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연봉 9배 줄게" 中 제의…비상 걸린 인력 '유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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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국내 대기업 반도체 회사 연구원 김 모 씨가 꺼낸 첫 마디였습니다. 야근은 물론 주말까지 반납하고, 가족과 건강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에 매달렸는데, 지금은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받은 중국 반도체 기업의 영입 제의는 뿌리치기 어려운 달콤한 유혹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받는 연봉에 3배를 3년간 보장해주고, 최고급 집에 차량까지 준다면 당연히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 ‘반도체 강국’을 꿈꾸는 중국의 야망

지금까지 김씨처럼 중국 반도체 기업에서 영입 제의를 받은 반도체 연구 인력은 백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로 임원들을 영입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부장, 차장급까지 영입 대상이 넓어졌습니다. 이처럼 중국이 사활을 걸고 ‘인재 영입 전쟁’에 나선 건, 반도체 산업이 국가 핵심산업으로 선정되면서부터입니다.

중국은 현재 세계 반도체 수요의 약 20%를 차지하는 ‘최대 반도체 소비국’입니다. 하지만, 기술력이 뒤떨어져 반도체 대부분을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4년 중대 발표를 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선정하고, 메모리 반도체 소비량의 40%를 국산화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힌 겁니다. 이를 위해 오는 2020년까지 수십조 원을 투자해, 인재 육성과 반도체 회사 인수합병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당시만 해도,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큰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술이 한국보다 5~10년 이상 뒤처져 있어서 당장 반도체 사업에 뛰어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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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부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7월, 중국은 반도체 디램(27.7%)과 낸드플래시(20.5%) 점유율 세계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사 인수에 나선 겁니다. 미국 정부 반대 등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중국이 얼마나 반도체 산업에 공을 들이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급기야 지난 10월엔 중국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웨스턴디지털’이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 위(28.8%)인 일본 도시바와 합작으로, 미국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업체 샌드시크를 190억 달러(21.5조)에 인수하며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모두 최근 1년 새 벌어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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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산업 경쟁력은 90% 이상 핵심 인재가 좌우한다”

중국이 국내 반도체 인력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국내 반도체 기술자들은 물론 미국 실리콘밸리의 메모리 반도체 설계와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대규모로 스카우트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분야보다 반도체는 연구 인력들의 노하우가 중요한데, 그런 핵심 인력을 데려가면 다른 반도체 업체가 가진 노하우를 단번에 습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스마트폰은 회사별로 공정이나 부품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반도체는 전혀 다릅니다. 같은 D램이라도 각 회사가 쓰는 화학물질이 다르고, 어떤 장비를 어떤 순서대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20년 넘게 메모리반도체에 주력하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개발해냈습니다. 중국 기업들은 국내 인재 영입을 통해 이런 노하우를 단번에 따라잡으려는 겁니다.

이에 대해 박재근 한양대 나노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반도체 제조기술은 독특한 ‘요리법’과 같습니다. 같은 음식이라고 해도 어느 요리사가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나옵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가 중요한 겁니다.

반도체 전체 공정을 이해하는 사람 한 명만 있어서 신생업체는 수십 년의 노하우를 한 번에 배울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최고위 임원을 지낸 인재가 대만으로 갔습니다. 이런 인력은 반도체 공정 전체를 다 꿰고 있기 때문에 매우 큰 위협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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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조건’…“연봉을 3년 동안 9배 보장한다”

그렇다 보니, 국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중국 반도체 기업의 조건은 파격적입니다. “1년 연봉을 3년간 9배 보장해준다”라는 이른바 ‘1-3-9 조건’이 그것입니다. 가령, 연봉이 7천 만 원인 연구원이 있다면, 그 연구원은 연봉의 9배인 5억 6천만 원을 3년 동안 즉, 16억 8천만 원을 중국 기업에서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상시적인 구조조정 등으로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직장인에겐 뿌리치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여기에 최고급 주택과 차량, 외국인학교 입학 등 자녀 교육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조건’이 만들어진 겁니다.

실제로 과거 중국은 한국의 LCD 업체 인력을 데려가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습니다. 중국의 BOE는 지난 2003년, 우리나라 LCD 업체인 하이디스를 인수했습니다. 그때 가져간 핵심 기술과 인력을 토대로 불과 10년 만에 세계 5위권에 드는 디스플레이의 강자로 성장했습니다. 이런 성공적인 경험을 토대로, 국내 인재 영업에 발 벗고 나선 겁니다.

물론, 기업별로 일정 기간은 동종 업계로는 이직할 수 없다는 내부 지침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무용지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한국 인재를 직접 스카우트하는 대신 계열사에 취직시키는 편법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투자회사 등 명목상 반도체와 전혀 상관없는 기업으로 데려가는 겁니다. 이 경우에도 이론적으로는 법적 소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승산은 희박합니다. 설사 재판에서 이긴다고 해도, 재판이 끝나는 2~3년 뒤면 중국 기업이 필요로 하던 노하우는 이미 다 전수된 뒤여서 소송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이런 우려에, 업체들도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는 올해 전체 임원 100여명 가운데 10명 정도에게만 퇴임 통보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사업부가 20% 이상 임원을 내보낸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퇴임한 인재가 중국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대책은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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