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가장 시설이 쾌적하다는 강남의
모종합병원 정신병동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 입원료만으로도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고급 휴양소같은 곳이었지요.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10대 초반의 아이들.
그들은 모두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질병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그들에게서
정신병의 징후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명민해
보였지만, 간혹 대화 중간마다 두통과 복통을 호소
하면서 그동안 마음과 몸에 쌓인 억압을 털어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중 한 아이는 강남의 꽤 물좋은 중학교에서
전교1등을 놓치지 않다가 최근에 성적이 갑자기
떨어진 충격으로 거식증에 걸려 그곳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맞벌이 부모 밑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사교육기관을
전전하다 우울증에 빠져버린 경우였습니다.
이들 모두 우리 사회의 참혹한 경쟁의 희생물이었
습니다. 경쟁의 칼날 위에서 춤을 추다가 결국
발이 베인 채 절뚝거리며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슬픈 눈빛엔 우리 교육의 절망스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워야할 시절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게
보내야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숨쉴 여유를 갖게
해주는 것. 그들에게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미덕이 우리 삶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당연하고도 평범한 경구지만,
혼돈스런 세상 속에서 문득 잃어버린 가치가 아닌가
싶어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