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시어머니.
길을 가다가 거동이 불편하거나 행선지를 까먹어 당황해 하는 노인을 만나면
그 분이 떠오른다
평소 완강한 고집의 성격은 어느 며느리와도 맞지 않았다.
연륜이 더하며 건망증이 심해지고 치매증세가 악화될땐
맘편히 기댈 치닥거리는 내차지가 됐다.
'돌보겠노라' 내 스스로 결정짓기까지 나도 많이 망설였었다.
결국 과거형의 미운감정이 '사람답게 살자'라는 양식에 굴복한 셈이다.
대 소변을 가리지 못하여 온 식구를 힘들게 해도
내 아이들은 할머니의 눈꼽 떼어주고 머리빗겨주면서
반복하여 들려주는 지난얘기를 잘 참고 들어 주었다.
우리에겐 귀찮고 짜증스런마음이 먼저지만,
당신에겐 마지막 남은 유일한 거였다.
그런 시어머니의 막내딸은 아직도 귀여운 '내새끼'였다.
귀여운 '내새끼'가 휴일을 이용해 친정 엄마를 보러왔다.
"어이구 울 엄마 이젠 많이 늙었네."
"............"
"몇년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뜯어다 준 질경이 나물을 먹어 봤었는데..."
마흔줄에 들어선 막내딸이 측은해 하며 엄마 손을 꼬옥 잡고 이마와 양옆에 패인 주름살을 들여다 본다.
내가 상차림을 하도록 안보였던 어머니는 밥을 거의 먹어갈 무렵에 무언가 가득찬 까망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내용물을 꺼내보이며
"얘야. 이거 질경이다. 니가 금방 간다고 해서 뜯어왔어."
(좀 전만해도 '엄니 내가 누구여?'묻는 딸에게 거들떠도 안보며
'물러유'한마디 였고 '그럼 막내올케는 아는겨?'라고 묻자
'밥해주는디 왜 물러유'허부적 웃고는 아는체했다.)
계단을 오르내릴때면 숨이가빠 힘드는데
밥먹고 가기전에 뜯어다 주고 싶은거였다.
신문지를 펼쳐놓고 그 위에 쏟아보니 검불과 질경이가 범벅이 되어 있다.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막내딸이 질경이 나물을 무척 먹고 싶어 하는 줄 알고 당신 딴엔 부지런히 뜯어온 거였다.
나와 고모는 질경이를 다듬으며 가슴깊은 곳 에서의 뭉클함을 느껴야했다.
고모가 말했다.
"울 엄마는 늙어 다들 싫다 해도 부모 마음은 이런건데..."라며
코끝이 시큰함에 말을 못 이었다.
질경이 보다는 잡풀이 많이 섞여 다듬어 내기가 더디었다.
기차시간 임박한 것 생각하면 차라리 버릴까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고모와 나는 마주앉아 열심히 골라 내고 다듬었다.
그리고 가져 갔다.
고모는 상큼한 질경이를 나물무침해서 먹었거나 된장국을 끓여
그 옛날 친정 어머니가 끓여줬던 구수한 맛을 기억 하며 잘 먹었을것이다
*방영주*작가님과 함께하는
<채보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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