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으로부터 갖고 돌아온 콘테이너…事實은 텅비어 있었다
家族會에 失望 퍼진다
ZAKZAK 2004年11月20日
北朝鮮에 의한 日本人拉致事件의 解決을 向해, 앞서 平壤에서 行해진 第3回 日·朝 實務者協議에서, 政府代表團이 갖고 돌아온 「物證」의 不足함에 失望의 소리가 퍼져가고 있다. 한때는, 차터(Charter)機로부터 옮겨 나온 콘테이너(Container)의 가지가지에, 『有力物證이 많이 들어가 있다』라는 觀測도 흘렀지만, 事實은 콘테이너에는 무엇 하나, 物證은 들어가 있지 않았던 것이다.
11月15日 밤, 政府代表團을 실은 全日空(젠닛쿠) 차터機가 羽田空港(하네다공항)에 到着했다. 그런데, 카메라(Camera)의 라이트(Light)를 받으며, 注目받은 것은 機內로부터 옮겨 나오는 콘테이너. 하나, 둘, 셋…. 合計 7개의 콘테이너가 確認되어, 報道陣은 活氣를 띠었다.
平壤訪問의 때는, 中國 北京經由(베이징경유)의 定期便을 利用한 代表團. 그것이 『歸路에는 차터機를 準備하고 있다』라고 하는 情報가 돌아다닌 무렵부터, 國內에서는 한때, 『生存者와 함께 돌아오는 것은』이라는 希望的 觀測까지 속삭여졌다.
이 情報는 否定되었지만, 『有力한 物證을 갖고 돌아오는 것 같다』라는 觀測은 뿌리깊게 있었다.
『콘테이너 7개에 證據가 쌓여 있다고 하는 것이므로, 男同生의 件에서 무엇인가 나올지 두근두근했다』. 拉致被害者인 市川修一(이치카와 슈이치·拉致當時 23歲)氏의 兄, 健一(겐이치·59)氏는, 當時의 心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저희들이 갖고 돌아온 「物證」은 全部, 機內에 手荷物로서 所重하게 갖고 돌아왔습니다』. 11月18日의 參院外交防衛委員會에서, 民主黨의 齊藤勁(사이토 쓰요시) 議員의 質問에 이렇게 答한 사람은, 實際로 平壤訪問했던 外務省의 齋木昭隆(사이키 아키다카) 아시아(Asia)·大洋州局審議官.
▲ 國會에서, 家族會를 失望시킨 콘테이너의 內容物이 텅비었음을 밝힌 齋木氏
代表團이 갖고 돌아온 것은, 橫田めぐみ(요코다 메구미·拉致當時 13歲)氏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遺骨」 外에는, 寫眞이나 診療記錄카드(Card), 메모(Memo) 등 페이퍼(Paper)類가 大部分.
確實히 「手荷物」로서 機內에도 充分히 갖고 들어올 수 있다. 그렇다면, 그 大量의 콘테이너는 도대체, 무엇이었던 것인가.
全日空에도 確認했다고 하는 齋木氏의 說明에서는, 機內에 있던 콘테이너는 全部 11개. 1개는 代表團의 荷物, 4개는 運行上 必要한 機材를 싣기 위한 것, 6개는 完全히 텅비어 있었다고 한다.
『텅빈 것[콘테이너]은,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하는 것 때문에 航空會社가 準備해서 갖고 간 것 같다』[齋木氏]
게다가, 『[飛行機에 타는] 人數가 比較的 적었으므로, 運航의 때에 機體의 밸런스(Balance)를 維持하기 위해』[齋木氏] 라고 하는 役割도 있었던 것 같다.
要컨대, 家族이나 報道陣이 마른침을 삼기며 注目한 콘테이너에는, 拉致被害者의 端緖로 되는 物證은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콘테이너가 TV의 映像에 비춰져, 內容物이 무엇인가 라고 하는 것으로 여러가지 推測·憶測이 있었음을 저희들도 後에 들었다』라고 齋木氏. 野黨議員으로부터는 『그렇다면 빨리, 콘테이너의 內容物을 밝혀야 했다. 一瞬間이라도 「期待」를 갖게 한 外務省도 罪를 지은 것이다』라는 소리도 오르고 있다.
http://www.zakzak.co.jp/top/2004_11/t2004112005.html(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