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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AI 그림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취재파일] AI 그림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AI 미술 시간입니다. 오늘 수업 주제는 장래 희망이에요. 어른이 돼서 하고 싶은 꿈을 자유롭게 그려볼까요? AI 프롬프트(명령어)에 딱히 제한은 없고요, 이미지 비율을 4대 3으로 생성하세요!”

어느 미래의 미술 시간입니다. 학생들은 손으로 그림 그릴 필요가 없습니다. AI가 대신해주니까요. 제 장래 희망은 기자인데, 취재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멋진 기자를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문득 서울 광화문에서 생중계를 하는 '열혈 기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를 AI에게 차근차근 묘사해 봅니다.

“AI야, 서울 광화문에서 인파 배경으로 정장을 입고 마이크를 손에 쥔 채 생중계하는 기자를 그려줘.”
AI 생성 그림과 저작권
'정장 차림'이라고 했더니 AI가 남성 기자만 뽑아줬네요. 현장을 누비는 기자가 남성만 있는 건 아니니, 이번엔 여성 기자 이미지도 뽑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AI로 원하는 그림을 생성해 내는 데 불과 1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누구나 AI를 이용해서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겁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야, 내가 이제 미술 실력 없어도 마치 전문가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그림이 척척 완성되는구나! 내가 콘셉트를 잘 잡으면 디지털 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AI 작품들로 인기 끌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AI를 잘 이용해서 돈방석에 앉는 상상을 해볼법 합니다.
AI 생성 그림과 저작권
그런데 지금의 현실에선 실현 불가능합니다. 왜냐고요? AI 그림에 이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저작권입니다.

기존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의성과 노력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AI 그림 생성에 사람이 비록 프롬프트(명령어)를 제공했다고 해도 그것을 창작 활동으로 볼 수 있을지 확실치 않습니다. 만약 AI가 대량으로 생성한 콘텐츠가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면, 인간 창작자들의 작품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그들의 생계 기반까지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AI 생성물이 인간 창작물을 모방하거나 재사용했을 때 저작권 침해 여부를 따지는 것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AI 생성물의 저작권을 누가 소유할 것인지 문제도 까다롭습니다. AI 프로그램의 개발자, AI에 명령어를 넣은 개인이나 기관, AI 자체, 이들 중에서 누가 저작권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 판단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기존 저작권법의 원칙들과 충돌하는 게 한둘이 아닙니다.

미국에선 AI 저작권 관련해 유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22년 11월 '새벽의 자리아'라는 그림책 작가가 삽화들을 AI로 생성한 뒤 미국 저작권청에 저작권 등록을 신청했습니다. 미국 저작권청은 처음에 저작권을 인정해 줬지만, 석 달 뒤 자신의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그림책 글씨 내용은 작가가 직접 쓴 게 맞으니 저작권 보호 대상이지만, AI가 그린 삽화 자체는 아니라는 겁니다. AI 삽화물은 저작권이 없지만, 그것들을 문맥에 맞게 편집하고 배열한 사람의 노력 정도는 인정된다며 '편집저작물'로 판단한 게 전부였습니다. 쉽게 말해 인간의 창작 기여가 확실한 부분만 최대한 발라내서 저작권을 인정했다는 겁니다. 
AI 생성 그림과 저작권
창작 영역까지 넘보는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외국에서도 아직 AI 창작물의 저작권을 인정한 나라는 없습니다.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논의가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입니다. 미국 저작권청 중심으로 창작 업계와 단체들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적지 않은 창작자 단체들은 AI 기술이 창작자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국가 기관의 적극적 개입과 중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작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AI 저작권 안내서'를 내는 등 발 빠르게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습니다. 이 안내서에서 정부는 “원칙적으로 AI 생성물은 저작물로 볼 수 없으며 저작권 등록 대상도 될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인간이 전체 기획을 하고 프롬프트만 입력한 경우도 저작권 등록은 불가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AI 생성물을 활용한 인간의 2차적 창작물 중에서 인간의 독창성이 인정되는 경우 ‘편집저작물’로 등록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앞서 미국의 판단 기준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AI 생성 그림과 저작권
그러나 AI 생성물의 저작권을 일절 인정하지 않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AI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사람이 명령어를 넣어서 만드는 형태이기 때문에 인간의 창작 기여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 기여를 하면 콘텐츠의 질이 훨씬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AI 생성물이 지적 재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창출되지 않습니다. 가치 창출 유인이 없으면 AI를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려는 시도가 생길 수 없고, AI 기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산업 동력도 약해지게 됩니다. 앞서 AI 삽화의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한 그림책 작가 측은 “AI 모델이 생성한 그림도 결국에는 지금의 사진과 같은 저작권법의 대상이 될 것이며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법적으로 AI 생성 콘텐츠가 저작권이나 소유권을 받지 못해 사실상 공백 상태이기 때문에 거기서 새로운 유형의 문제들이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인간의 창작 권리를 지키면서, AI 산업도 발전시켜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무조건 장밋빛 미래만 가져다주는 건 아닌 만큼, 기술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이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법과 제도 정비를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갈래의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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