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안경 45-3: 공약
1. 공약과 예산...그리고 실천 가능성
공약은 선거용이 있고 나라 발전용이 있다. 민생챙기기용이 있고 민심 달레기용이 있다. 예산이 소요되어야 하는 것이 있고, 예산소요가 불요한 것도 있다.
여하간 정책을 입안하여 실행한다는 것은 돈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예산일 것이고 예산은 곧 국민의 주머니돈이다. 그리고 기존의 정책들과 국가기관 및 국정운용을 위해 꼭 들어가야 하는 돈이 고정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가장 크게 보자면 국방비가 전체예산의 약 30%를 차지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 교육예산, 복지예산, 공무원등의 인건비, 공공시설유지비, 인프라구축예산, 경제활동촉진 및 유지비, 연구개발비, 통일비, 농수산유지 및 보호비, 대외활동 및 지원비..등등이 고정적으로 지출이 준비된 것들이다.
이런 것을 일단 유지한 채 예산을 확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즉 에산증액이 가능하려면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시기에는 그 실행이 매우 어렵고, 결국 국채발행이나 나라 재산을 팔아서 충당할 수 밖에 없겟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고 또한 그 액수가 담보된다고 해도 결국 선거때 주장하고 약속한 공약을 다 실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약을 만들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가능하게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고 또한 각종의 묘안을 필요로 한다. 일태면 박세일 한나라당 공동선대위장이 말햇던 '다른 에산을 아끼거나 또는 불요예산을 절감하여 그것으로 충당할 수 있다'라고 한 말은 일찍이 제가 한 주장이지만, 결국 그런 방법도 동원되야 하고 또한 각종의 비용절감적 대안이 만들어지고 연구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 공약이 만들어지고 그 약속을 국민앞에 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 정치는 과거나 지금이나 그 면에 있어서는 매우 부족하고 또한 그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건방지게도 만새가 각종의 내 놓았던 대안들은 그런 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들이었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익을 창출하는 것들이 다수였다고 장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위의 기존의 것들에서 예산을 절감할 수 잇는 방안을 마련하고..라는 것은 기존의 제도나 정책 그리고 기왕에 실시되는 각종의 행위들을 재점검함으로써 그리고 그 속에서 불요비용을 삭감함으로써 그런 작업이 실재 가능하며, 그 구체적 수단은 열거하지 않겟지만, 현재의 우리 제도하에서 그리고 사업 진행과정에서 다수 존재하고 잇다는 것은 확실히 밝혀두고자 한다.
여하간 공약은 실재 대부분이 국민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것들의 백화점식 나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것들 중에서 비용측면, 실천측면, 필요정도 측면 등을 감안하여 그 우선순위가 메겨지고 그 속에서 최우선순위부터 순차적으로 그 시행이 담보될 수 잇지만, 그것들도 결국은 수정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보면 된다.
실재 좋은 안들을 스크렙하여 다 열거하는 것은 학생들도 할 수 잇는 것들이다. 즉 도서관에 가서,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하여, 그리고 스승이나 타인등에게 물어서..그런 좋은 즉 국민이 원하는 항목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란 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 실천가능한 대안을 내 놓기란 매우 힘들며 또한 시기적절성, 급요성, 환경적응성, 시스템적 개선성, 미래에 대한 토디구축성 등의 성질을 감안하여 이것들이 나열되어야 하는 것인데, 실재 공약들은 그렇지 못한 측면이 다분하며, 그것들을 일일이 점검하여 내 놓는다고 한다면 그 공약들은 결국에는 몇 줄 안되는 소책자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정책이라는 것은 무조건 외국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어서도 안되고, 또는 배척하는 것도 안되는 것이며, 무조건 사례를 맹신하는 것도 아니되며 급하다고 해서 에산절감의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된다 .
결국 예산절감을 하면 그 절감분만치 더 낳은 대국민써비스를 제공할 수 잇는 것이고, 더 낳은 삶의 질을 위해 투자할 수도 잇는 것이며, 여하간 그 유리점은 주장이 불요할 것인 바, 각종의 정책과 공약에 있어서의 각종의 점검과 통찰 그리고 미래예측, 그리고 시기적절성, 그리고 환경적응성, 급속정도, 반작용의 점검...등등이 차질 없이 포함되어야 하며, 그런 속에서의 실천적 공약이 우리 앞에서는 신뢰성 잇는 공약으로 또늕 정책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공약은 엄청나게 많은 항목을 나열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것들도 상당히 많은 양이다. 그것을 다 믿고 또 시천되리라고 믿는다면 국민의 수준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일례로서 만새가 거주하는 곳의 총선공약이 16대 총선공약과 전혀 틀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만치 공약은 다만 공약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안산시에 고부가가치산업유치라는 공약이 모든 후보에게 공통된다. 그러나 고부가가치산업이 말만치 쉽게 유칟괴는 것도 아니고 안산시는 그런 입지적 환경을 전혀 갖추고 잇지 못한데, 고부가가치 산업을 운용하려는 이들이 결코 그곳을 찾을 리 만무다. 따라서 그것은 말 그대로 공약이며 다만 국민을 눈속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ㅈ것이다.
그래서 안산시에 관해서 만새가 시청에 건의한 것이 바로 환경정책의 치중이라는 것인데, 안산시에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것이 그리고 시기적절한 정책이 바로 환경보호정책이다. 그렇다고 하여 기존의 기업체들을 몰아내거나 기업체들에게 무조건 신시설을 강요하는 것은 안산시의 토대를 흔드는 것이며, 합리적인 환경보호정책이 아니다.
따라서 만새가 제안한 것이 그린라인 설정이며, 그린경계선 획정을 주장한다. 즉 공단과 주거지의 사이를 두텁게 그린장벽으로 차단하여 일단 오염방지에 노력하는 것, 그리고 안산시 전역에 나무를 상당히 수목하고 기존의 것들과 같이 육림하거나 생기왕성하고 잎사귀가 무성한 것들로의 그리고 환경친화적인 것으로의 식목변경작업 등이다.
우선 이런 것들부터 실천하고 또한 더 진일보한 환경회복정책을 실천하다 보면, 결국 안산시의 가치가 높아지고 그렇다 보면 정치인들이나 시민들이 부르지 않아도 자연스레 고부가가치 산업은 유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책이나 공약은 이토록 실천가능하고 순리에 타당하고 실질적으로 시민들에게 또는 국민들에게 미래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잇는 것들이어야지, 우선 국민의 눈속임 하기 위한 정책 나열은 곧 공약(0약)에 불과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런 자연스럽고 순차적이고 실천가능한 정책들은 에산이 크게 소요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억지로 역류하려 하면 결국 한발짝도 진일보하지 못하지만, 흐르는 물의 방향 그리고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면 힘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진일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런 순리를 최대한 활용한 정책이나 공약 실행은 결국 많은 옣산을 절감하고 또한 기존의 것들도 점검하여 이런 방향으로 되돌릴 수 잇다면 그 예산절감효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다면 더 많은 일이 가능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복지 등 다양한 필요 욕구를 채울수 잇는 일들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위의 안산시의 경우처럼 지금 가장 필요하게 실천할 것이 무엇인가? 당장 실천가능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당장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않지만 미래에는 목적지보다 더 높이 있는 고개를 점령할 수는 잇지 않겟는가? 당장 우리가 시급히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가치가 과소평가될 요인들이 과연 무엇인가? 등등의 점검 그리고 강점 등의 점검, 이런 것들이 제대로 될 수 잇다면 결국 실천가능하고 준비가능한 대아들이 속속 나올 수 있고 그것들을 점거뮤하고 또한 민초들의 요구와 욕구에 대입시켜 보면, 그 답은 항상 준비되어 있음을 알 수 잇을 것이다.
여햐간 공약논쟁은 선거가 종결된 지금부터 이후 임기종료시까지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도 그렇고 국회의원도 그렇고 지자체장도 그렇고 지자체 의원도 그렇다. 각종의 선거직 공무원이나 공공단체 임원, 그리고 기업체 임원 등에게도 항상 적용되는 것이 약속에 대한 논쟁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이 결코 무우ㅢ마하게 진행되는 과거의 답습은 이제 그만되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실처나능하고 국민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잇는 공약들의 준비를 위해 각 정당이나 개인들은 항상 준비해야 하고 또한 그 약속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명예나 신용은 자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경력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책임의 정도, 그리고 실천의 정도에서 나오는 것이며, 약속에 대한 이행은 곧 자신의 명에를 높이거나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의 정당들이 이념논쟁을 하지 않아도 계속될 수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그 약속의 이행의 문제에서 찾으면 된다. 국민드에게 강한 신용과 신뢰를 얻는 정당이라면 전에 말한대로 어떤 이름을 갖더라도 어떤 구성원을 갖더라도 국민은 이를 신뢰하고 그 정당을 악착같이 지켜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사람이 바뀌면 그 사람에 쫒아 정당을 선호하게 되고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무용한 이념논쟁이나 알심지 말고 항상 국민의 선뢰를 지킬 수 있고 강한 책임력을 보여줄 수 잇는 그런 정치인 그런 정당으로 거듭나고 또한 실천가능하고 에산이 최고도로 절감되면서도 최대의 효액을 추구할 수 잇는 대안 및 공약 또는 약속 개발에 주력하고 그 필요성을 절감함으로써 한국의 정당은 그 생명력과 공딩파티(계속정당)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맑로 강조하자면 우선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기 보다는 미래의 이익에 치중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가 이제는 도래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많은 정당과 많은 정치인, 그리고 많은 각각의 명에를 중시하는 이들이 이런 점을 명심하여 자신의 바라는 목적을 닰헝하기를 빌어 본다.
2. 노동절
오늘은 메이데이다. 근로(노동)자분들의 노고와 그리고 기여에 대해 감사드리며, 오늘의 명절을 뜻깊게 보내시기를 바래 본다.
그러나 우선 내가 편하다고 해서 그리고 나의 불만이 급하다고 해서 그리고 동료들을 걱정하다 보면 나의 도태가 우려된다고 해서 결국 자신만을 지키는 그런 일꾼이 되지 마시길 바래보며, 다른 이를 보호해주려는 노력은 곧 나를 보호하는 노력임을 되새겨 보시길 바래 본다.
그리고 열사 전태일이 이제는 편히 쉬게 하는 즉 이제는 더 이상 전태일을 운운하지 않을 정도의 환경을 위해 노력해 주시길 당부해 본다. 근로기준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며, 실재로 근로자를 보호하라고 잇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면 그 법은 오직 일정규모 이상의 근로자, 그리고 단결된 근로자, 그리고 사용자나 정부가 배려하는 근로자만 보호되는 법이라면 그 법은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빽그라운드법이 되고 만다. 근로기준법으 근로기준법이게 하는 것은 근로자 또는 노동자의 몫이며, 이를 준수하게 하고 실효성 있게 하는 것도 모두 근로 또는 노동하는 이들의 몫이다. 따라서 이런 실천에 꾸준히 노력할 것을 재다짐하는 날이 되시길 바라며, 그럴 때 분신한 전태일도 지하에서 편히 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치는 그런 작업들이 튼실히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지, 결코 정치한다고 해서 노동자가 정치권에 진입햏다고 해서 근로자의 권익이 자연스레 보호된다거나 노동관게법이 실효성을 가지게 된다거나 평등한 보호가 확보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치는 정치, 실질적 권리확보 및 유지는 확보 또는 유지 등으로 별개로 생각하여 대처하시길 바라며, 그것이 노동자로서의 제 위치를 아는 길이 아닌가 싶다.
3. 만새
만새의 어제으 종교에 관한 글은 오직 종교에 관한 글일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를 사랑하고 바라는 뜻에서 각종의 압박을 가한다고들 하시는데, 그럴 수록 저를 좀 편하게 해 주시지요. 그리고 저를 믿고 또한 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과 저를 소유하려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보며, 또한 저는 저이지, 결코 다른 분의 잦대로 즉 틀로 맞추려고 하는 것도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저를 응원하는 것과 저를 추키는 것과 선택의 문제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강요해도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제가 거부한 것은 당연히 저의 뜻이 아님을 공표환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속에서도 결국 여자들을 들이대다뇨? 그리고 그 과거에 만난 적이 있던 여자들은 솔직히 말해 저를 보좌하거나 보호하지 못합니다. 오직 집안이나 일정한 조직이 잇다고 하여 저를 보호할 수 있다고 보시는 것은 오해이며 착각입니다.
저를 보호할 수 잇는 것은 제가 만인에게 필요로 할 때 만인이 저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력할 수 있는 이가 제게는 최고의 동반자 필요조건일 것입니다. 그런 조건이 갖추어 지지 않았다면 결국 그 문제는 제 생각대로 하게 해야 하는 것이 저를 돕는 길입니다. 저는 저의 약점을 제가 잘 알고, 저에게 필요한 것이 무언지도 제가 잘 압니다. 물론 타인이 더 잘알고 잇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실한 것만큼은 제가 더 잘 압니다.
이는 정치를 하든 안하든, 사업을 하든 안하든, 또는 어떠한 일을 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분명히 말해 저는 죽도록 매를 맞았고 죽음 문턱에가지 수시로 다가갔단 사람입니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실적도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엄청난 방해와 장애물 속에서 이루어진 것드이어서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뭐가 걱정입니까? 그 문제만 정상적으로 풀려도 결국 저는 돈방석과 명예를 동시에 쥐게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뭐가 또 다른 빽과 돈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서로간의 신뢰성이나 선호도보다 더 우선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만새 조양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