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에 남아 있는 것이 유죄입니까?-
오늘 오후 3시 차 안에서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 2차 명단발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낙천낙선 대상에 제가 올라있었으며, “총선연대에서는 2차대상자의 선정에 있어 예상후보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수집 엄격한 실사의 결과라고 밝혔습니다”로 뉴스의 끝을 맺었습니다. 저는 순간 온 몸이 달아오르고 똥바가지를 뒤집어쓴 오욕감이 들었습니다. 곧 이어서 여기저기서 휴대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 선거준비사무실과 지역에서 저를 아끼고 돕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96년의 시국강연회를 이유로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선거법위반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총선연대가 저의 공소장을 통해 사실내용을 확인하거나 적어도 저에게 반론의 기회라도 주어졌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시국강연회를 이유로한 저에 대한 유죄판결은 누가 보아도 정치보복적인 결과였습니다. 먼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제정구, 이부영, 노무현, 김정길, 이철, 유인태, 원혜영, 그리고 저 박계동 등은 소위 개혁세력으로 ‘지역주의 극복과 개혁’을 강력 주장했던 꼬마민주당 출신의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 번복발언과 명분없는 분당으로 인해 명분을 따르느냐 아니면 실리를 구할 것이냐의 문제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 천도교회관에서의 ‘명분없는 재선보다 차라리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작고한 古 제정구의원의 발언은 지역주의 정치에 볼모되어 똥개처럼 끌려 다니기를 거부한 우리의 숭고한 의지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꼬마 민주당이 시국강연회를 하게된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저가 95년 10월 19일 노태우비자금사건을 국회에서 폭로하고 이어서 이 사건의 관련자 처벌과 진상의 올바른 수사를 촉구했으나, 검찰은 4천억 비자금 조성내역을 4대 재벌기업을 비롯한 30여 대기업 총수들을 단 2일만에 액수할당식 짜깁기 수사를 통해 억지 봉합할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4천억의 조성내역이 율곡비리, 고속철사업, 원전발주비리, 석유비축기지공사사업 등 소위 5.6공비리라고 불리는 대형국책사업을 둘러싼 비리로 조성된 검은돈으로 확신했던 저희 당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였습니다. 이것을 국민들에게 직접 알리자는 것이 당시 전국적으로 시국강연회를 개최하게된 동기입니다. 당시 정부는 이 시국강연회의 파괴력을 두려워하여 선거법을 이유로 사실상 원천저지에 나섰던 것입나다. 제가 주연사로서 이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부 당국의 이러한 방해공작에 딱 떨어지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바로 저의 공소사실 1번에 적시된 노무현 대통령의 종로집회 발언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996년 2월 10일, 종로2가 제일은행 본점(당시 노무현 지구당사 옆)에서 개최된 시국강연회에서
“이 종로에서부터 노무현을 앞세우고 승리하는 서울 시민, 희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 될 것입니다. ... 김대중씨의 정체 그것도 분열의 정치입니다. 김종필씨 그는 부패의 정치입니다. 민주당을 살려야 나라가 삽니다. 3김의 정당은 모두 쭉정이 정당입니다. 이번 4.11총선에서 한번 해 치웁시다”라고 발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발언이 핵심적 사유가 되어 당시 시국강연회의 주체였던 ‘희망물결본부’의 꼬마민주당 책임자였던 저를 상대로 처벌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거법 위반발언은 현 노무현 대통령이 하고 처벌은 박계동이 받은 꼴이었습니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 이후에도 당사자였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은 사면 복권되어도 박계동은 사면복권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한 이유로 율곡사업의 예를 들겠습니다. 감사원은 율곡감사를 하면서 UH-60헬기를 도입하면서 FMS가격으로(정부간 직구매가격) 대당 641만불 하던 헬기를 대당 810만불에 구입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고 소위 5.6공비리라고 불리는 대형국책사업이 다 이 모양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밝히라고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이 과연 유죄란 말입니까?
대통령의 숨은 검은 계좌를 들여다 보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바로 알린 것이 죄란 말입니까?
바로 이것이 제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였습니다.
제가 선거법위반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저의 변호를 담당했던 이찬욱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김대중 대통령의 정부하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시는 분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분열주의자”로 비난했던 내용을 법정에서 진술케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저는 이 공소장의 자료를 감추었습니다.
이런 의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저를 위해 한 일은 전 비서관이었던 성연찬씨를 통해 100만원권 수표를 보내 벌금을 대신 내 준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국강연회에 연사로 함께 했고 누구보다도 이 사건의 억울함을 잘 알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해수부장관으로 각료의 한사람이었고, 김정길씨가 정무수석으로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사면복권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열, 박원순 정성헌등 시민사회단체들의 저명인사가 주도가 되어 ‘박계동 전의원의 사면복권을 요구하는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함세웅, 송기인, 김병상 신부님 등은 청와대에 진정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송월주, 진관스님, 법조계의 이돈명 변호사도 동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정말 인정도 없고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2000년 총선을 앞둔 8.15특별사면을 앞두고 강남의 한 호텔에서 김정길 정무수석과 마주했습니다. 뜻밖에도 김정길 당시 정무수석은 저에게 새천년민주당 입당을 권유했습니다. “새천년 민주당에 입당하면 사면복권도 해 줄 것이고, 공천도 줄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김정길 수석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억울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수석이 당연히 사면복권을 해주고 나라를 생각해서 민주당에서 함께 일해 봅시다라고 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사면복권을 조건으로 이야기 한단 말이요?”하고 김정길 정와대 정무수석을 향해 버럭 언성을 높혔습니다. 이 친구 정말 정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다는 식의 한심한 표정을 지어며 그는 사라졌습니다. 이후 저는 정말 사면복권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집권당인 새천년 민주당 소속이었던 김병오 전의원은 선거법위반에다 정치자금수수가 병합되었는데도 사면복권을 시켜주면서 말입니다. TV를 통해서 보여지는 그 분의 흥분되고 기뻐하는 얼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총선연대 여러분 !!
저 박계동은 당신들의 노력을 조금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올바른 재판관은 죄를 선고함에 있어 아픈 마음으로 억울한 피해가 없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한 정치인에게 정치적 사형선고를 그렇게 무책임하게 내릴 권한을 도대체 누가 부여했습니까?
저는 제1회 대한민국 국민상을 수상했고, 전국기자 1,380명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는 ‘독자가 뽑은 올해의 인물’로 박계동을 뽑았고, 뉴스메이커에서는 ‘95년의 좋은 한국인’으로 그리고 경실련에서는 ‘경제정의를 실천한 시민상’을 수여했습니다. 진정 저 박계동이 오늘의 정치의 무대에서 떠나야 마땅할 사람입니까?
올바른 역사인식은 있는지, 당신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과연 무엇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2월 10일 박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