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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 위협 무시하고 상대 당 손 잡았다…이 정치인의 리더십 [스프]

[뉴스쉽]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이끌어낸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 이야기

한 국회의원이 있다. 나름 성실한 다선 의원이긴 하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야 극한 대립 속에 자신의 당 소속이던 국회의장이 갈려 나갔다. 당내 강경파는 이 의원을 의장으로 밀어 올린다. 자신들의 어젠다에 충실한 사람이면서, '자기 정치' 욕심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강경파는 은근한 압력을 가한다. '전임 의장 날아가는 거 봤지? 당신이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 뜻대로 의정 운영 안 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이 신임 국회의장 앞에 어떤 논쟁적인 법안이 올라온다. 자신의 평소 지론과는 반대되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당내의 보다 합리적인 사람들, 그리고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다. 법안 통과가 세상을 위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을 의장으로 밀어줬던 당내 강경파는 '그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당신을 의장직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윽박지른다.

신과 역사 앞에서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고심한 끝에, 의장은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상대 당에 도움을 청한다. 당내 강경파의 반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국가 서열 3위인 국회의장직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나라와 세상을 위해 바른 결정이라는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다.

이런 정치,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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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미국 이야기다.
 

지난달까지 잘 몰랐던 미국 서열 3위…마이크 존슨은 누구

마이크 존슨. 1972년생으로 올해 52세다. 2017년부터 루이지애나주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이므로 현재 4선째다. 트럼프와 같은 공화당 소속이다.

헌법 전문 변호사 출신인 마이크 존슨은 공화당 내에서도 보수 강경파로 꼽히던 인물이다.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 신자로서, 여성의 임신 중지권 폐지와 동성애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기자회견 중인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 지난 16일. 사진 : 게티이미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두 차례의 탄핵심판 당시엔 트럼프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 패배(당시 바이든 승리)를 부정하는 법적 논리 개발에도 관여했다. 지금도 트럼프와 가장 가까운 의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반대했다.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함한 국방 예산에 두 차례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을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충돌하던 2023년 10월, 하원 의장 공석 상태가 길어지던 혼란 속에 어쩌다 하원의장직을 맡게 됐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에서 후보 세 명이 나섰지만 다들 득표에 실패해 22일간이나 의장 공백 상태가 이어진 뒤였다.

기독교 우파 이념과 트럼프에게 충실했던 이력, 적이 별로 없는 온화한 성격과 부드러운 언행 덕이라는 평이 돌았다. 첫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의 캠페인 구호) 의장이라는 말도 들었다.

하원의장에 당선돼 축하받는 마이크 존슨. 2023년 10월 25일. 사진 : 게티이미지
하원의장은 미국의 국가 서열 3위로 꼽히는 고위직이다. 미국 대통령 유고시 승계 순위는 부통령(상원의장을 겸함)이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이 하원의장이다. 막강하다면 막강한 자리지만, 마이크 존슨이 '마가' 진영의 뜻을 거슬러 자기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이크 존슨이 하원의장으로 있는 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무슨 상황인데 ① 하원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이 통과되기 어려웠던 이유

우크라이나는 올 들어 러시아에 점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싸우려고 해도 탄약이 절대 부족하다. 러시아군이 쏘는 양의 1/10밖에 응사하지 못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방공망도 무력화돼, 발전소와 도시 등이 러시아군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러시아군 공습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TV 송신탑. 하르키우, 지난 22일. 사진 : AFP·연합
바이든 행정부와 여당 민주당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자금을 더 지원해주려고 애썼지만 지원안의 의회 승인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인데, 그 공화당 안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마가(MAGA) 의원들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기도 한 이들은 고립주의를 표방한다. '미국도 (진보 세력 때문에) 망해가는 판국인데 누굴 돕는다는 거냐. 우크라이나 일은 유럽이 알아서 하라'는 거다. 트럼프도 이들의 표심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내가 재선되면 당장 그 전쟁을 끝낼 것", 즉, 푸틴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 몫으로 인정해주고 우크라이나에 휴전을 강요할 거라고 말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하르키우를 위하여'라고 쓴 호위처 포탄을 소중하게 나르고 있다. 4월 5일. 사진 : 로이터·연합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남부 국경의 불법 이민자 난입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미국과는 상관도 없는 먼 나라 전쟁에 돈을 쓴다고 비난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들이밀 때마다 '남부 국경 대책이나 갖고 오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바이든이 국경 통제 강화 방안을 내놓지 않은 건 아니지만, 트럼프가 마가(MAGA) 의원들에게 '통과시켜 주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불법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혼란 사태가 지속돼야 자신의 대통령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슨 상황인데 ② 공화당 하원 강경파(MAGA)는 얼마나 센가

'꼴통'이라는 비속어는 기사에서 쓰면 안 되지만, 마가(MAGA) 강경파 의원들을 묘사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단어도 찾기 어렵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적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걸핏하면 연방정부를 셧다운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제대로 미국을 운영할 수 있는 세력이 맞느냐는 비판을 당내 중도파에게서도 듣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공화당 내에서 가장 입김이 세다는 것이다. 2023년 9월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 때, 당시 하원의장 케빈 매카시(공화당)는 '그래도 나라는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며 민주당과 타협해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마가(MAGA)의원들은 매카시가 공화당을 민주당에 팔아넘겼다며 하원의장 해임 투표를 밀어붙였고, 결국 그를 의장직에서 끌어내렸다.

해임 투표 4일 전의 케빈 매카시 당시 하원의장. 2023년 9월 30일. 사진 : 게티이미지
그렇지 않아도 목소리가 큰 이들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졌고, 공화당 내에서 누구도 이들에 맞서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뭐가 달라졌길래...

진영의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과 데이터, 양심에 기반해 판단을 수정한다는 것. 우리 정치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미덕을 마이크 존슨이 보여줬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존슨은 원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반대표를 던졌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직 승계 순위 2위(부통령 다음)의 자리에 오르자, 국가 안보 분야의 다양한 기관에서 기밀 자료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윌리엄 번즈 CIA 국장. 마이크 존슨의 판단 변화를 위한 정보를 제공한 인물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 3월 하원 정보위원회. 게티이미지
러시아의 공세와 우크라이나의 무기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이 무너지면 그다음 푸틴이 취할 행보는 무엇인지, 그 결과 유럽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그때 미국은 얼마나 더 큰 부담을 져야 하는지 정보기관들의 상세한 설명을 들은 존슨은 고민에 빠졌다.

범 공화당계 안보전문가들도 존슨에게 우크라이나 지원 필요성을 설명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일 때 국무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도 존슨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이상 지원을 늦췄다간 정말 우크라이나가 무너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공화당 내 국제주의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푸틴이 야욕을 채우게 놓아둔다면 히틀러의 동유럽 침공을 묵인했다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역사가 되풀이될 거라며 존슨에게 우크라이나 지원안 통과를 요청하고 나섰다.
 

역사를 위해 무엇이 옳은가…고심 끝에 입장을 바꾸다

존슨의 입장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계기 중 하나는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열린 CIA의 정보 브리핑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윌리엄 번즈 CIA 국장의 기밀 보고가 있었고, 공화당 원로인 미치 맥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우크라이나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것이다.

백악관 밀실에서 윌리엄 번즈 CIA 국장(맨 왼쪽 흰머리)이 바이든 대통령 등 정부 수뇌부에게 정보 브리핑을 하는 모습. 지난 13일. 사진 : 백악관 제공, AP·연합
존슨 의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지역구의 대변자가 아니라 하원 전체와 미국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다"며 부담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역사를 위해, 미국을 위해 무엇이 더 나은 결정인지 고뇌한 끝에,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통과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상대 당인 민주당 하원 지도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에서 반대표가 상당수 나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CNN은 존슨이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 다음 날(지난 15일)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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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뒤인 지난 20일, 결국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은 이스라엘 지원 법안, 틱톡 금지 법안 등과 함께 하원 표결을 통과했다.

표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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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중국·이란은 우리의 번영과 안보에 대한 국제적 위협이다. 그들의 약진이 자유세계를 위험으로 몰어넣고 있다. 미국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등을 돌린다면 그 결과는 궤멸적일 것이다. … 하원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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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보기관들의 보고를 진실로 믿는다. 푸틴은 유럽으로 계속 진격할 것이다. 다음은 발트해 연안 국가들일 것이고, 폴란드나 다른 나토 동맹국들과도 겨루려고 할 것이다."

사실, 이 말 자체도 공화당 강경파는 일종의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연방정부의 정보기관들이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일부라는 음모론을 믿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문제는 존슨에겐 개인적인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그는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미국의 아들들을 보내기보다는 총알을 보내는 편이 낫지 않나. 내 아들도 올가을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군대에 갈 아들을 둔) 다른 많은 가족들처럼, 나에게 이건 실사격 훈련 같은 문제다. (정치) 게임이 아니다. 농담이 아니라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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