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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잠시 찾아왔다가 금방 사라진 '복지국가' 미국, 그리고 지금은?

[뉴스페퍼민트]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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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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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표만 보면 미국 경제는 분명 호황인데, 미국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왜 이렇게 나쁜 걸까?

지난해 말부터 이 질문에 대한 직·간접적인 답을 찾는 칼럼해설벌써 여러 번 소개해 드렸습니다. 모든 사회, 경제 현상이 그렇듯 한 가지 원인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당장 아무리 경제가 좋아졌다고 해도 몇십 년 만에 찾아온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올라도 너무 많이 올라 (지표에 나타나는) 호황을 체감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건 가격이나 세금에 관한 한 심리적으로 '손실 회피 성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게다가 선거가 있는 해라서 정치적인 성향에 따른 의견이 개입할 여지도 큽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성적표에 낙제점을 주고 싶어 하고, 반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상대적으로 좀 더 관대할 겁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이 저소득층에 집중됐고, 팬데믹을 지나면서 경제적인 불평등이 심해진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경제 지표가 잡아내지 못하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즉 노동과 생산, 이윤을 분배하는 전체 메커니즘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였던 동시에 많은 나라의 경제 구조를 새로 짜거나 적어도 대대적으로 수정하게 만든 외부 충격이었습니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면, 전통적으로 자원의 배분을 대체로 시장에 맡겨 온 미국에서 전형적인 복지국가에나 있을 법한 제도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긴급 지원' 명목으로 서둘러 시행된 사회보장제도, 정책, 임시법안의 수명은 길지 않았고, 공중보건 위기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정부가 주도했던 사회보장제도들은 이내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매우 이례적이던 그 몇 달의 경험이 미국인들의 눈을 뜨게 해 줬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브라이스 코버트 기자가 그에 관한 칼럼을 썼습니다.



코로나19로 발생한 비상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자원의 배분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 실패로 자원 배분이 왜곡됐거나 정부 실패로 효율성이 낮아진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경제 자체가 멈춰버렸기 때문에 세상을 다시 굴리려면, 최소한 유지해야 할 것을 유지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했습니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늘 해오던 것을 갑자기 못 하게 되면서 세상을 굴리는 근본적인 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또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졌을 때 어디부터 지원해야 하는지도 확인됐습니다. 몇 가지 핵심적인 부문들을 살펴보면 2020년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복기해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 실업률은 3%대 중반으로 매우 낮았습니다. 그러다 팬데믹으로 경제가 얼어붙자, 실업률은 갑자기 2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아예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많고, 일감이 없어져 일시 해고(furlough)당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바이러스가 잦아지지 않는 한 언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다 보니 심리는 더욱 위축됐습니다. 일을 못 하면 당장 수입이 끊기고, 저축해 둔 돈이 없는 사람들은 금방 생계를 걱정해야 하게 되죠. 이때 필요한 게 갑자기 끊긴 수입을 일정 부분 보조해 줄 수 있는 실업 보험입니다.

칼럼에 설명됐듯 미국은 원래 실업 보험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50만 명 정도가 실업 급여를 받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 그 수치가 10배 이상 급증했죠. 그만큼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비용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던 겁니다. 갑자기 신청자가 몰리다 보니, 웹사이트가 마비되고 전화로 실업 보험에 가입, 급여를 신청하는 데 수십 시간이 걸리는 등 초반엔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급한 대로 구명줄이 됐던 실업 보험이 몇 달 지나지 않아 서서히 끊긴 겁니다. 예산이 부족한 게 문제였지만, 정부가 결단을 내렸다면 더 오래 유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연방정부와 많은 주 정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은 급여가 문제지만, 미국에서 실직하면 의료보험이 없어지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미국의 의료비가 터무니없이 비싸고, 병원 문턱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뜩이나 팬데믹으로 병원들이 마비된 터에 의료보험까지 잃게 되면 "아프면 정말 큰 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 됩니다. 연방정부는 저소득층에 제공하는 정부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를 확대해 더 많은 가입자를 받고, 기존 가입자가 혜택을 잃지 않도록 자격 심사를 완화했습니다. 그 덕분에 2천만 명 넘는 사람이 메디케이드에 새로 가입했고, 그나마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끝난 뒤 정부가 다시 메디케이드 심사 요건을 강화하면서 1,780만 명이 메디케이드를 잃었습니다. 팬데믹 초기에 새로 가입한 사람 대부분이 얼마 안 가서 다시 의료보험 보장을 받지 못하게 된 겁니다. 물론 이들이 전부 다 의료보험을 잃은 건 아닐 겁니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수입이 생겨 비싼 민간 의료보험에 든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GDP의 1/6이나 차지하는 의료 부문을 사실상 시장 논리에 맡겨 놓은 결과, "병원비, 약값 걱정에 웬만큼 아파도 병원 가지 않고 참아야 하는" 미국의 치부가 팬데믹을 거치며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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