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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김포 공무원 그의 마지막 대화엔

뉴스토리 <공무원 퇴사합니다..그들이 떠나는 이유> 취재 후기

세상의 하늘은 이미 개었지만 어머니의 하늘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했습니다. 어렵게 연결된 통화 속 어머니의 목소리엔 깊은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습니다.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어미의 죄책감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죠."

아들을 먼저 보낸 지 두 달. 세상은 조금씩 잊어가고 있지만 어머니는 집 안 곳곳에서 아들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습니다. "엄마 바쁘다고 우리 아들이 집안일을 거의 다 해줬거든요. 나는 보일러도 만져본 적이 없어요. 아들이 이렇게 가고 나니까 어디를 뭘 만져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꼼꼼하고 자상한 아들이었어요 그렇게…"
박수진 취재파일-김포시 공무원
비보는 느닷없이 날아들었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회사 동료의 전화를 받고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상시에 실수도 별로 안 하는 성격이고, 특히 누구한테 말 듣는 거 싫어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런 성격이라인터넷에 이름 석 자 올려놓은 게 한 가정을 무너뜨린 거죠.한 가정을 무너뜨렸다"

지난 3월 5일,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도로 보수 공사에 항의하는 민원에 시달렸고, 일부 민원인들에 의해 인터넷 카페에 신상이 공개된 것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1년 6개월 전 아들이 공무원이 됐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던 어머니는 이젠 "혹시 내가 걱정할까 봐 힘들다는 푸념 한마디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마음이 쓰입니다.

"배치된 부서가 힘든 부서여서 '왜 너가 거기 갔을까'라고 했더니 '엄마 괜찮아. 처음에 힘든 곳에 가서 잘 배우고 버티면 나중에 다른 곳으로 옮길 때 편할 거야'라고 했었거든요. 최근에 얼굴이 너무 안 좋았는데. 눈빛이 뭔가 엄마한테 할 말이 있는 눈빛이었는데 말을 안 하더라고요 말을."

정부는 지난 2일 악성민원 방지와 민원 공무원 보호를 위한 대책을 내놨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에 악성 민원 전담팀을 만들고, 공무원이 폭행 폭언 피해를 당하면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법적 대응하는 걸 의무화하도록 했습니다. 폭언, 성희롱 등을 하는 민원 전화는 끊을 수 있도록 했고 악의적인 반복 민원은 답변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도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A 씨의 사망은 이런 대책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또 일반 대중이 공무원의 입장에서 민원 현장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해줬습니다.

뉴스토리 469회 <공무원 퇴사합니다..그들이 떠나는 이유>
지난 4일 방영된 <뉴스토리> 469회 방송 '공무원 퇴사합니다-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취재하며 A 씨가 사망 전 어떤 상황에 노출돼 있었는지, 문제가 됐던 도로 보수 공사 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흔적들을 짚어봤습니다. 인터넷 카페에 신상이 공개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그전에 A 씨가 처했던 상황들 속엔 민원 공무원들이 처해있는 다양한 현실이 복합적으로 담겨있었습니다. 방송에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취재파일로 담습니다. 언론 인터뷰를 고사해 왔던 유족은 "A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며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월 29일 김포시 한강로 도로보수공사가 진행됐던 이유


A 씨는 김포시 도로관리과 소속 9급 일반 기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1년 6개월 전 입직해 김포시 관내의 도로를 보수하고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는 팀에서 일해 왔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눈과 비가 잦았는데 김포시 관내에는 이 때문에 도로 파임 현상이 많았다고 합니다. 흔히 '포트홀'이라고 불리는, 도로가 파이거나 구멍이 나는 현상인데 "보통 1년 접수 건보다 지난 겨울에 접수된 건이 4배가 많았다"는 게 도로관리과 소속 직원들의 전언입니다. A 씨를 비롯해 팀원들은 각자 담당하고 있는 도로들이 있었습니다. 해당 도로에 문제가 생기면 담당 직원이 관리, 보수 등 전반을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내 차 망가졌다. 내 타이어 망가졌다. 내 차 이거 바닥 다 이렇게 된 거 너가 책임져라. 이런 민원이 많았다고 해요. 평소에 말도 잘하고 밝고 그랬던 분인데 올 겨울에 (항의 민원이) 유독 심해지면서 본인이 좀 힘들어한 거죠. 대부분 낮에 전화 오는 게 보통 한 50~60통, 많게는 100통. 대부분은 좋지 않은 소리죠." (유세연 김포시 노조위원장)

보통 보수 공사는 겨울 내 접수된 도로들을 파악해 날씨가 좋아지는 봄에 진행돼 왔습니다. 주로는 4월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해에 비해 유독 지난겨울 도로 파임 피해가 많았고, 민원이 빗발치자 보수 공사가 보통보다 서둘러 진행됐습니다. 비극의 계기가 된 김포시 한강로 도로 보수 공사가 지난 2월 29일 진행됐던 이유입니다.

"빨리 복원 공사를 해서 정상 도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또 일정 시간을 통제해야 하고, 통제를 하면 통제한다고 또 민원이 오니까…. 그 압박감들이 심한 상태에서 그날 통제를 하고 공사하기로 결정을 한 거죠." (유세연 김포시 노조위원장)
박수진 취재파일-김포시 공무원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동료와 나눈 그의 마지막 대화 보니


도로 통제로 인한 항의를 예상하고 시작한 공사였지만 항의의 양과 정도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2월 29일 밤은 3월 1일 공휴일과 주말로 이어지는 연휴의 시작이었습니다. 쉬는 날이었지만 민원은 쉬지 않았던 걸로 보입니다. 공사가 진행됐던 29일이 지나고 연휴가 시작됐지만 김포시로 걸려오는 민원 전화는 계속 됐습니다. 취재진이 유족을 통해 확인한 A 씨가 동료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는 A 씨가 당시 느꼈던 심적 부담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동료: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너무하네. 사고 안 나려고 공사하는 건데..
A씨: 그만두고 싶다.
동료: 이제 공사 안 하는 거면 어제 같은 상황은 다시 안 나올 테니
A씨: 야간 한두 번 더해야 하는데 안 하고 싶네. 트라우마 생긴다.


A씨: 어제 차 막힌 거 한 사람이 계속 전화해서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계속 그랬다는데..
A씨: 주말에 더 공사 안 할 건데도 주말 동안 어떻게 할 거냐고..월요일에 진짜 가기 싫다.


일부 민원인들은 인터넷 카페에 '공사를 승인한 공무원'이라며 A 씨의 이름과 소속, 전화번호 등이 기재된 김포시 홈페이지 내용을 캡처해 올렸습니다. 특히 해당 공무원이 공사를 승인하고 퇴근해 버렸다는 글이 비난을 더 부추겼는데, A 씨는 그날 밤 공사 현장에 있었습니다. 당직실을 통해 민원 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신상이 인터넷 카페에 공개된 사실은 사망 하루 전인 4일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 전까진 모르고 있었습니다.

출근했는데 네가 담당자였지? 너지? 뭐 하면서 너 가만 안 둘 거야라는 전화를 한 60통인가 넘게 받은 거예요 출근하자마자. 왜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오나. 본인도 처음에 의아하게 생각한 거예요. 왜 이렇게 좀 강하게 공격적으로 이렇게 모멸적으로 오나? 한 오후 3~4시 경에 동료들이 '야 네 신상 다 온라인에 공개됐어. 네 이름하고 전화번호하고….'라고 말해주면서 알게 된 거죠. (유세연 김포시 노조위원장)

A 씨의 업무였던 도로 관리는 원칙적으론 토목직 공무원이 맡아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일반 기계직이었던 A 씨는 입직하자마자 이 일을 맡았습니다. "신입 사원 업무 분장을 하다 보면 일단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일단 업무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김포시의 설명입니다.

신입 공무원을 비어 있는 자리로 먼저 배정하는 일은 공무원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사 배치 방식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A 씨처럼 자신의 전문성과는 다른 일을 맡기도 하고, 또 업무 경험이 적은 신입 직원이 맡기엔 버거운 일들을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7급이 하던 일을 9급 공무원이 맡는 식입니다. 실제 일하는 인력이 부족한 것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게 공무원 노조의 주장입니다.

박수진 취재파일-김포시 공무원

대기업 연구원이었던 그가 9급 공무원을 택했던 이유


A 씨는 한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해외 출장이 잦았고 휴일은 물론 명절에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울 만큼 바빴습니다. 30대 후반 늦은 나이에 9급 공무원에 도전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출장을 정말 많이 다녔거든요. 가족들도 잘 못 보고 명절, 어버이날에도 출장 가 있고 그랬어요. 항상 그런 식으로 일했으니까 언젠가 '부모님이랑 같이 시간 보낼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이러더라고요. 그러면서 공무원을 해보게 된 거예요. 두 번 도전해서 됐어요. 정말 좋아했거든요 임용됐을 때." (김포시 공무원 A 씨 누나)

연봉은 크게 줄었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바람으로 공무원을 택했던 A 씨. 하지만 입직 후의 삶은 그의 바람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주말에도 많이 출근했어요. 밤까지도 막 전화 오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민원인들이 당직실에 전화하면 당직실 직원이 전화 오고… .완전 자기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랐던 거죠. 본인이 생각했을 땐 워라밸을 좀 지키고, 급여가 좀 적더라도 뭐랄까 나라에서 일한다는 명예가 있다고 생각했던 건데 현실이 많이 달랐던 거죠. (김포시 공무원 A 씨 누나)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저연차 공무원들은 A 씨와 비슷한 딜레마를 겪고 있었습니다. 급여가 적은 것은 알고 들어왔지만 워라밸은 지켜질 것이라 생각하고 공무원의 삶을 택했는데 야근, 휴일근무가 적지 않았던 겁니다. 거기에 사회적으로 높은 수준의 행정 서비스가 요구되면서 민원 현장의 업무는 다양해졌습니다. 하지만 공직 사회의 일하는 방식은 과거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인수인계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게 일상이다", "민원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민원 전화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연수원에선 가르쳐 주지 않는데 업무에 배치되면 바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저 연차 공무원들의 애로를 취재하면서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뉴스토리] 공무원 퇴사합니다-그들이 떠나는 이유

질 좋은 공적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받기 위해선


지난주 <뉴스토리> 방송이 나간 후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공무원 편드는 기사를 썼으니 이젠 갑질 공무원에 피해받는 민원인 입장의 기사도 써야 하지 않겠냐며 본인이 불친절한 공무원의 대응으로 피해를 받았던 내용을 제보해 주신 메일이었습니다. <뉴스토리> 영상에도 "탁상 행정 이런 것도 많아요. 행정 잘해야 민원도 줄어듭니다" "공무원 입장만 편드는 방송 하지 마세요. 언론이라면 중립을 지켜주세요"라는 비슷한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분명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수준 낮은 행정 서비스, 공무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민원의 내용도 복합화된 만큼 공직 사회가 일하는 방식은 바뀌어야 하고 행정 서비스의 질도 나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악성 민원으로 피해를 받고 있는 공무원들의 현실이나 이로 인해 잇따르고 있는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외면해선 안 될 겁니다. 또 저 연차 공무원들의 이탈 현상도 공적 서비스의 질 저하와 비용 손실의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7급이 해야 할 일을 숙련도가 떨어지는 9급 신입 공무원이 맡는 등의 부작용도 계속되고 당연히 국민이 받아야 하는 행정 서비스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A 씨 사망 관련 수사를 하고 있는 경찰은 A 씨 관련 게시글을 올리거나 민원 전화를 건 7명 중 2명을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과 협박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 검찰로 송치했습니다. 인터넷 카페에 A 씨 관련 악성 게시글을 올리고 김포시청 당직실에 협박 전화 등을 한 혐의입니다. A 씨 유족과 김포시는 공무원연금공단에 순직인정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유족의 바람처럼 A 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 '국민의 봉사자'인 공무원들이 좀 더 존중받으며 질 높은 공적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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