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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트럼프는 왜 고개를 저었나…외통수 될까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평생 자기 마음대로 거침없이 살아온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갑부인 아버지 밑에서 금수저로 태어나 수조 원대 자산가로 아쉬울 것 없이 지냈습니다. 사업가이자 유명인사로 어디 가나 주목을 받았고 정치권으로 진출해 내로라하는 거물급 인사들을 제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기존 정치인과 다른 그의 행보에 지지자들은 열광했고 그럴수록 그의 말과 행동은 더욱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형사 기소를 당하고도 자신 만만하던 그가 최근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첫 형사 재판인 '성추행 입막음 돈 의혹' 사건에서였습니다. 지난달 22일 첫 공판에서 트럼프는 평소와 달리 매우 정적이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판사를 향해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과거 모습은 볼 수 없었고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팔짱을 낀 채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거나 거의 움직임 없이 앞을 응시했다고 합니다.

'수심 가득' 트럼프…함구령 위반 벌금

2024년 4월 30일 맨해튼 형사법원 재판을 마치고 언론과 이야기하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하지만 그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법정 안에 국한됐습니다. 밖으로 나서는 순간 바이든 대통령이 사법 기관을 무기화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마녀 사냥'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재판에 대해서도 검사와 증인, 판사 가족까지 공격하는 등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사건 담당인 후안 머천 판사가 재판 관련자를 비방하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트럼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난달 30일 머천 판사는 재판 관련 증인과 검사, 법원 직원, 배심원 등을 비방하자 말라는 함구령을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며 트럼프에게 9천 달러(약 1천2백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또 SNS와 대선 캠프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총 9차례 증인과 배심원을 공격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게시글 삭제 명령도 내렸습니다. 머천 판사는 "적법한 명령을 지속적,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필요시 수감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도 안 돼 트럼프는 함구령을 추가로 위반했다며 또다시 벌금 1천 달러(약 1천3백만 원)를 부과받았습니다. 지난달 22일 한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재판 배심원단의 공정성을 문제 삼은 게 원인이 됐습니다. 트럼프는 이번 사건의 배심원단이 "매우 빨리" 결정 됐고 "대부분 민주당원"이라며 "몹시 공정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머천 판사는 벌금 부과를 결정하면서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트럼프를 향해 함구령 추가 위반이 있을 경우 다음 제재는 벌금이 아닌 구금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머천 판사는 자신도 트럼프 전 대통령 구금이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이는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면서도 사법 시스템의 권위를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판사가 발언하는 동안 트럼프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응시하다가 발언이 끝나자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실제 수감 가능성은? '딜레마' 빠진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

법원의 이런 경고에 트럼프 전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경호국은 수감 시 경우에 대비한 계획 마련에 나선 걸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가 법정 모독 혐의 등으로 법원 유치장에 일시적으로 수감될 경우 경호 대상인 트럼프를 어떻게 이동시키고 보호할지 논의했단 겁니다. 하지만 그가 이 문제로 실제 수감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 분석입니다. 정치적으로 불러올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CNN은 다른 어떤 형사 피고인도 사법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는 공격하고 판사에게서 이런 관용을 누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판사의 경고를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벌금을 부과받은 뒤 트럼프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하는 모든 말을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간단한 질문을 하고 나도 그에 답하고 싶지만 판사가 내게 함구령을 내렸고 어기면 감옥에 갈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판사 명령을 비꼬아 비판한 거지만 트럼프로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사안인 건 분명합니다.

트럼프의 강점 중 하나는 별도의 선거 광고가 필요 없을 만큼 언론을 잘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는 자신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사법 리스크를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형사 기소를 바이든 정부의 조직적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고 이를 선전하고 있는 건데, 실제로 이런 활동이 지지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효과를 내고 있단 평가입니다.

함구령이 비록 '성추문 입막음 돈 사건'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이처럼 여론전 중시해 온 트럼프에게는 '수감 경고'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걸로 보입니다. 유죄 판결 가능성이 작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재판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그에게는 '감옥이냐 선거냐' 딜레마를 마주하게 됐단 분석입니다. 비방전을 이어 가자니 판사의 경고가 귀에 맴돌고 그냥 입을 닫고 있자니 재판 결과가 걱정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경에 빠진 셈입니다.
지난해 촬영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머그샷

지난해 범죄자 식별 사진인 머그샷을 처음 찍었을 때도 '치욕의 순간'이 될 거란 세간의 전망을 깨고 이를 저항의 상징, 나아가 선거자금 모금용 기념품 판매에 활용하는 등 기존 정치권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대응해 온 트럼프였던 터라, 이번 법원 조치에 과연 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립니다. 미 대선은 이제 채 6개월도 남지 않았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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