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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현직 신경외과 전문의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주간 조동찬]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방재승 교수

주간조동찬 (사진=연합뉴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방재승 교수가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방 교수는 뇌동맥류(다발성/거대뇌동맥류 포함), 뇌혈관 협착, 동정맥 기형을 치료하는 개두술 의사입니다. 이름을 기억하는 분도 더러 있을 것 같습니다. 2022년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받고 유명을 달리했던 사건 당시 서울아산병원에 따가운 질책이 쏟아질 때 실명으로 자신의 소견을 밝힌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간호사의 병명이 바로 뇌동맥류였고, 비난을 받는 의사들은 바로 방 교수와 전공을 같이하는 동료였던 터라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방 교수가 대통령에게 쓴 장문의 편지, 전공의가 떠난 대학병원의 필수 진료 현장을 지키느라 밤잠을 설치면서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감정이 다소 섞여 있고, 보는 사람들이 불편해할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는 문장들 속에서도 필수 의료 현장의 진정성 있는 문장이 있어 보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통령,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 악마로 몰리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정제되지 않고 쓰여 있습니다. 아마 제가 방 교수였다면 삭제했을 겁니다. 괜한 말로 악플이 달릴 것이고, 국민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밤낮 가리지 않고 뇌 수술만 해온 50대 의사는 전략적일 수 없다는 것,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반 국민보다 훨씬 큰 자신의 연봉도 털어놓았습니다. 방 교수의 실력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얼마의 연봉을 받는지 비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꼭 비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자료를 제공한 학자들은 의료 모범 국가로 일본, 독일, 영국을 꼽았는데, 이들의 보건의료 지표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제공한 178 페이지 분량의 OECD Health data를 보면 우리나라는 일본, 독일, 영국보다 GDP대비 의료비가 낮습니다. 우리나라는 9.3%로 OECD 평균 9.7%보다 낮지만, 일본은 11.3%(9위), 영국은 12.4%(3위), 독일은 12.9%(2위)로 높습니다. 미국이 17.4%로 압도적인 1위인데, 의료민영화가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반면 의료 성적은 좋습니다. 급성 심근경색 등 일부 질환에 대해 좋지 않은 분야도 있지만 OECD가 내세우는, 그래서 복지부도 앞 단락에 강조한 주요 보건 지표들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세계 톱클래스에 속합니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와 국민이 내는 의료비는 적고, 의료 수준은 높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자체의 의료 문제를 개선하려는 것은 중요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받드는 마음으로 의대 증원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나을 게 없는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편지 내용이 너무 길어서 기자가 요약 정리했지만 방 교수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가급적 원문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분당 서울대병원은 편지는 방 교수의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밝혔습니다.

"뇌동맥류 터지기 직전인 60대 환자도 대기 중입니다"

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병원관계자가 환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 교수는 편지 마지막에 언급했지만, 이것이 편지를 쓴 이유라고 생각해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 사정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의료대란 이후로, 저는 정규 수술은 못하고 응급·준응급 수술만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외부병원에서 전원 온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뇌출혈 환자분(뇌동맥류 파열)을, 저와 같이 일하는 동료 교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을 수술했고 수술장에 있는 동안, 병동에는 의사가 없으니 수술장에서 병동 호출을 받아가면서 수술을 했습니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병동에서 환자가 나빠지면 바로 대처가 안 되기에, 위험해서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제일 먼저 급한 수술을 해야 될 제 환자들 중에, 모야모야병(특별한 이유 없이 뇌의 주요 동맥이 좁아지고 이걸 보상하기 위해 가느다란 여러 뇌혈관들이 생긴 상태, 가느다란 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뇌출혈이나 뇌경색이 동반될 수 있는 병) 아이들을 가진 40대 초반의 주부가 제 눈에 밟힙니다.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들이고, 아이들도 모야모야병으로 제가 수술을 했는데 정작 아이들 엄마인 환자분은 아직 수술을 못 받고 있습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들도 밝고 맑게 자랄 수 있을 텐데요. 그리고 팔다리 마비가 자주 오는 50대 여성 모야모야병 환자분도 수술 대기 중이고, 뇌동맥류가 터지기 직전으로 무섭게 생긴 60대 여자 환자분도 대기 중입니다.

이런 어려운 환자들은 수술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수술 후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지금의 의료대란에서 현재의 교수·전임의 인력으로는 응급 수술 들어가면 병동은 의사가 없는 상태고 전문 간호사 혼자서 드레싱과 급한 호출을 받아야 해서 도저히 위험해서 정규 수술을 시행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엉터리 자문을 한 학자들의 잘못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이 의대 증원 2,000명의 근거로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 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등 총 3개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서울의대 홍 교수는 '자신의 논문은 그런 취지가 아니며 의료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상태로 의사 수를 늘리면 수도권 피부-성형 의사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고, KDI 연구에는 '2030년까지 해마다 5%씩 늘리고, 첫해 적정 증원 숫자는 153명'으로 기술돼 있습니다. 복지부가 근거로 사용한 것에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반면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는 '2035년 25,300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결론내리고 있어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 말미에는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등 주요 의학회의 '오류가 있을 수 있어서 동의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실려 있습니다. 근거 3개 중 2개는 부적절하고, 1개도 주류 의학계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데 이는 복지부 장관과 차관의 탓이 아니라 그들에게 편협한 정보를 제공한 학자들의 잘못이라고 방재승 교수는 편지에서 강조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병원을 겨우 힘겹게 지키고 있는 현직 의사로서, 대통령님께 진심으로 드리고 싶은 몇 가지 말씀이 있어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번 의료 정책을 만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합리적이지 않은 수치와 정책을 제시하고 대통령님의 힘을 이용하는 느낌을 저는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부 관료는 학자가 아니기에 학자들이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정부관료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해야 하는 데, 이번 정책에 근거자료를 제시한 학자들이 잘못된 수치와 근거를 제시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 장차관님들은 잘못이 없다고 봅니다. 엉터리 데이터와 근거를 제시한 학자들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라의 의료 정책을 결정할 때는,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실무자들인 임상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을 해야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실제 환자는 전혀 본 적도 없는 학자들만의 의견으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임상 의사들의 반감은 불을 보듯 뻔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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