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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38선이 미·소 '대립' 아닌 '타협'의 산물?…70년 학계 정설 뒤흔든 새로운 주장

38선은 우리나라의 아픈 상처입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세력 대결을 벌이던 강대국 미국과 소련이 서로 한반도를 '독점'하려 하다 마음대로 그어버린 선, 그 때문에 한반도는 전쟁을 겪었고 분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38선 획정은 미소 냉전 또는 대립의 결과다'. 지금까지 38선 획정 과정과 원인과 관련해 학계정설로 여겨져 온 주장입니다.

그런데 최근 젊은 역사학자가 교과서처럼 인정되어온 이 주장을 뒤엎는 내용의 논문을 내놓아 화제입니다.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박다정 연구원은 자신의 연구 결과 "기존 학설은 전후 1947년부터 전개된 냉전의 시각을 투영해 38선 획정을 바라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38선은 미소가 갈등을 피하고, 협력한 결과'라는 주장합니다. 이 주장의 근거에는 새롭게 발견된 문건 등이 있는 건 아닙니다. 기존 한반도 연구에서 항상 인용되던 미국 국무부 문서, 군부 문서 등을 무려 5년여에 걸쳐 연구하며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결과입니다. 이 논문은 국내 최고 권위 학술지인 역사학보에 수록되며 학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학계 선배들에게 과감히 도전장을 낸 박 연구원에게 그 근거를 들어 봤습니다.
 

1. 미국은 한반도를 '독점'할 생각이 없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은 한반도를 소련군의 단독 작전지역으로 설정했습니다. 미국의 최우선 목표는 일본 본토였기 때문에 일본 본토 공격 시 미국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만주와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대륙에 일본의 군사력을 묶어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역할을 소련이 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원폭 투하에 성공한 뒤 일본이 항복한 이후에도 미국은 한반도를 '독점'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본 본토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소련군의 점령을 도와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1945년 7월 25일 미 참모총장 마셜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에 담겨져 있습니다. 마셜은 "일본 전 지역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강조하면서 "일본 본토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소련군이 상륙할 때 미국이 초기 공급과 운송을 도와야 한다"고까지 강조했습니다. 미국에게 한반도는 피를 흘리면서까지 점령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1945년 7월 25일. 마셜 미 참모총장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 내용 중.

1945년 8월 10일 일본이 처음으로 항복 의사를 밝힌 이후에도 미국은 한반도를 혼자 차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시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카이로회담에서 구두로 합의했던 미영중소 4개국의 한반도 신탁통치였습니다. 한반도를 누군가 독점하는 지역으로 두지는 않겠다는 정도의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처음으로 "다롄항과 한반도 한 곳 점령" 지시를 내렸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전제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련군이 아직 점령하지 않은 지역"으로 한정한 겁니다. 이런 내용이 바로 미국이 한반도 점령을 둘러싸고 소련과 마찰이나 대립이 발생하는 걸 원치 않았다는 증거라고 박 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1945년 8월 11일. 트루먼 대통령 지시사항. “소련군이 점령하지 않은 지역에 한해 한반도를 점령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2. 38선 획정은 소련 동의가 전제였다?

애초 미 국무부는 39도선을 주장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최대한 많은 지역을 확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 군부와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이 39도선에 찬성하지 않을 경우를 우려했습니다. "38도선조차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만약 소련의 반대에 부딪힌다면 분계선은 38선보다 훨씬 더 남쪽에서 설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분계선 획정 제안이 미국의 군사적 능력을 훨씬 넘어설 경우 소련이 수락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걱정했습니다. 만일 소련이 38선 획정에 반대했다면 미국은 소련의 한반도 독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현실을 미국의 지도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미군이 한반도에 도착하기 전에 한반도 남쪽까지 점령을 완료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소련이 38선 획정 제안을 즉각 수락하자, 미국은 매우 놀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38선 획정에 직접 참여했던 딘 러스크의 회고록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38선 획정에 참여했던 딘 러스크의 회고 내용.

그렇다면 소련은 왜 38선을 즉각 받아들였을까요? 박 연구원은 소련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문제로 양국 협력 관계가 깨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선, 소련은 전후 경제 재건을 생각했습니다. 전후 소련의 국가적 목표는 전쟁으로 파괴된 국내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소련은 1945년부터 미국과 차관 협상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미국과 마찰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겁니다. 또 미국과 소련의 안보 전략에도 주목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 수호'가 목적이었습니다. 이른바 미국의 태평양방위선은 알류샨열도에서 일본 위임령 섬들과 오키나와, 필리핀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소련의 경우는 요동반도를 포함한 동북지역 수호가 최우선 전략이었습니다. 소련은 이미 중소우호동맹조약 체결로 동북지역에 대한 소련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38선 획정으로 요동반도를 소련군의 단독 점령지역으로 인정해준다면 38선 이남지역은 미국의 점령지역으로 양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스탈린은 트루먼의 38선 제안에 보낸 답장에서도 이 점을 강조합니다. 결국 소련은 요동반도를, 미국은 한반도 이남을 '맞트레이드'한 셈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주요 방위 전략

"미국의 38선 획정 제안과 소련의 즉각적인 동의는 결론적으로 미소 대립의 산물 혹은 냉전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양국이 여전히 협력을 추구하고 타협한 결과다." 위의 근거를 바탕으로 박 연구원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반도는 양국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곳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나뉜 곳'이었던 겁니다. 기존 역사 대가들의 정치적, 군사적 학설과 다른 시각을 적용한 젊은 학자의 새로운 주장이 앞으로 한반도 역사와 38선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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