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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세금 떼일라 70만 원 내고 월세 살아요" 민생토론회에 없는 목소리

'국민 주거 안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심화하는 주거 불안

[취재파일] "전세금 떼일라 70만 원 내고 월세 살아요" 민생토론회에 없는 목소리
전남에서 상경해 갓 대학에 입학한 혜미 씨는 보증금 1천만 원에 80만 원짜리 전용면적 약 39㎡ 투룸을 동생과 지낼 자취방으로 구했습니다. 학교 앞은 가격이 너무 비싸 그나마 월세가 싼 성북구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발품 팔았는데 조금 싼 데는 전부 반지하였어요. 여동생이랑 같이 살 거라서 CCTV 같은 보안 시설도 포기하기 어려웠거든요. 고르고 고른 게 이거였어요."

20년째 홍대 앞에서 학생과 사회초년생을 상대로 매물을 중개해 온 공인중개사 역시 대학가 월세가 최근 부쩍 뛰었다고 말합니다. 전체적인 월세 평균 액수는 65만 원에서 70만 원 정도. 그 정도 부담은 져야 '그나마 깨끗하고 살만한' 집을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8평(26㎡)이상 되는 것들은 거의 한 90만 원. 거기다가 또 관리비까지 있거든요. 관리비가 적게는 5만 원인데 흔하지는 않고, 대부분 7~8만 원 하니까. 부모님들 부담이 크시죠."
 

가파른 주거비 상승…"지난 2년간 월세 상승률 15.8%"

뉴스딱 01. '월 80만 원' 치솟는 대학가 월세

청년 세입자들은 가파른 주거비 상승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전세는 두렵고, 월세는 감당하기 힘든 청년들의 '주거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건 여러 숫자로도 증명됩니다. 주거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이 2021년에서 2023년 사이 서울시내 보증금 5,000만원 이하, 전용면적 10평(33㎡)이하인 월세집의 실거래가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 월세집의 평균 월세는 63.2만 원으로 19-34세 청년의 월 평균 소득액의 35% 차지했습니다. 관리비와 수도요금, 각종 에너지요금을 제외한 결과인데 실제 주거비부담은 이보다 훨씬 높다는 얘깁니다. 2년간 월세 상승률은 15.8%, 신축과 오피스텔일수록 임대료가 비쌌지만, 대학가에서는 구축 다가구주택의 평당 임대료도 2년 동안 15.9%나 올랐습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 1월 전국 다세대 연립주택 전·월세 거래 2만 1146건 중 월세가 1만 1,878건으로 전체의 56.2%를 차지해 국토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1년 이후 1월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전세의 월세화 심화…아래로 고이는 주거비 부담

다가구주택 (사진=연합뉴스)

주거 사다리로 불리는 빌라, 다가구주택에 대한 '전세의 월세화' 경향이 심화되는 건 국토부 산하 국토연구원 자료에서도 드러납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는 ▶ 2022년 8월 이후 전세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발생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보증금 미반환에 따른 대위변제가 보증금 2억 원 수준에 집중되어 있어 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시장 리스크가 집중 ▶전세보증금 반환 문제가 본격화된 2022년부터 임대차거래량의 40% 수준이던 월세 거래가 50%를 넘어서 월세 선호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박진백/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

"그동안은 우리 사회가 전세를 더 소비하게 만드는 제도적인 측면들이 많았어요. 주거 비용 자체도 훨씬 저렴하고, 공급자 입장에서도 임대소득세 등 전세 공급 시 세제 혜택이 워낙 컸습니다. 그런데 가격 폭등과 폭락에 대한 모든 리스크를 임차인이 다 지는 구조라는 것이 이번 전세사기 국면에서 드러났잖아요. 반환 능력이 되지 않은 사람이 집 몇 백 채를 살 수 있는 구조를 그대로 둔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죠. 현재 모아둔 돈이 별로 없는 2030 청년들, 자금력이 부족한 신혼부부 이런 분들이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선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전월세 어느 한쪽으로의 급격한 쏠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갑자기 월세 수요가 늘면 그만큼 월세가 급등할 가능성이 높으니 면세점 이하의 사람들에 대한 월세 바우처 지원, 전세금 일부 예치를 통한 무자본 갭투자 방지 등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실제 취재를 위해 만난 대학생들은 비싼 주거비 부담에 자취를 포기하고 통학을 택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 역시 전세사기 공포 탓에 부쩍 월세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적게는 한 달 6~7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전세에 비해 주거비 부담이 더 큰 월세를 택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전세 사기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구조는 그대로인데 사전 예방책 마련은 요원한 상황에서 '엄벌'만 외치는 정부 태도를 보고 결국 각자도생 하는 겁니다.
최은선 /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저희가 농담 삼아 정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면 '나도 전세사기 치겠다' 이런 말을 하거든요. 여전히 무자본 갭투기 너무 쉽잖아요. 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피해자들이 범죄 자체를 입증하고, 조사해야 하고. 피해자가 죄인이 된 느낌이에요."
 

'국민 주거 안정' 강조하는 정부…진짜 세입자 목소리는


정부도 이런 문제를 모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권 출범 이후 계속해서 '주거 안정'을 강조해 온 정부는 올해 초 민생토론회에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습니다. LH의 조기 피해주택 매입과 사기 가담 공인중개사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지만, 실질적인 전세 사기 구제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갭투기를 부추겨 깡통전세의 원인으로 지적된 등록 임대주택 활성화, 공적 PF대출 강화 등의 공약으로 인해 정부 정책의 무게 추가 '서민 주거 안정' 보다 침체된 건설 경기 활성화에 쏠려있다는 지적도 잇따랐습니다.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린 열일곱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윤 대통령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린 열일곱 번째 민생토론회

청년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도 가장 바깥에 밀려난 주거 세입자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습니다. 지난 5일, 열일곱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담은 정부 브리핑 기사의 제목은 "비싼 전월세 때문에 막막했는데"…'이것' 덕분에 주거 부담 던 청년들" 이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뉴:홈·주택 대출 지원 ▶기숙사비 분할 납부 등 결제방법 다양화 ▶월 최대 20만 원씩 12개월에 걸쳐 월세를 지원하는 '청년월세 특별지원'이 청년 주거와 관련된 주요 대책으로 언급됐습니다. 연 최대 240만 원으로 신설하는 주거장학금을 10만 명에게 줄 경우 2,400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정부가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 등을 밝히지 않은 건 문제라는 지적 역시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전세제도로 인한 피해자가 여전히 양산되는 상황, 그 피해 대부분이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뗀 2030 청년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민생토론회에서 이들을 호소가 들리지 않은 건 아쉬운 대목입니다.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A 씨

"피해자들이 0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사회초년생들이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데 어떻게 일어설 수 있느냐는 거예요. 전세 대출이라는 게 저희 세입자들한테 돈이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집주인한테 직접 통장으로 들어가는 돈인데. 구경도 못해본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인데 은행 빚을 갚자니, 저희 가정이 무너질 것 같고 저희 가정을 살리자니 은행 빚을 못 갚겠고 그러면 저희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거죠."

대통령의 업무보고에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을 붙인 건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공무원의 시야에서 벗어났던 쟁점들, 전문가 집단도 놓치고 있었던 문제들을 다양한 계층과 지역 주민 목소리를 통해 들으려 했던 취지였을 겁니다. 현재까지 국토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만 1만 4,001명. 쌓이는 숫자 너머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청년과 신혼부부들의 좌절과 불안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말해야 합니다. 재개발, GTX, 신규 고속도로 건설 등 쏟아지는 개발 공약 사이, 피해 세입자들에게도 한걸음 더 와 닿는 "국민 주거 안정" 해법이 담겨있기를 기대했던 국토부 출입 기자의 아쉬움을 길게 기록한 이유입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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