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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진실을 '포렌식'한다면…"추락의 해부"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00

세계언론사에 길이 남을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로 유명한 기자 칼 번스타인은 말했다. 기사란,

"얻을 수 있는 최고 버전의 진실(the best obtainable version of the truth)"일 뿐이라고.

진실 그 자체에 다가서기란 쉽지 않으며, 언론은 진실의 여러 버전 가운데 '획득 가능한 최고의 진실'을 추구할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워싱턴포스트에서 밥 우드워드와 함께 끈질기고 집요한 취재로 끝내 닉슨 대통령을 사임케했던 번스타인도 진실을 밝히기란 그만큼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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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엄마야. 엄마는 죄를 짓지 않았고, 너를 사랑한단다… 재판에서 나왔던 얘기들은 모두 왜곡된 거야…엄마를 아빠를 사랑했어.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니?

유명 작가인 산드라는 시각장애인 아들 다니엘을 붙잡고 호소하듯 말한다. 요즘 극장가에서 가장 핫한 예술 영화 "추락의 해부"에 나오는 대사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다음달 열리는 아카데미상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등 5개 주요 부문상 후보에 올라있다. 프랑스 영화로는 이례적이다.

"추락의 해부" 포스터 중 / 그린나래미디어
산드라는 남편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 온 사방에 눈이 하얗게 쌓인 어느 겨울날, 알프스에 있는 한 외딴 집 마당에서 숨져 있는 중년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산드라의 남편이자 다니엘의 아버지인 사무엘이다. 부검에서는 머리에 깊게 패인 상처가 나왔다.

경찰은 사무엘이 3층 다락에서 추락사했다고 추정하지만 그가 왜 3층에서 떨어졌는지는 밝혀내지 못한다. '사고였나, 자살인가, 살인일까'라는 영화 카피처럼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진 채 법정으로 넘어간다.

사건 당시 집에는 산드라와 아들 다니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산드라는 강력한 용의자로 몰린다. 산드라는 범행을 부인하지만 검사는 사건 발생 하루 전날 녹음된 산드라와 남편 사이의 격렬한 부부싸움 녹취록을 법정에서 틀며 산드라를 몰아붙인다.

부부싸움이란 게 하다보면 치졸한 독설과 극단적 발언까지 나오기 마련아닌가. 녹취록을 공개하자 작가가 되고픈 교수 남편과 유명 작가인 아내 사이에 있었던 해묵은 감정과 아들이 장애를 입게 된 불행한 과거사, 두 사람 사이의 원만하지 못한 성생활까지 온갖 내밀한 부부의 세계가 까발려진다.

지식인 부부의 평판은 추락한다. 녹취록의 내용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실일까. 산드라는 남편과 상담해온 정신과 의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자 말한다.

"사무엘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우리 부부가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안다고 했는데 당신이 아는 건 전체 중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녹취 내용도 분명 사실이지만 그게 이십 년 가까운 산드라 부부의 인생을 대표할만한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 증언을 앞둔 아들 다니엘은 혼란에 빠진다. 뭐가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중요한 증언을 앞두고 모자(母子) 사이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법무부 직원은 다니엘에게 말한다.

"판단을 해야하는데 정보가 부족하면 결정하는 수 밖에 없어."

법정에 출석해 증언대에 선 다니엘은 말한다.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면 정황을 봐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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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정보는 넘쳐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중요한 이슈를 판단할 정보가 오히려 부족해졌다는 걸 느낀다. 점점 더 파편적으로 쏟아져나오는 팩트의 시대에 진실을 알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진실은커녕 언론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the best obtainable version of the truth)'마저 추적안하거나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진실의 최후의 보루(堡壘)가 되어야할 사법부와 법조의 상황은 어떨까. 급한대로 '인스턴트 사실'을 즉각적으로 매일 공급해야하는 언론과 달리 이들은 판결까지 장대한 시간을 들인다. 그만큼의 진실을, 사람들은 기대한다. 그래서 법원에서 진실이라고 확정된 사실은 그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진실로서 사회에서 기능한다.

최근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1심 판결이 나오는데까지 재판에만 거의 5년이 걸렸다.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사건도 수사부터 재판까지 5년 넘게 걸렸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은 여기서는 잠깐 접어두도록 하자)

재판 결과는 '양승태 전(前) 대법원장, 혐의 47건 전부 무죄'. '이재용 삼성 회장, 혐의 19건 전부 무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던 사건들이, 현(現) 대통령과 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금감원장이 드림팀을 이뤄(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중앙지검 3차장, 경제범죄형사부장) 수사했던 사건들이 줄줄이 건건이 무죄가 되는, (현실적) 진실이 되는, 해부해봤더니 암이 아니더라가 되는, 이 진실의 (위상)추락을 어떻게 봐야 할까.

평소 이 사건들에 대해 입장차가 뚜렷하던 보수 신문과 진보 신문은 묘하게 입장이 엇갈리며 진퇴양난의 고심이 느껴지는 사설들을 펼쳐놓고 있는데, 정작 수사 당사자들은 뭐라 속시원한 반응이 없다. (기소할 때 관여한 사건은 아니었다느니, 삼성이 사법리스크를 일단락하는 계기가 됐다느니 하는 말은 못들은 걸로 하겠다)

검찰과 법원은 법조의 양축이다. 사회적 제도로서 진실 추구의 상보(相補)적인 파트너다. 하지만 세상을 뒤흔든 사건의 결과가 '마흔일곱 건·열아홉 건 전부 무죄'라니, 도대체 팩트와 진실을 어떻게 다루었길래 이런 기소와 판결이 나오는가. 이런 식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제 이 영역마저 국민들이 '정황'을 보고 '결정'해야 하는가, 선택적 진실이 시대 정신이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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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신출내기 기자였던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의 기사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키운 것은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물'(the most trusted man in America)로 불렸던 CBS 이브닝뉴스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였다.

불편부당(不偏不黨)하고 객관적인 보도로 미국인들의 신뢰를 얻은 그는 1972년 10월, 대선을 십여 일 앞두고 20여 분 남짓한 뉴스 시간 중에 한번은 14분, 한번은 8분에 걸쳐 워터게이트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한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인이었던 벤 브래들리는 훗날 "크롱카이트의 보도는 정확히 우리가 원하던 종류의 축복이었다"고 회고했다.

크롱카이트는 거듭된 정계 진출의 유혹을 피했고, 정확한 것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지금 언론(이라 부를 수 있는 언론이라면)도 정확한 것만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정황과 맥락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 단편적인 팩트 밀어내기식 보도가 일상화되면서 서서히 신뢰를 잃어왔다.

안정성을 주요 가치 중 하나로 하는 법조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죄와 무죄가 손바닥 뒤집듯 왔다 갔다 하면 믿음을 줄 수 없다. 언론과 법조가 이러니 사회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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