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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무죄 판결이 나왔다면 그것은 '무리한 수사'였을까

[뉴스쉽] 사법농단, 이재용 수사와 판결을 바라보며

✏️ 뉴스쉽 네 줄 요약

· 삼성 사건과 사법농단 사건에서 정점에 있는 이재용 회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각각 1심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 두 사건 모두 무죄가 나오면서 당시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 당시 검찰이 어떻게 수사를 했고, 무엇이 이전의 검찰과 달랐는지 복기해 봤습니다.

· 법원의 판결이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은 이유를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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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에서는 정점에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두 사건 모두 검찰의 수사가 진행된 지 수년이 지난 사건인데 오랜 법정다툼 끝에 이제야 1심 판단이 나왔다.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일까, 1심 법원이 '봐주기' 판결을 내린 것일까. 알다시피 당시 검찰 수사 지휘부가 지금은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이 된 만큼, 수사와 판결에 대한 비판에 진영논리가 섞여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뉴스쉽에서는 필자가 삼성과 사법농단 수사할 당시 법조계를 취재하며 관찰한 바를 몇 년이 지나 1심이 나온 지금 복기해보려 한다.

 

'뉴타입' 검사의 등장

2018년으로 돌아가보자.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고 문재인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좌천됐던 윤석열 검사가 파격적으로 서울중앙지검장이 됐고, 중앙지검 3차장으로는 한동훈 검사가 보임됐다. 이들은 기존의 검찰과 세 가지 면에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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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검찰 수사의 칼끝이 향하는 대상이 달랐다. 검찰을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인식되어 온 불문율을 깨뜨렸다. 정권이 교체된 뒤 직전 정권에 대한 수사는 항상 있어왔다. 그런데 당시 검찰은 전전 정권(박근혜 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됐다. 범죄를 저지른 판사에 대한 수사는 있어왔지만, 사법부의 재판 결과에 대한 수사는 처음이었다.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시킨 수사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대법원장부터 국내 제1의 대기업 회장까지 수사를 이어가더니 살아있는 정권의 총아이자 현직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했다. 옆에서 그리고 밖에서 바라보는 기자의 입장에는 검찰의 수사가 무리할 수는 있을지언정, '거악' 앞에서 칼끝이 무뎌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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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다른 점은 수사방식이다. 기업이나 공무원,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특수수사는 말단에서부터 윗선으로 타고 올라간다. 제일 직급이 낮은 실무자부터 조사하고 구속시킨 뒤,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입을 열면 처벌이 줄어들고 입을 닫으면 본인이 책임을 덮어쓰고 형량이 높아지는 식의 선택을 하도록 한다. 법조계의 컨센서스에서 전통적인 특수수사, 좋은 특수수사는 외과의사처럼 메스로 환부만 도려내는 것이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전쟁에서 적진에 나아간 뒤 적장을 불러내 일기토를 벌이고 적장만 베고 돌아와 적군의 사기를 꺾어버리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2018년과 2019년에 이뤄진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는 조자룡 헌 칼 쓰듯 진행됐다는 평가가 당시에도 지배적이었다. 적장뿐 아니라 주변에 관련된 모든 이들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방식의 수사로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사법농단 사건 수사 초기에 주목을 받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사례가 있다. 유 전 연구관이 판사 퇴직 후에 USB에 사건자료를 담아서 반출한 혐의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유 전 연구관은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료를 파기해 증거인멸을 했다는 내용도 당시 화제가 됐다. 당시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을 구속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증거인멸 정황을 강조했고, 'USB 반출'이라는 구체적인 키워드는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유 전 연구관은 이후 재판에서 1,2,3심 모두 무죄를 받았다. 삼심제를 거치며 한 번도 유죄로 인정되지 않을 정도의 공소사실이었지만, 수사 당시에는 사법농단의 핵심적인 인물로 지목됐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사법농단의 핵심 관계자이자 정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고영한, 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민걸 전 기조실장,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 정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사는 14명의 판사를 기소했고, 불러서 조사한 판사는 수도 없이 많았다. 공소장은 300쪽에 달하고 기소된 범죄사실은 47개에 달했다. 이처럼 조사받는 상대방을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수사방식이 필요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새로운 '초식(招式)'임은 틀림없었다.
 

"공장 바닥을 뜯으니 서버가 나왔다"

당시 검찰이 기존과 달랐던 세 번째는 언론 대응의 수준이었다. 우선 전통적인 검사의 언론대응 방식을 보자. 수사 상황에 대해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언론대응 업무를 담당했던 차장검사는 구체적으로 답을 내놓지 않고 '선문답'식으로 답변을 했다. 예컨대 구속영장 청구시점을 물으면, 봄이 와야 꽃이 핀다고 답변하는 식이다. 차장검사의 말 한마디, 어감에 따라 기사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모호하고 신중하게 답변을 하기 일쑤였다. 실제로 검찰 등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죄가 된다고 정해져 있기도 하다.

2018년과 2019년에 걸친 검찰, 정확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적극적으로 언론에 대응했다. 당시 언론대응을 담당했던 한동훈 3차장검사는 수사과정에서 언론에 압도적인 양의 정보를 공개적으로 브리핑을 통해 풀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수사 초기 압수수색에서 나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날 검찰은 공장 바닥을 뜯으니 숨긴 서버가 나왔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날 이 사건을 보도한 대부분의 언론사의 제목은 '공장 바닥에 숨겨진 서버'였다. 공장 바닥에 중요한 파일이 담긴 서버를 숨겨놨다는 메시지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확신을 주게 만들었다. '공장 바닥' 워딩은 국내 1위인 대기업의 계열사 직원들이 이런 짓을 해가면서까지 숨겨야 했던 무언가가 있다고 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줬다.

당시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 입장에서는 검찰이 여론을 만들어가는 능력에 감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도 존재했다. 압수수색은 수사의 가장 초기, 강제수사에 돌입하는 시점에 진행된다. 즉, 앞으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올드스쿨' 검사들은 통상 "어떤 의혹 사건에 대해 거주지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였다"라고만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어느 곳을 압수수색했고 어떤 물건을 찾았다는 것을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다. 2019년 5월 7일, 압수수색을 통해 공장 바닥에 숨긴 공용서버와 노트북을 발견한 검찰은 이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증거로 제시했다. 2024년 2월 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건의 1심 법원은 이날의 압수수색이 절차를 위반했다며 공장 바닥에서 숨긴 서버 등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내부 고발로 '삼성 비자금 특검'이 있었지만 칼끝이 닿지 못한 대기업의 총수, 'BBK특검'이 진행됐지만 연관성을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대통령이 됐던 사람, '성역'으로 취급되며 한 번도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했던 사법부의 속살. 나열한 것처럼 부패의 의심이 드는 '거악'을 잡기 위해서는 여론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수사는 꺾이기 쉽다. 수사를 무디게 하라는 외압에서 이겨내기 위해서 언론과 접촉면을 늘리며 수사상황을 귀에 꽂히는 키워드를 이용해 설명하고자 하는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는 논쟁적이다.
 

'국민의 법감정'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수사 당시의 검찰을 취재한 기자 개인의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다음은 법원 판결에 대해 짚어 보려 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검찰 수사는 물론이고, 법원의 판단에 대해서도 진영논리에 입각해 비판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우리 편이나 상대 편에 대해 법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구속 여부나 유무죄를 판단하면, 판사의 개인적 성향이나 출신을 토대로 근거가 부족한 비난을 하기도 한다. 정치가 사법화되면서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까지 신뢰하지 않고, 대법관 구성에 따라 편향적인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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