은 이메일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롱코비드 환자들은 나의 기사들을 통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적절한 의료 조치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친구와 가족, 의료 전문가조차 상상 속의 질병이라고 치부한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가 인정해 주어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과학 전문기자로서 나는 다양한 주제를 다뤄왔지만, 롱코비드만큼 내게 영향을 미친 주제는 없었다. 롱코비드는 저널리즘이 어떻게,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롱코비드를 취재하면서 과학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힘이 아니라는 나의 관점은 더욱 확고해졌다. 과학은 인간이 하는 일이고,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 정치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 많이 고통받고, 사람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질병인 롱코비드와 근육통성 뇌척수염/만성피로 증후군은 여성의 고통을 하찮게 여기는 성차별적 사회, 그리고 사람의 값어치를 생산성에 따라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쉽게 별것 아닌 문제로 치부된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인 무시는 과학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연구의 부재는 질병에 대한 의심을 더욱 부추긴다. 나는 종종 목소리를 잃거나 미디어가 외면하는 사회과학자, 장애 연구자, 그리고 롱코비드 환자들을 인터뷰하고 나서야 이런 역학을 이해하게 됐다.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롱코비드는 단순한 보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사회적인 이슈로 접근해야 한다.
'넌 그냥 우울한 거고, 그런 병은 다 네 머릿속에 있는 거야.'라는 식의 무시와 가스라이팅은 롱코비드가 가진 최악의 면 가운데 하나로, 환자에게 신체적인 고통만큼 가혹한 괴로움을 안겨준다. 롱코비드 증상은 믿기 힘들 정도로 일상적인 경험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데다 사람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동시에 정신력을 무디게 하므로, 이런 인식과 싸우기는 매우 어렵다. 이럴 때 바로 저널리즘은 몸이 아파서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공감을 끌어내고, 묘사하기 힘든 일을 문장으로 표현하며, 상상하기 힘든 영역을 명확하게 밝혀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여러 롱코비드 환자는 내 기사로 가족과 직장 상사, 의사의 의심을 마침내 불식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순진하게도 나는 내 기사가 이런 용도로 쓰이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존 생각을 바꾸기도 하는 독자만이 내 글의 시험대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런 일차원적인 모델은 불완전했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은 단순히 기사를 접하는 독자에게서 끝나지 않고, 독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네트워크를 타고 퍼져나간다. 저널리즘이 역할을 잘 해내면 네트워크는 더욱 튼튼해진다.
롱코비드로 인한 피로감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룬 가장 최근 기사가 나간 뒤 한 환자는 자기 언니로부터 "네가 얼마나 아픈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건강한 독자들도 메일을 보내왔다. 평생 근육통성 뇌척수염으로 투병하는 어머니를 지켜본 25세 독자는 내 기사를 읽기 전까지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여러 해에 걸쳐 병을 앓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온전히, 연민을 담아 들여다본 기사를 매체에서 접한 것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런 반응은 팬데믹 이전의 나를 포함, 저널리즘 업계에 대한 냉엄한 판결과도 같다. 나 말고도 이 주제를 다루는 저널리스트가 여럿이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목소리가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준다고 자부하는 업계가 어쩌다가 이처럼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게 된 것일까?
롱코비드와 근육통성 뇌척수염/만성피로 증후군 같은 질환을 취재하다 보면 저널리즘의 규범과 판단 기준이 독이 되는 일도 많다. 인습 타파를 사랑하는 저널리스트들은 종종 회의론자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어준다. 즉, 실제로 고통받는 환자의 목소리보다 환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억누른다'고 주장하는 회의론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만성질환은 그 개념 자체로 '새로운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저널리스트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빡빡한 마감 일정이나 전화 인터뷰와 같은 저널리스트의 일상적인 업무방식 역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취약점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전 세계적으로 롱코비드로 고통받는 환자만 수천만 명에 이른다. 회복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시는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시에 새로 발생하는 환자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각국 지도자들이 우리를 통제되지 않는 전염성 병원균과 느슨한 공중 보건 정책의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도 전, 이미 수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근육통성 뇌척수염으로 고통받던 시대로 다시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감염의 위험을 무시해야 하고, 병에 걸리면 치료에 터무니없는 비용을 치러야 하고, 장애가 생기면 낙인과 조롱을 감수해야 한다. 저널리즘은 이런 상황을 거부할 수 있고, 거부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한 발짝 떨어져서 세상일을 전하는 중립적인 행위자가 아니며, 우리의 선택을 통해 세상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목적과 배려, 연민을 가지고 일을 수행해야 한다.
롱코비드 환자를 인터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생 최악의 경험을 되새겨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운동 후 불편감(아주 사소한 정신적, 신체적 활동이 '가능성의 파괴'라고 부를 만한 에너지 소모로 이어지는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은 롱코비드 환자에게 한 시간짜리 전화 인터뷰는 며칠 간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인터뷰 시작 전에 몸이 안 좋아질 것 같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인터뷰를 중단하고 다시 일정을 잡자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들도 있었다. 장애 연구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크립 타임(crip time, 비장애인의 신체에 맞춰진 시간 개념과 다른 장애인들의 시간을 의미)'에 맞춰서 일을 하게 되므로, 기사 마감 일정도 넉넉하게 잡는다. 전화 인터뷰가 더 나은 결과물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실시간 대화에 부담을 느끼는 환자들과는 기꺼이 서면으로 인터뷰한다.
좋은 저널리스트는 취재원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규범이 때론 냉정함으로 비칠 수 있다. 독립적인 저널리스트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내 상대에게는 '나는 내키는 대로 행동할 테니 알아서 감내하라'는 태도로 보일 수도 있다. 롱코비드를 취재하면서 나는 오히려 취재원들의 필요를 좀 더 유연하게 수용하기 시작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Video News
Vide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