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설] 중국을 바라보고 한국을 생각한다 에 대해서
(홍재희) =======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 수구적인 방상훈 세습족벌사주체제인 조선일보 사설은
“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까지 넘겨받음으로써 중국 지도부는 완전히 전후(戰後) 테크노크라트 세대로 넘어갔다. 2020년에는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그 이후 미국의 유일 경쟁국이 된다는 경제 목표를 다져온 중국이 순조로운 권력 이양으로 정치 안정의 기반까지 마련한 것이다. 중국 지도자의 교체에서 주목할 것은 합의제(合議制) 정치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세대 지도자를 미리 지목하고 훈련함으로써 그 지도자가 세계의 흐름과 외교·정치·국방·경제의 식견을 쌓아가도록 해 국정의 혼란과 국가의 방황을 사전 예방해왔다는 것이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이 “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까지 넘겨받음으로써 중국 지도부는 완전히 전후(戰後) 테크노크라트 세대로 넘어갔다.” 라고 분석하는 대목은 우리가 이 시점에서 중국 공상당 지도부의 권력이양 의도를 너무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러한 오늘자 조선사설의 오류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오쩌둥. 덩샤오핑 . 장쩌민 . 후진타오로 이어져 내려온 중국의 권력이양 형태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한다.
(홍재희) ====== 우리가 중국 공산당의 정치권력을 접근할 때 홍(紅)과 전(專)으로 구별해서 접근한다. 홍(紅)은 공산당 정치이념의 지향성을 의미하고 전(專)은 경제적 전문성 내지 실용주의지향성을 의미한다. 마오쩌둥은 중국건국을 위해 공산당 정치이념에 충실했던 홍(紅)의 상징이었다. 반면에 덩샤오핑은 공산당 정치이념에 충실했던 홍(紅)의 상징이었던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라는 오류 속에서 1970년대 후반에 중국정치의 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며 중국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경제적 전문성 내지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전(專)을 표방하며 문화혁명이라는 오류를 극복하면서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명분아래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했다.
(홍재희) ====== 덩샤오핑의 중국은 마오쩌둥이 다져놓은 정치적 기반위에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지속했고 1989년 덩샤오핑은 명분상의 정치적 역할의 대부분을 상해출신의 테크노크라트인 당의 총서기인 장쩌민에게 이양하면서 그동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자신이 독점적으로 행사해 오던 배타적 정치권력의 독점적 권한을 장쩌민에게 독점적으로 모두 물려주지 않고 중국 공산당집권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탈바꿈 시키면서 장쩌민을 “ 집단지도의 핵심” 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며 권력을 이양했다. 물론 중국의 당 . 정 . 군에 연경화 (年輕化) 라는 세대교체도 동시에 추진해 이른바 대장정 혁명세대들의 2선 후퇴도 덩샤오핑 자신이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동안 추진해 놓았다.
(홍재희) ====== 덩샤오핑이 장쩌민을 집단지도의 핵심이라는 경제발전의 심화를 위한 과도기적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한 것은 덩샤오핑 자신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심화 발전시킨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자신의 사후에도 지속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 후진타오를 일찍부터 발굴해 경제적 발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과도체제인 장쩌민 이후를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시키고 국제정치적으로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중국의 미래를 맡겨놓기 위해 미리 대비해 놓기도 했다. 이러한 덩샤오핑의 밑 그림속에서 후진타오의 역할은 전(專)보다 홍(紅)의 역할이었다., 장쩌민 으로 상징되고 있는 집단지도체제의 과도기적 역할은 덩샤오핑의 사망이후의 중국경제가 순항하는데 기여했다.
(홍재희) ===== 그러한 가운데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경제가 미국과 EU와 함께 세계3대축으로 등장했고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경제적 성장의 기회와 국제정치적 위기가 동시에 도전받고 있는 현실과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후진타오가 덩샤오핑이 설정해 놓은 과도기적 집단지도체제의 장쩌민체제로부터 모든 권력을 이양 받아 후진타오에게 집중되고 있는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후진타오는 물론 이공계 대학을 나온 테크노크라트 이지만 중국정치를 평가할 때 접근하고 있는 홍(紅)과 전(專)의 의미에서 홍(紅)에 가깝다. 그러나 오늘자 조선사설은 후진타오체제의 출범을 테크노크라트 세대로 접근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 후진타오는 세대별 구분을 통해 접근한다면 테크노크라트 세대이지만 마오쩌둥이래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강력한 중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을분출시키는 홍(紅)의 지향성을 보여주게 돼 있다.
(홍재희) ===== 후진타오는 티벳문제등 소수민족 문제를 다루는 데에도 발군의 정치적 능력을 발휘했었다. 후진타오는 유고 내전때 미국이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했을때에도 장쩌민 . 주룽지. 리펑 등의 실력자들을 제치고 중국 정부를 대표해 미국을 강력하게 비판했었다. 그 당시부터 후진타오가 접근하고 있는 정치적 상징성과 중국정부에서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우리는 잘 파악하고 있었다. 후진타오체제는 세계3대 경제축으로 등장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전을 극복하기위해서 강력한 정치 군사적 지도체제를 유지하며 중국이 세계에서 누리고 있는 막강한 경제적 위상과 지위를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시키며 지구촌 곳곳으로 팽창하기위해 장쩌민의 집단지도체제가 아닌 후진타오 중심의 강력하고 독점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할것이 분명해진다.
(홍재희) ===== 이러한 구도는 이미 덩샤오핑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국력에 부응하는 강력한 정치적 지도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사망 전에 후진타오의 정치적 성장을 전(專)보다 홍(紅)의 역할을 하도록 정치적으로 키워 왔다고 볼수 있다. 이렇게 후진타오가 무난하게 권력을 이어 받을수 있었던 것은 덩샤오핑의 의도대로 장쩌민에게 배타적 권력을 이양하지 않고 집단지도체제의 핵심이라는 덩샤오핑 사후의 중국공산당 에 연성화 된 권력의 분점을 통한 과도기 체제를 구조적으로 형성해 놓았기 때문에 이번에 장쩌민 체제로부터 비교적 순조롭게 정치권력을 이어받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21세기 중국정치의 정점에 오르는 중국 정치의 카리스마로 등장하게 됐다고 본다.
(홍재희) =====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언론들은 장쩌민의 당 군사위원회주석직 사퇴문제를 권력투쟁이나 급작스런 권력이동으로 접근하고 있으나 그것은 중국정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한국의 언론들 대부분이 앞으로 후진타오 체제가 북한과의 관계를 중국혁명1세대들과 같이 혈맹의 형제국 의미 보다 북핵문제등에 있어서 좀더 실리적이고 맹목적인 북. 중 우호 혈맹관계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은 현 후진타오 체제와 북한체제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오판이라는 점을 한국언론과 한국사회는 간과하고 있다.
(홍재희) ===== 얼마전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별한 현안이 없는 가운데 중국을 갑자기 방문한 것도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중국 정치의 권력이동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공고히 다져놓기 위한 중국측의 의도에 따라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초청해 북한에 대한 후진타오 체제의 변함없는 지지의사를 분명하게 하는 한편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설정해놓은 구도보다 빠르게 북한체제가 미국에 대해 접근하려는 것을 견제하기위한 측면도 다분히 있었다고 본다. 그런 추론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해 본다면 중국의 장쩌민 체제에서 명실상부한 후진타오 체제로의 권력이동은 한국의 언론들 주장대로 전격적으로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고 이미 사전에 주도면질하게 준비된 가운데 진행됐으며 중국의 장쩌민 후진타오 신 . 구 지도부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해 사전에 중국의 권력이동 사실을 사전에 배경설명하고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를 재확인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이런 효과는 덩샤오핑에서 장쩌민,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한국이 정권 교체 때마다 선거제의 단점을 노출하면서 권력 교체 이후 국가 목표 설정과 정체성 확립에 혼란을 불러왔던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제도의 장점을 극대화해왔고, 우리는 단점을 최대화해온 셈이다. 그러나 경기 과열에 따른 거품들, 해안과 내륙, 도농(都農) 간의 격차, 유일 공산당체제의 경직성, 소수민족들의 장래 등 중국 앞에 놓인 문제가 결코 간단치는 않다. 오늘의 중국은 국가 지도자들이 나라의 진로를 명확하게 설계하고 그에 입각해 국민을 결집하는 리더십으로 이 난제들을 조절하는 능력을 발휘해옴으로써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동시에 성취한 것이다. 이런 양국의 국가운영의 차이는 이제 한국을 중국 1개 성(省)의 GDP, 외자 도입, 무역량에도 밀리는 수준으로 밀어내 버렸다. ”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가 분석하는 방법으로 접근해 봤을때에는 오늘자 조선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 이런 효과는 덩샤오핑에서 장쩌민,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 라고하는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분석에서 중대한 오류가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부연다면 마오쩌둥은 중국의 건국과정에서 정치 이념 중심의 홍(紅)을 지향했고 덩샤오핑은 중국의 건국이후에 문화혁명의 오류를 극복하며 중국이라는 국가의 수성과 함께 경제발전을 위해 전(專)의 성향을 보였고 장쩌민은 덩샤오핑의 사후 전환기에 안정적으로 경제적인 연착륙을 이끌 전문성이 필요한 집단지도체제를 통한 전(專)의 과도기적 체제를 유지하다 이번에 후진타오에게 세계 경제강국으로 등장한 중국의 21세기 정치의 강력한 견인차 역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후진타오에게 정권이 이양됐다.
(홍재희) ===== 후진타오는 현재 중국이 국제적으로 누리고 있는 지위를 확대재생산을 지속시키기위해서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 발휘를 할수 있는 정치권력을 행사할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홍(紅)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중국의 정치권력의 이양작업은 중국적 특색의 공산주의 일당독재체제에서만 이 가능한 인치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조선사설은 이러한 중국의 공산주의 일당독재체제의 인치를 한국의 민주적인 정치질서의 교체와 수평적으로 단순비교하고 있다. 이것이 조선사설의 두 번째 오류이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한국이 정권 교체 때마다 선거제의 단점을 노출하면서 권력 교체 이후 국가 목표 설정과 정체성 확립에 혼란을 불러왔던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사설의 문제제기도 왜 오류인가하면 중국공산주의 일당독재체제 내부에서의 권력이양작업을 기준으로 해서 한국의 민주적 선거절차를 통한 정치발전을 비교해 한국정치를 어처구니없게 폄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여러번 반복되는 다당제하의 정치권력의 순환적 교체를 통해 형식과 내용면에서 있어서 사실상의 일인독재와 사실상의 일당독재 군사독재체제를 차례차례 극복하면서 오늘과 같은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성숙 과 인권이 신장되고 있는 민주정치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홍재희) ===== 그러나 오늘자 조선사설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있는 중국은 제도의 장점을 극대화해왔다고 하는 중국의 일당독재정치체제가 오늘날 한국의 민주정치가 발전시킨 다당제와 민주주의 와 인권 그리고 시민사회의 자유보장 등의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질적인 차이는 비록 중국의 정치질서가 안정돼 있다고 해도 한국이 현재 향유하고 있는 민주정치 발전과정에 까지 다다르기에 중국의 정치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조선사설은 그러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중국이 한국의 정치제도를 따라올수 없는 일당독재속에서의 안정이라는 찻잔속의 안정이라는 속에서 한국정치발전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다.
(홍재희) ===== 조선일보는 지금 중국의 공산주의 일당독재제도의 장점을 찬양하면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의 민주정치체제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중국 공산당 정권의 정치적 업적을 지금찬양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사설은 “ 그러나 경기 과열에 따른 거품들, 해안과 내륙, 도농(都農) 간의 격차, 유일 공산당체제의 경직성, 소수민족들의 장래 등 중국 앞에 놓인 문제가 결코 간단치는 않다. 오늘의 중국은 국가 지도자들이 나라의 진로를 명확하게 설계하고 그에 입각해 국민을 결집하는 리더십으로 이 난제들을 조절하는 능력을 발휘해옴으로써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동시에 성취한 것이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재희) ====== 중국지도자들이 공산주의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인들의 신뢰를 얻을수 있었던 것은 먼저 부패에 찌들지 않았고 도덕적으로 민족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지도급 인사들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유지하기위해서 솔선수범했기 때문에 그런 측면들이 천안문 사태등의 국가적 위기때 마다 대다수 중국인 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데 결정적인 기여했다는 점이다. 조선사설은 “ 이런 양국의 국가운영의 차이는 이제 한국을 중국 1개 성(省)의 GDP, 외자 도입, 무역량에도 밀리는 수준으로 밀어내 버렸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에 대해서 묻겠다. 명목상 중국과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해보면 한국인 들 소득이 중국인들 소득의 10배 이상 앞지르고 있을 것이다. 부연한다면 중국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자랑하고 있는 성의 소득도 한국인들의 평균치 소득을 따라오지 못한다. 조선사설은 단순하게 경제력의 규모만을 놓고 접근하고 있다. 정치에 있어서도 중국은 한국이 누리고 있는 다당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보장과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보장 등에 있어서 중국이 한국을 따라 올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 조선사설 어떻게 생각하나?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중국이 당과 국가의 목표에서 ‘계급 투쟁’을 끌어내리고 국가의 관심과 자원을 인재를 길러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쏟아왔던 것에 비해, 한국은 과거사 논쟁, 정체성 논쟁, 보안법 논쟁 등 국가를 미래로 이끌고 갈 동력(動力)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소모성(消耗性) 논쟁에 매달림으로써 전 분야의 하향 평준화가 국가의 흐름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발전을 이끌고 그 발전이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배양된 자신감은 다시 발전의 추진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었던 중국과, 국민 분열과 대결, 과거 집착이란 악순환의 고리 만들기를 국가 지도자가 선도해온 한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중국을 바라보고 스스로 반성해야 할 처지가 된 근본 원인은 우리가 국가의 과거 역사를 부정하고 과거 지도자들을 격하하는 데에만 매달려 자학적(自虐的) 과거 논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지도부의 착각과 오해는 중국이 문화혁명의 대재앙을 불러온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마저 ‘공(功) 7 과(過) 3’으로 매듭짓고 과거가 현재와 미래 설계를 훼손하지 않도록 미래지향의 리더십을 키워온 것을 바라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 중국이 당과 국가의 목표에서 ‘계급 투쟁’을 끌어내리고 국가의 관심과 자원을 인재를 길러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쏟아왔던 것에 비해, 한국은 과거사 논쟁, 정체성 논쟁, 보안법 논쟁 등 국가를 미래로 이끌고 갈 동력(動力)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소모성(消耗性) 논쟁에 매달림으로써 전 분야의 하향 평준화가 국가의 흐름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중국은 본토를 공산주의화 해놓고 1949년 부터1977년 까지 장장 28년동안 ‘계급 투쟁’을 당과 국가의 목표로 설정해 놓고 철저하게 추진해 왔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엄청난 시행착오도 있었다. 중국사회가 지불한 댓가도 엄청났다. 문화혁명이 그 정점 이었다.
(홍재희) ===== 그러한 중국 정치내부적인 체제의 정체성을 다져놓는데 30년 가까이 소요됐다, 그러한 정치적 기반위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역동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조선사설은 “ 한국은 과거사 논쟁, 정체성 논쟁, 보안법 논쟁 등 국가를 미래로 이끌고 갈 동력(動力)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소모성(消耗性) 논쟁에 매달림으로써 전 분야의 하향 평준화가 국가의 흐름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재희) ====== 중국도 1949년부터 중국 본토를 통일하고부터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과거사 청산이었다. 중국공산당은 본토를 통일하자마자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 행위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하고 청산했다. 중국의 건국과정에는 친일 반민족 범죄행위자들이 한명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마오쩌둥. 주언라이 . 덩샤오핑 . 등 중국이라는 국가체제의 건국과 수성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모두 일제와 맞서 싸우며 항일 투쟁을 한사람들이다.
(홍재희) =====장개석의 대만정권도 중국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본토에서 쫓겨나 대만에 들어오자마자 즉각 친일 부역행위자들에 대한 역사 청산작업부터 벌여서 수백여명을 처형하는 철저한 일제 청산을 하는등 중국 본토와 대만에서 이념의 차이를 떠나 일제부역자 청산작업을 벌였다. 그러한 청산작업을 통해 중국 본토와 대만이 각기 공동체적 일체감을 형성하면서 경제적 발전을 추진해 왔기 때문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뉘어진 중국 본토와 대만이 경제발전을 통해 파생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사회적 통합의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홍재희) ==== 이에 비해서 우리사회는 일제부역자들은 물론 군사독재 부역자들까지 첩첩이 쌓여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정의와 가치관을 유린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에서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중국본토의 좌파와 대만의 우파를 막론하고 이미 수십년 전에 한국의 방씨 족벌 조선일보와 같이 친일 반민족 범죄행위를 한 개인이나 언론기관들을 철저하게 청산하고 극복했다. 이것이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문제 사회정체성에 대한 정리문제에서 드러나고 있는 차이이다. 중국과 대만의 예에서 보듯이 과거사를 제때에 철저하게 청산한 공동체가 사회주의 체제이건 자본주의 체제이건 경제사회발전에 공동체적 동의를 얻어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실사구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지도자가 발전을 이끌고 그 발전이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배양된 자신감은 다시 발전의 추진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었던 중국과, 국민 분열과 대결, 과거 집착이란 악순환의 고리 만들기를 국가 지도자가 선도해온 한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지도자 그룹중에 친일 반민족 범죄행위를 저지른 반민족 범죄자들은 한명도 없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지도자들 중에는 친일부역을 한사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또 친일 반민족 행위에 이어서 대한민국의 헌법을 총칼로 유린하며 민주정치체제를 파괴한 반민주 국가적 반란행위를 저지르는 악순환으로 연계됐다.
(홍재희) ====== 그러나 중국과 대만의 정치지도자들은 그런 반민족 범죄를 저지른 친일 부역자들이 한명도 발 붙일수 없었다. 조선일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사설은 “ 중국을 바라보고 스스로 반성해야 할 처지가 된 근본 원인은 우리가 국가의 과거 역사를 부정하고 과거 지도자들을 격하하는 데에만 매달려 자학적(自虐的) 과거 논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 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 장쩌민 후진타오 체제는 중국대륙에서 친일 반민족 범죄행위를 저지른 부역자들을 긍정하지 않았고 일본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에 참여했던 친일부역자들을 긍정하지 않았고 부정했다. 청산했다 . 극복했다.
(홍재희) ===== 그러나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라면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에 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던 중국의 친일부역자들을긍정하고 그들을 격하 하지말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자 조선사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중국의 지도자들은 대만의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일제식민지의 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친일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청산하고 처단했다. 조선일보는 이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중국의 장개석 정권도 일제에 부역한 핵심인사들을 모두를 냉저하게처벌했다. 아래 내용은 장개석의 대만정권이 친일파를 청산한 사례이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지난 1945년 '징치한간조례(懲治漢奸條例)'를 제정, 2만5155명이 재판에 회부돼 1만4932명이 처벌을 받았으며 이중 369명이 사형됐다. 또한 979명이 종신형, 1만3370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이와 함께 유죄판결을 받은 상당수가 전 재산 몰수형을 함께 받았다고 이 박사는 밝혔다.” (자료출처 = 오마이 뉴스)
(홍재희) ======= 조선사설은 “ 한국 지도부의 착각과 오해는 중국이 문화혁명의 대재앙을 불러온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마저 ‘공(功) 7 과(過) 3’으로 매듭짓고 과거가 현재와 미래 설계를 훼손하지 않도록 미래지향의 리더십을 키워온 것을 바라보면 더욱 분명해진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사설은 문화혁명에 대한 성격이나 덩샤오핑의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를 왜곡시키고 있다. 중국의 문화혁명은 오늘의 후진타오체제가 등장하기 까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부연한다면 중국공산당의 본토 통일이후 오늘날 중국공산당체제의 수성을 위한 공고화작업의 일환이었다. 그 과정상의 문제점에 대해서 평가를 한 것이다.
(홍재희) ===== 이러한 마오쩌둥과 한국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권 당시의 수구정치적 과오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먼저 박정희는 마오쩌둥이 장개석과 국공합작을 통해 일제와 민주의 괴뢰국과 맞서 항일독립전쟁을 치룰때 일제의 장교로 만주에서 근무했다. 박정희 전두환 . 노태우 정권은 대한민국의 민주헌법을 유린하고 민주 국가적 정체성을 파괴했다. 이러한 박정희 전두환 . 노태우 정권의 역할은 대한민국의 민주정치질서를 심화 발전시키는 것 보다는 파괴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의 과오는 있었지만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과 함께 정권을 유지하지 않았다. 중국은 친일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하고 청산했다.
(홍재희) ===== 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 노태우 정권등은 친일 반민족 범죄행위를 저지른 부역자들과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 친일 부역자들과 유착해서 정권을 유지하기위해 민족 정통성과 민주국가의 정체성 그리고 사회공동체의 가치관을 파괴했다. 대한민국 이 추구하고 있는 헌법적 가치질서인 민주정치를 철저하게 유린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이러한 박정희 . 노태우 . 전두환정권과 중국의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주의정권의 심화발전과정상의 과오를 조선사설이 단순하게 수평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조선일보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장짜민 후진타오 체제로 이어지는 오늘의 중국정부 지도자들이 철저하게 친일 반민족 범죄행위자들을 청산하고 극복하고 처벌하고 난 뒤에 오늘의 중국 이라는 국가적 안정의 기틀을 마련해 놓은 점을 배워야 한다.
[사설] 중국을 바라보고 한국을 생각한다 (조선일보 2004년 9월21일자)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까지 넘겨받음으로써 중국 지도부는 완전히 전후(戰後) 테크노크라트 세대로 넘어갔다. 2020년에는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그 이후 미국의 유일 경쟁국이 된다는 경제 목표를 다져온 중국이 순조로운 권력 이양으로 정치 안정의 기반까지 마련한 것이다.
중국 지도자의 교체에서 주목할 것은 합의제(合議制) 정치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세대 지도자를 미리 지목하고 훈련함으로써 그 지도자가 세계의 흐름과 외교·정치·국방·경제의 식견을 쌓아가도록 해 국정의 혼란과 국가의 방황을 사전 예방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덩샤오핑에서 장쩌민,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한국이 정권 교체 때마다 선거제의 단점을 노출하면서 권력 교체 이후 국가 목표 설정과 정체성 확립에 혼란을 불러왔던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제도의 장점을 극대화해왔고, 우리는 단점을 최대화해온 셈이다.
그러나 경기 과열에 따른 거품들, 해안과 내륙, 도농(都農) 간의 격차, 유일 공산당체제의 경직성, 소수민족들의 장래 등 중국 앞에 놓인 문제가 결코 간단치는 않다. 오늘의 중국은 국가 지도자들이 나라의 진로를 명확하게 설계하고 그에 입각해 국민을 결집하는 리더십으로 이 난제들을 조절하는 능력을 발휘해옴으로써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동시에 성취한 것이다.
이런 양국의 국가운영의 차이는 이제 한국을 중국 1개 성(省)의 GDP, 외자 도입, 무역량에도 밀리는 수준으로 밀어내 버렸다.
중국이 당과 국가의 목표에서 ‘계급 투쟁’을 끌어내리고 국가의 관심과 자원을 인재를 길러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쏟아왔던 것에 비해, 한국은 과거사 논쟁, 정체성 논쟁, 보안법 논쟁 등 국가를 미래로 이끌고 갈 동력(動力)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소모성(消耗性) 논쟁에 매달림으로써 전 분야의 하향 평준화가 국가의 흐름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발전을 이끌고 그 발전이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배양된 자신감은 다시 발전의 추진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었던 중국과, 국민 분열과 대결, 과거 집착이란 악순환의 고리 만들기를 국가 지도자가 선도해온 한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중국을 바라보고 스스로 반성해야 할 처지가 된 근본 원인은 우리가 국가의 과거 역사를 부정하고 과거 지도자들을 격하하는 데에만 매달려 자학적(自虐的) 과거 논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지도부의 착각과 오해는 중국이 문화혁명의 대재앙을 불러온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마저 ‘공(功) 7 과(過) 3’으로 매듭짓고 과거가 현재와 미래 설계를 훼손하지 않도록 미래지향의 리더십을 키워온 것을 바라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입력 : 2004.09.20 19:01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