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박태환 구제가 어려운 8가지 이유…역대 판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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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 파문을 일으킨 수영스타 박태환이 오는 27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국제수영연맹(FINA) 청문회에 출석합니다. 가장 큰 관심은 징계(자격정지) 기간에 쏠리고 있습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한 선수들의 징계는 통상 2년입니다.

그런데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최대 1년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박태환의 징계가 적용되는 시점은 그가 도핑 검사를 받았던 2014년 9월3일부터입니다. 만약 2년 징계를 받는다면 내년 8월초 개막하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고 이에 따라 은퇴가 사실상 불가피합니다.

그럼 박태환은 자격정지 기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요? 저는 박태환의 변호사로 알려진 스위스의 안토니오 리고찌 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가 이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지만 그는 자신의 비서를 통해 통화를 거부했습니다. 청문회를 앞두고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국제수영연맹이 지금까지 해온 역대 도핑 관련 청문회 자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FINA 도핑 패널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판단에 근거해 징계 기간을 결정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태환의 경우는 징계 기간이 대폭 축소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8가지입니다.  

1. 불분명한 치료 목적

- 징계 감면을 받으려면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약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25살의 박태환은 남성갱년기 치료제인 ‘네비도 주사’를 맞았습니다. 남성호르몬이 부족하면 성욕 감소, 인지력 저하, 복부 비만, 전신 무력감, 전립선 비대, 공간 인지력 저하, 골다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박태환이 실제로 이런 증상으로 고통을 받았는지를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2. 납득하기 어려운 의사의 실수

- 의사가 실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감면 사유가 됩니다. 그러나 이는 의사의 단순 과실이나 착각일 경우에 주로 적용됩니다. 아니면 의사도 잘 모를 수 있는 아주 생소한 금지약물일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은 ‘금지약물 1호’로 불리며 수십 년 동안 숱한 슈퍼스타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남성호르몬 분야의 전문가인 김모 원장이 “테스토스테론이 금지약물인지 모르고 주사를 투여했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자칫 국제수영연맹을 우롱하는 발언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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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도핑 캡쳐_

3. 1번이 아니고 2번이나 주사 투여

- 검찰 수사에 따르면 박태환은 1번이 아니라 2번이나 ‘네비도 주사’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번과 2번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박태환이 결국 금지약물의 효과를 인지한 상태에서 고의로 2번째 주사를 맞았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국제수영연맹이 가장 중점적으로 따지는 것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고의로 금지약물을 복용했는지 여부입니다.

4. 약물에 대한 착각과 혼동이 없었다

- 역대 판례를 보면 약물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했거나 또는 혼동과 착각을 하면 감면 사유가 됐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는 자신의 나라에서 A라는 약물을 복용했는데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 A와 거의 비슷한 약으로 생각한 B라는 약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B에는 금지약물 성분이 일부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와 달리 박태환은 자신이 맞는 주사가 남성호르몬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약물에 대해 혼동과 착각을 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5. 어떤 약물인지를 미리 인식할 수 있었다

- 감면을 받으려면 금지약물인지를 사전에 인식하기가 어려워야 합니다. 즉 약품 용기 표면에 무슨 약물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주의 사항이 없거나 외국어로 돼 있어야 선수가 책임을 일부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네비도 주사’에는 한글로 테스토스테론으로 표기돼 있고 주의사항에도 ‘도핑 양성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6. 금지약물 여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 박태환은 의사의 말만 믿었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경로를 통한 확인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한체육회나 대한수영연맹에 알아보지도 않았고 인터넷 검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금지약물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수 개인의 책임입니다. 이 점에서 박태환은 태만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7. 약효의 지속 기간이 길었다

- 감면을 받은 사례를 보면 해당 금지약물의 약효가 짧거나 대회 성적과 직접 관계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출전을 2주일 앞두고 약효가 10일 정도인 약물을 복용했을 경우 경기력 향상과 메달을 위해 약을 먹었다는 고의성이 입증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약효가 길었을 경우에는 다릅니다. 박태환이 맞은 네비도 주사의 약효는 약 3개월입니다. 2014년 7월29일에 주사를 맞았으니까 10월29일까지 약효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인천아시안게임 수영은 같은 해 9월 하순에 열렸습니다.

8. 도핑 교육 충분히 받았다

- 도핑에 관련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거나 또는 받았더라도 불충분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감면 사유가 됩니다. 하지만 박태환은 지난 10년 동안 최소 20차례 이상의 반도핑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대한수영연맹으로부터 6차례나 도핑을 조심하라는 문서까지 전달받았습니다. 수영선수 경험이 부족하거나 나이가 10대 후반이면 정상이 참작되지만 박태환은 이마저도 어렵습니다. 올림픽에 3차례 출전해 금메달까지 따낸 스타인데다 나이도 25살이기 때문입니다.  

징계 감면 여부와 정도를 결정짓는 핵심 기준은 2가지입니다.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가 도핑에 대해 ‘심각하게 태만’(Significant negligence)했는지 여부, ‘부주의했지만 납득할만한 실수’(Careless but understandable mistake)를 했는지 여부입니다. 역대 사례를 보면 박태환보다 감면 사유가 많고 납득이 갈만한 실수를 한 선수도 16개월의 자격정지를 받았습니다.

형평의 논리를 따를 경우  박태환의 징계 기간은 18개월에서 24개월 사이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여러 절차를 생각해보면 박태환이 내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20개월 미만의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객관적 상황만 놓고 보면 쉽지 않지만 한국 스포츠계가 막후 외교력을 총동원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국제수영연맹 청문회는 3명의 도핑 패널이 선수를 향해 예리한 질문을 던진 뒤 징계 기간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도핑 패널은 1명의 위원장과 2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은 로버트 팍스(스위스)씨가 맡을 예정입니다. 박태환이 만약 국제수영연맹의 징계 내용에 이의가 있을 경우 21일 안에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할 수 있지만 징계 결과가 번복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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