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사상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연소 국가대표로 화제를 모았던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유영 선수가 올 시즌이 끝난 뒤 태릉선수촌에서 퇴출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19일 기술위원회를 열어 다음 시즌부터는 만13세 이상의 피겨 선수에 한해 국가대표로 선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개정안은 오는 29일 상임이사회에서 승인될 예정입니다.
유영 선수는 2004년 5월27일 한국에서 태어난 뒤 이듬해 부모를 따라 싱가포르로 이민을 갔습니다. 2010년 2월 ‘피겨여왕’ 김연아가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TV로 보고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습니다. 이른바 ‘연아 키즈’입니다. 피겨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빼어난 소질을 나타내면서 대성할 가능성이 생기자 유영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2년 전에 거처를 다시 한국으로 옮겼습니다. 결국 유영은 아버지, 그리고 대학생 오빠 2명과 떨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는 가운데 유영 모녀는 경기도 과천시의 원룸에서 생활하면서 오로지 ‘제2의 김연아’를 꿈꾸며 현실의 어려움을 참아왔습니다. 김연아를 배출한 과천 아이스링크를 비롯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습할 곳이 생기면 달려가 매일 7시간의 강훈련을 하며 기량을 키웠습니다. 폭풍성장을 거듭한 유영은 각종 최연소 기록을 모두 깨뜨리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으로 열린 지난해 12월 랭킹전에서 5위, 그리고 올해 1월 종합선수권에서 6위를 차지하며 총 8명 가운데 7위로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만 10세 7개월의 나이에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연소 국가대표가 된 것입니다.
유영은 이달 초부터 태릉선수촌내 태릉실내빙상장에서 공식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10살 소녀는 국가대표가 됐다는 기쁨보다 마음껏 스케이트를 지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흥분했습니다. 다른 빙상장에서는 일반 이용객이 너무 많아 점프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과 부딪치게 될 걱정으로 스피드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체계적인 몸 관리도 어린 선수에게는 ‘선물’같이 느껴졌습니다. 엄청난 연습의 후유증으로 무릎이 좋지 않았는데 국가대표가 되면서 태릉선수촌 내 의과학팀의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김연아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유영의 꿈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오는 29일 대한빙상경기연맹 상임이사회에서 예상대로 피겨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개정안이 그대로 승인되면 이른바 ‘행복 끝, 불행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유영의 어머니는 SBS와의 통화에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호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우리 아이가 실력이 모자라 내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이가 13살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국가대표가 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일단 국가대표가 된 선수에 한해서는 예외 조항을 두었으면 한다. 태릉선수촌을 떠나게 되면 다시 그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을 해야 한다. 자칫 우리 아이가 운동을 포기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쉽게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 13살이 되지 않으면 규정상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없습니다. 비중이 큰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어린 선수를 뽑느니 13살 이상의 선수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 빙상연맹의 판단입니다. 일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만10세7개월에 태극마크를 단 선수를 그 다음 시즌에 실력과 관계없이 나이가 13살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예 국가대표로 뽑지 않는다는 것은 ‘2022년 동계올림픽 금메달’ 을 꿈꾸며 오늘도 맹훈련을 하고 있는 ‘피겨 신동’에게는 너무 야박한 조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피겨에는 김연아의 뒤를 이을만한 이렇다 할 스타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만 11살이 되는 유영은 세계적 선수가 될 충분할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트리플 점프 5개를 모두 구사하고 나이답지 않게 표현력도 탁월합니다. 이런 유망주를 ‘제2의 김연아’로 육성하는 것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2014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소트니코바, 현재 여자 싱글을 휩쓸고 있는 툭타미셰바, 라디오노바 등 러시아 선수들은 모두 만 13살 이전부터 러시아가 정책적으로 키운 재목들입니다. 한국 빙상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