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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장비의 한을 담은 명주를 맛보다…'바오닝야주'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③] 쓰촨 (글 : 모종혁 중국 문화 평론가·재중 중국 전문 기고가)

랑중고성은 당대의 도로 양옆으로 수백 년 된 민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동서양의 고전을 막론하고《삼국지》 만큼 오래도록 사랑을 받아 온 작품도 드물다. 오늘은 《삼국지》를 빛낸 한 영웅을 떠올리며 음미할 만한 중국 명주를 소개하려 한다.

쓰촨(四川) 성 동북부에 자리 잡은 랑중(閬中)은 산시(陝西) 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청두(成都)처럼 2300년 전 이름이 지어졌고, 2천 년 가까이 쓰촨 북부의 행정과 산업의 중심지로 군림했다.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를 자링강(嘉陵江)이 S자형으로 꿰뚫어 흐른다. 그 지형이 흡사 태극의 형상과 흡사하다. 자링강 북쪽으로 랑중고성이 자리 잡고 있다. 랑중고성은 청대에 지어진 성곽 안에 당대 기본 골격이 짜인 도로와 수백 년 된 민가들이 원형대로 남아있는 중국 고대 도시계획의 활화석이다.

랑중고성은 옆으로 자링강이 흘러 자연풍광이 빼어나다.
고성을 둘러싼 주변의 자연풍광도 아름다워 수많은 문인들이 찾아왔다. 안사의 난을 피해서 쓰촨에 정착했던 시인 두보는 랑중을 방문한 뒤 다음과 같이 읊었다. '삼면으로 흐르는 강이 성벽을 껴안고, 주위의 산세가 노을을 가두다(三面江光抱城廓, 四圍山勢鎖煙霞).' 주변 산하에 둘러싸여 조화를 이룬 랑중의 매력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시구다. 이런 역사와 환경을 지닌 랑중고성은 오늘날 산시(山西) 성 핑야오(平遙), 윈난(雲南) 성 리장(麗江), 안후이(安徽) 성 서센(歙縣) 등과 더불어 중국 4대 고성으로 손꼽힌다.

그림자극은 배우가 스크린 뒤에서 인형으로 공연한다.
랑중에는 고성뿐만 아니라 옛 문화예술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실제로 랑중고성을 걷다 보면 전통과 풍습이 살아 쉬고 있는 체감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유산이 그림자극(皮影戱)이다. 그림자극은 소가죽으로 만든 인형을 배우가 스크린 뒤에서 조명을 받아 움직여서 공연하는 연극이다. 배우는 막대기로 인형을 조종할 뿐만 아니라 대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때로는 악기까지 연주한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기예의 연마가 필요하다. 또한 그림자극은 중국 전통연희 중 드물게 오래전부터 세계화되었다.

배우는 스토리에 맞춰 인형을 바꿔 가며 공연한다.
그림자극은 대략 서한(西漢) 대에 시작되었다. 그 뒤 실크로드를 통해서 아시아 곳곳을 퍼졌고 터키, 그리스, 프랑스 등 유럽까지 전파됐다. 오늘날 중국 내에서는 10대 그림자극 유파가 번성하고 있다. 이 중 랑중을 중심으로 발달한 쓰촨 북부 그림자극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배우가 직접 인형을 만든다. 다른 유파에서는 인형만 전문으로 만드는 장인이 따로 있다. 둘째, 인형의 얼굴형이나 손발을 둥글게 깎아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에 반해 다른 지방은 인형은 코, 턱, 손 등이 뾰족하고 날카롭다.

랑중 그림자극단 배우는 직접 인형을 제작해 사용한다.
셋째, 고전소설 《삼국지》 속 촉한(蜀漢)의 인물이나 사건 혹은 지역의 전설이나 민간 설화를 레퍼토리로 삼아 공연한다. 특히 랑중 그림자극단은 오직 장비와 관련된 스토리만을 주제로 무대에 올린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장비와 랑중의 인연을 짚어봐야 한다.

211년 유비는 유장의 요청으로 익주(益州·쓰촨)에 들어갔다. 3년 뒤 유비는 유장을 몰아내고 청두에서 촉한을 건국했다. 뒤이어 위나라의 공략을 막기 위해 장비를 파서(巴西) 태수로 임명했다. 이에 장비는 랑중에 주둔하면서 7년 동안 생활했다.

죽은 장비를 옥황상제처럼 모신 장환후사 내 사당.
장비가 술을 마시면 자주 실수했기에, 유비는 태수로 지내면서 술을 멀리하라고 엄명했다. 장비도 마음을 잡고 음주를 줄였다. 또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고 병사들을 엄격하게 조련했다. 그 같은 노력 덕분에 218년 위의 장수 장합이 랑중에 쳐들어오자, 1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 격퇴했다.

이듬해 10여 년 동안 형주(荊州)를 지켰던 관우가 위와 오의 협공을 받는 와중에 여몽의 습격으로 죽었다. 도원결의를 통해 한날한시에 같이 죽을 것을 약속했던 유비와 장비는 분노했으나,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

장환후사의 묘당 양 옆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는 범강과 장달의 찰흙상.
221년 유비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본격적으로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유비의 동원령을 손꼽아 기다렸던 장비는 곧바로 출정을 준비했다. 장수들에게 병사들이 입을 흰 갑옷과 흰 기를 사흘 안에 만들라고 명령했다. 범강과 장달이 나서서 "짧은 기일 내에 많은 갑옷과 기를 마련할 수 없으니 출정 날짜를 좀 늦춰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장비는 크게 노하며 두 사람을 심하게 매질했다. 이에 두 사람은 군령을 지키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데다 앙심까지 품었다. 따라서 숙소에서 술에 취해 잠든 장비를 살해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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