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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성이 모성 발휘할 수 있는 환경, 국가가 촉진해야"

'저출생 사회, 무엇이 문제인가?'…프랑스 전문가 인터뷰 (1)

[취재파일] "여성이 모성 발휘할 수 있는 환경, 국가가 촉진해야"
▲ 카트린 스코르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사회인구학 교수)

프랑스 높은 출산율의 비결은?


우선 사회와 기업의 문화가 중요합니다. 프랑스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과 비교하면 아이를 낳을 것인가, 일을 할 것인가를 놓고 크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선 이런 선택을 여성에게 강요하지 않고, 프랑스 여성은 일하면서 아이 낳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선 사회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을 하면서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직장과 사회에서 낙인 찍히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이런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밖에도 프랑스에선 출산 장려 정책들이 이미 100년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20세기 초반 프랑스는 출산율이 줄어들자, 정치 과학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대엔 피임과 낙태에 대한 모든 광고를 금지되는 법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낳을 경우 정부 지원금을 받는 역사도 매우 오래됐습니다. 이런 정부 지원책들은 장기적으로 프랑스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높게 유지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가족 제도의 변화가 출산율에 미친 영향은?

프랑스, 교육

프랑스에선 1970년대부터 가족 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프랑스에서도 결혼과 출산 간에 큰 연관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으면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마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에서는 태어나는 아기의 60% 이상은 비혼(혼외) 관계에서 태어납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는 게 문제되지 않고, 프랑스 사회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현재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간 다양한 형태의 결합 모델이 있고,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커플의 형태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국가에서 출산율은 높아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유럽의 출산율 높은 국가들에선 공통적으로 1970년대부터 이런 분위기가 조성돼 왔습니다.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프랑스와 북유럽 국가들에서 현재 결혼과 출산은 분명하게 분리돼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등록 동거제 '팍스'와 출산율의 관계는?

프랑스, 출산 준비중인 동거커플
▲ 출산 준비 중인 동거 커플

등록 동거제도인 프랑스의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Pacs)'는 그런 다양한 결합 형태의 한 예입니다. 팍스는 1999년 동성 간 결혼이 허용되지 않던 시기, 동성 커플 간의 결합을 법적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처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프랑스 사회에서 가족을 이루는 방법 중 하나의 선택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동성 커플보다 이성 커플이 훨씬 더 많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팍스를 했는지 여부가 출산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건 팍스 등을 통해 프랑스 커플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시민들은 결혼 신고를 할 수도 있고, 팍스 등록을 할 수도 있고, 그런 법적 행정 절차 없이 그냥 함께 살 수도 있고, 자유연애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태에서든 원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결혼 상태냐 비혼 상태냐가 아니라, 아이를 건강하게 낳아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저출생 사회' 국가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나?

프랑스, 교육

프랑스에서도 가사 일에 있어 남녀가 갖는 부담은 여전히 공평하게 분배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여성들이 더 큰 부담을 갖습니다. 국가는 가사와 자녀 교육의 부담을 가정과 나눠 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의 양육을 함께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생후 2개월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3살부터는 무료 공교육이 시작됩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공교육은 오후 4~5시 경 끝나지만 부모가 필요하면 유치원과 학교는 아이를 오후 6시 반~7시 정도까지 돌봐줍니다. 정부는 더 받은 보육 시설을 만들고 육아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남녀 임금 격차 등 불평등을 줄이는 노력도 정부가 담당해야 할 몫입니다.

출산 환경도 개선해야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1994년부터 아이가 태어난 뒤 첫 15일 또는 3주 동안 아버지가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육아 휴가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당시 가족부 장관이었던 세골렌 로와얄이 이 제도를 채택했습니다. 이는 아이를 돌보기 위한 정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린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남성의 부성애를 국가 차원에서 인정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남녀 상관없이 아이를 낳은 뒤 갖게 되는 출산휴가를 6개월로 연장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는 정책입니다.

21세기 출산 장려 정책은 어떠해야 하나?

프랑스 저출생 정책 관련 교수 인터뷰

프랑스 출산율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상당히 높지만, 최근 10년 간 감소세를 보여온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2023년에는 합계출산율이 1.68명 정도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나는 오늘날 프랑스의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본질적 이유를 여성이 출산이 아닌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게 된 환경적 변화에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프랑스 뿐 아니라 오늘날 출산율 감소세가 나타나는 많은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갖고 싶어하며 자녀를 통해 행복을 찾을 수도 있지만, 다른 많은 활동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가 활동이 될 수도 있고, 직업 활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와 같이 여성의 자율성이 높은 사회에서 여성은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이 모든 선택은 정당하고 합법적입니다. 이런 환경은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서 발견되는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은 5% 정도에 불구합니다. 여전히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남아 있고. 출산율이 감소하는 가운데에서도 아이를 갖는 것은 여전히 '모델'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필요한 건, 여성이 모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국가와 사회가 촉진하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답을 찾고자 하는 정부라면, 동시대 여성들의 욕망, 남자들의 욕망, 커플의 욕망을 제대로 살펴봐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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