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발명가, 자기 이름 대신 AI 이름으로 특허 출원
하지만 테일러가 낸 특허 출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특허 출원 서류의 '발명자'란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자신이 개발한 AI의 이름 '다부스(DABUS)'를 적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특허법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제33조)로 '발명을 한 사람 또는 그 승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만 특허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허청은 특허 출원 내용을 심사하기도 전에, 법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허 출원을 무효로 했습니다. 테일러가 특허 출원 무효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면서 'AI 발명' 논란은 법정 다툼으로 옮겨갔습니다.
"AI가 독자적으로 창작" vs "입법 통해 보완해야"
국내 법원은 두 차례에 걸쳐 이런 테일러의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1심 판결은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에서 내려졌습니다. 주요하게는 현행 특허 법령상 '발명자'는 문언 그대로 자연인(사람)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또, '다부스'의 학습 과정에 인간이 상당한 수준으로 개입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즉, 100% 다부스가 스스로 발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나아가, AI를 발명자로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기술·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도 볼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경우 인간 지성의 위축을 초래하거나 연구 집약적 산업이 붕괴될 우려가 있고, 발명으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인간이 책임을 회피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우려도 엄존한다고 봤습니다. 빅테크 같은 소수 거대 기업이 AI를 독점해 특허법이 소수의 권익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2심 판결은 올해 발명의 날을 사흘 앞둔 5월 16일 선고됐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전부 인용하면서, "현재의 특허법 규정만으로 AI를 발명자에 포함시키는 것은 정당한 법률 해석의 한계를 벗어난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향후 AI의 발명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법체계에선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필요하면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주요국, AI 발명자 인정 안 해…호주·독일, 특이 판결
AI 발명에 대한 인식, 일반인·전문가 차이 커
특허권 인정 여부를 떠나 AI의 영역이 급팽창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엔비디아와 구글은 이미 AI를 이용해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수십만 개 이상의 반도체 소자를 주어진 공간 안에 배치하는 복잡한 작업인데, 반도체 설계 전문가도 몇 주에서 몇 개월이 소요되는 작업을 AI는 몇 시간 만에 소화해 내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리는 단백질 구조 분석을 AI가 몇 분 만에 해결했다거나, 코로나19 백신의 mRNA 구조를 AI가 재설계해 백신의 효능을 100배 이상 높였다는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앞으로 AI의 발명을 둘러싼 논란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대목입니다. AI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논란도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