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보도를 하면서 제보를 함께 받고 있습니다. 제보자 가운데 일부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고용노동부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은 근로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은 나아졌을까요? 왜 제보를 또 했을까요? 나아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 근로자들은 괴롭힘을 인정받기 위해서 녹취 등 각종 자료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따라 해당 사업주에게 '개선지도' 명령 정도만 내릴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근로기준법 109조(벌칙)에는 괴롭힘이 발생한 것 자체만으로는 형사처벌을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피해자들의 '회복'을 끝까지 책임져주는 곳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가해자 혹은 사업자가 처벌을 받는 것과 피해자 회복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부서 이동 혹은 유급휴가를 요청할 수 있고, 사용자(업주)는 피해 근로자 의사에 반하여 결정 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업주 혹은 가해 근로자들이 신고자를 교묘하게 괴롭히는 '2차 가해' 사례가 여전히 많습니다.
한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4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2019년 한 외국계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같은 해 6월부터 외주구매팀장으로 일했습니다. 악몽은 2019년 11월 시작됐습니다. 회사 대표와 친한 팀장이 만취 상태로 회사에 와서 고성과 험담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더니 더 심한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한 번은 동료직원과 성관계를 했냐는 전화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박 씨는 차라리 그때 신고하지 말고 참을 걸 그랬다며 후회한다고 합니다.
해당 팀 해체, 전보발령…시작된 2차 가해박 씨는 괴롭힘 문제를 회사에 알린 뒤 이른바 '2차 가해'가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본인이 팀장으로 있던 팀은 해체됐고, 본인을 지방으로 발령을 내겠다고 통보까지 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방 발령 통보는 철회됐지만, 박 씨에 대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동은 계속됐다고 합니다. 박 씨는 결국 괴롭힘 여파로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직 신청을 했습니다.
회사가 한 개인에게 이렇게까지 보복을 가하는 것을 보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박 씨는 우울증을 비롯한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지난해 10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휴직을 신청했습니다. 회사는 취업규칙에도 없는 3차 기관의 진단서를 요구하는 등 처리를 미루다 휴직 신청마저도 거부했습니다. 박 씨가 고용노동부에 휴직 거부에 대해 진정을 넣자 그때서야 휴직을 승인했습니다.
회사는 또 박 씨의 복직까지 미뤘습니다. 박 씨에게 3차 종합병원의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라는 등 휴직 기간을 계속 연장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출근 명령서를 일방적으로 보내고, 박 씨에 대한 비위조사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대기발령을 내렸습니다.
"회사로 돌아가 정상적인 업무를 하고 싶습니다."박 씨는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지난 2019년 말부터 회사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보직 해임, 부당 전보 시도, 휴직 거부, 복직 지연 등 혼자서 감내했습니다. 박 씨는 괴롭힘 신고에 대한 회사 보복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고 합니다. 회사로 돌아가 정상적인 업무를 하고 싶은 게 소원인데,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합니다.
피해 근로자 박 씨는 고용노동부가 인정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입니다. 근데 인정받은 게 전부입니다. 회사는 이처럼 법망을 교묘히 피해 신고자인 박 씨를 여전히 괴롭히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긴 하지만, 신고자인 피해 근로자를 보호해줄 장치는 너무 미약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