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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너무 늙었다' 바이든, 왜 출마 포기 안 하나

[뉴스쉽] 속타는 민주당, 플랜B는?

한국계 로버트 허 특검이 지난 5일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미국 정계에 핵폭탄급 충격파를 끼쳤다. 이스라엘-가자 전쟁 이후 중차대한 기간, 이틀에 걸쳐 5시간이나 바이든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특검이 그를 '제 아들 죽은 시기(2015)도 기억 못 하는 노인'으로 묘사한 보고서는, 그 편파적 의도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민주당이 애써 덮으려 했던 이슈를 수면 위에서 폭발시켰다.

4년 더 대통령 하겠다고 선거에 나서기에, 바이든은 너무 늙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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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당 민주당 내에서 다른 후보를 내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여론조사에서 소폭이지만 지속적으로 밀리는 모양새인데,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너무 늙어 보이는' 이미지가 꼽힌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몇 차례 후보교체론이 나왔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이 재선 도전 의지를 밝히면서 없던 일이 됐다. 인지도 낮은 하원의원 한 명이 계속해서 '자기가 대신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허 특검 보고서 파문 이후인 지난 9~10일 ABC방송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바이든이 너무 늙었다는 답변이 86%로 전보다 늘었다. (지난해 9월 ABC-워싱턴포스트 조사에서는 '바이든은 재선 되기엔 너무 늙었다'가 7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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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불이 들어오지만, 언제 꺼질지 모르는 전구"

로버트 허 리포트는 대중이 몰랐던 걸 알려줘서 충격이라기보다는, 대중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재확인했기 때문에 정치적 파괴력이 더 크다. 이미 백악관과 선거캠프는 바이든이 혹시라도 넘어지거나 말실수를 할까 봐 바이든의 대중접촉을 줄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슈퍼볼 때 방영되는 TV특별인터뷰도 포기했다. 대규모 대중집회는 나가지 않고 소규모 모금행사만 한다. 나중에 트럼프와 맞붙을 TV토론도 최소화하거나 아예 거부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덧은 바이든을 수명이 다해가는 전구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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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전구의 필라멘트가 계속 빛을 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제는 전구를 갈아야 할 때 아니냐, 정말로 전구가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게 다우덧의 지적이다.

바이든을 상원의원 시절부터 취재한 뉴욕타임스의 피터 베이커 기자(현재 백악관 출입기자)는 '더 데일리' 팟캐스트에서, 몇 달 만에 바이든을 만나는 지인이나 측근들이 깜짝 놀란다고 전했다. 몇 달 안 본 사이에도 바이든이 눈에 띄게 더 늙어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 범여권의 유력 매체들이 일제히 "이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바이든의 재선 출마 포기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취재가 아니라, '바이든이 제발 좀 스스로 물러나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사퇴 시나리오'를 싣기도 한다.

실제로 후보 선출을 앞두고 재선 포기 선언을 한 현직대통령의 전례가 있다. 1968년의 린든 B.존슨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그는 민주당 대선후보 확정을 석 달 여 앞둔 1968년 3월 31일, 전국 TV연설을 통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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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왜 아무도 바이든에게 '이제는 비켜 달라. 후배들이 나설 수 있도록'이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민주당 내에 보다 젊고 못지않게 유능한 차기주자들(한국식 정치용어로 '잠룡')이 꽤 있는데, 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이든 대통령,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제가 대신 트럼프를 상대하고 미국의 앞날을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나서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바이든의 처지에 대한 인간적 이해를 시도해야 한다. 또한 권력집단 일반의 속성, 미국 민주당의 내부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어떻게 오른 대통령 자리인데…'

바이든은 정말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쳐 백악관에 입성한 사람이다. 수십 년간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꿈을 키워왔다. 1973년 상원의원이 된 그는 1988년에도 대선에 도전한 바 있다. 새내기 상원의원이면서 전국정치판에 혜성처럼 스타로 등장한 오바마를 처음 만났던 2005년, 바이든은 이미 32년 차 고참 의원이었다.

2005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의 오바마와 바이든. 둘 다 의원이던 시절이다. / 출처 : 게티이미지

그런데 오바마를 (한국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주군'으로 모셔야 하는 신세가 됐다. 전례를 찾기 힘든 대등한 동지적 관계이자 오바마의 약한 면을 보완해 주는 존재로 부통령 생활을 했다지만, 때로는 진영 안에서 동네 바보 형처럼 사람 좋은 행세를 하며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는 권력 내부의 속성이란 그런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자신의 부통령인 바이든을 후임 대통령 후보로 낙점하지 않았다. 2016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후계자로 선택한 건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2016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과 오바마 당시 대통령. / 출처 : 게티이미지
바이든의 장남 보(Beau)가 사망(2015)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여서 심적 타격이 크고 선거에 전념할 열정이 부족했다고는 하나, 현직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별의 순간'을 포기하면서 상심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1월, 곧 퇴임할 바이든 부통령에게 훈장(자유의 메달)을 수여하는 오바마 당시 대통령. / 출처 : 게티이미지
2020년 대선에서도 바이든은 처음엔 진지한 1위 주자로 취급받지 못했다. 자신을 '오바마의 충직한 파트너'로 내세워 경선에 임했지만, 오바마는 바이든 지지선언을 하지 않고 거리를 뒀다. 버니 샌더스의 좌경화가 부담스러웠던 민주당 주류가 상대적으로 온건한 바이든에게 표를 몰아준 덕에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전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자리라는 백악관 주인이 되었는데, 꼴랑 4년 만에 그만두라고? 거의 모든 현직대통령이 하는 재선에 도전도 안 해보고? 바이든 입장에선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오바마는 선거를 치르는 대중정치인으로서의 바이든에 대해서는 그리 높이 평가한 바 없다. '오바마의 사람들'도 그랬다. 뉴욕타임스 팟캐스트 더 데일리는, 그들이 바이든과 그 선거참모들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에겐 "나도 오바마처럼 재선 할 수 있다"고 입증해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천적은 바로 나!'

바이든은 정말로 자기가 국정을 잘 이끌어 왔으며, 하늘이 내린 트럼프의 천적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 국정의 성과와 선거의 기록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트럼프가 저질러 놓은 국정의 혼란을 수습했고, 코로나19 극복 잘했고, 그 여파로 불거진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처도 그럭저럭 잘해서 불황 없이 물가를 잡아나가는 중이다.

중국과의 전략적 대결, 대만 문제, 우크라이나-러시아 문제, 사우디아라비아와 삐걱거림, 가자지구 문제 등 국제이슈가 산적해 있으나, 바이든이 그럭저럭 관리를 잘해왔다는 평가가 전문가들 사이에선 높다.

지난 2월 12일의 바이든 대통령. 백악관을 방문한 요르단 압둘라 국왕을 기다리는 모습. / 출처 : 게티이미지
2020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꺾었고, 2022 중간선거에서도 트럼프가 간판으로 나선 공화당을 이겼다. 그는 트럼프가 어떤 인간인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자신이 선거에서 트럼프를 꺾을 적임자라는 생각을 여러 차례 털어놓은 바 있다.

종종 넘어지거나 이름을 헷갈려 말하기는 하지만, 사안을 이해하고 처결하는 판단력은 멀쩡하단다. 백악관 참모들에 대한 장악력도 여전히 강해서, 준비 부족 상태로 보고에 들어간 참모는 혼쭐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멀쩡한데 왜 11월 대선에 나가지 말라는 거냐?"고 현직대통령이 그러면, 당내에서 과연 "그래도 안됩니다"라고 만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한국 아니고 미국이라지만, 권력의 속성을 생각할 때 쉽지 않은 일이다.
 

왜 당내에서 경쟁자가 안 나섰나 - 3가지 이유

지식층의 고급교양지인 뉴욕매거진은 지난해 9월, '왜 당내에서 아무도 바이든에게 도전하지 않을까'라는 분석기사를 실었다. 민주당원 2/3이 바이든 말고 다른 후보를 원한다는 CNN 여론조사가 나오던 시점이다.

그 기사에서 꼽은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민주당 사람들이 2020 대선의 결과를 과잉해석했다는 것이었다. 2020 대선은 급진좌파 버니 샌더스 돌풍이 불었다가 이에 놀란 온건진보 세력이 바이든을 후보로 옹립하고, 결국 트럼프를 이긴 선거였다. 당내경선 초기엔 민주당 내 여러 세력이 바이든을 그냥 원로 중 한 명으로 치부해 버렸는데, 결과적으로는 당의 오랜 지지자들이 바이든에게 줄을 섰고, 이겼다. 그 결과, '바이든에겐 남들이 몰랐던 뭔가가 있다'는 아우라가 생겼다는 것이다.

활짝 웃는 바이든. 2023년 1월. / 출처 : 게티이미지
둘째, 바이든이 개인적으로 너무 따뜻하고 친절하고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 자기한테 줄 선 사람이라도 걸핏하면 조롱하고, 자신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려는 트럼프와는 질이 다른 인간이라는 얘기다.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바이든과 좋은 관계를 이어왔기 때문에, 차마 '당신 이제 너무 늙었으니 비키라'는 소리를 꺼내기 어려웠을 거라고 한다.

셋째, 간혹 현직대통령에게 당내에서 도전자가 등장한 사례가 있었지만, 그건 이념적 차이 또는 노선 차이가 있을 때였다. 같은 민주당이지만 온건보수 vs 급진좌파라든가, 같은 공화당이지만 글로벌 지향 엘리트 우파 vs 고립주의 포퓰리스트 우파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도 않은데 현직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나서는 건 타당성도 승리 가능성도 별로 없다.

역사적 비극의 기억 - 잠룡들이 나서지 않은 또 다른 이유

현직대통령이 스스로 재선을 포기한 사례로 글 앞머리에서 1968년의 린든 B.존슨을 소개했는데, 그 결과는 어땠을까. 당시 여당 민주당은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 했다.

1968년은 민주당에게 몹시 힘든 해였다. 나라와 당은 베트남전쟁과 민권운동으로 갈등이 극에 달했고, 연일 폭력사태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대통령인 린든 존슨은 인기가 없었다.

당내 경선에서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대통령은 재선포기 결단을 내렸다. 그로 인해 발생한 공백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후보는 로버트 케네디였다. 진보의 젊은 희망으로 꼽히던 케네디는 그러나 석 달만에 그의 형 JFK처럼 암살당하고 말았다. 결국 민주당 대선후보직은 한 번도 주별 경선에서 이겨본 적 없는 험프리 부통령에게 넘어갔다. 험프리는 그해 본선에서 공화당 리처드 닉슨에게 지고 말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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