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히 두드러지는 건 검찰의 사례다. 지난주 검찰에서는 두 명의 부장검사가 총선 출마와 관련해 물의를 빚었다. "뼛속까지 ○○ 사람"이라는 문자를 고향 사람들에게 돌려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던 김상민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과 박대범 전 창원지검 마산지청장이다. 김 부장검사는 법무부에 사직서를 내고 주변에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것이 SBS 보도로 알려졌고 박 지청장은 총선 출마와 관련한 외부인과의 부적절한 접촉으로 특별감찰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전 정권 사람'으로 분류되는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신성식 전 수원지검장 등 검사장급 인사 두 명이 일찌감치 총선 출마를 시사하긴 했지만 일선에 있는 부장급 검사 두 명이 한꺼번에 총선 출마와 관련해 물의를 빚은 건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검찰 내부에선 위아래를 막론하고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황운하 판례' 탓, 정치권 직행 막을 방법 없어
하필 황운하 의원과 관련된 판례 때문에 현직 공무원들의 출마 길이 열린 건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황 의원의 사례야말로 앞서 언급한 수사기관 관계자의 정치권 직행이 문제될 수 있는, 가장 나쁜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 의원은 울산지방경찰청장 시절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공모해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측 비위를 수사하게 한 혐의가 인정돼 최근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미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된 뒤였다.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긴 했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국회의원 임기 4년을 꽉 채우게 됐다. 수사기관 관계자로서 권한을 남용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준 사실이 인정됐지만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게 된 셈이다. 황 의원의 선례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수사기관 관계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검사 출마 제한법'에 반대 의견 냈던 법무부…족쇄 됐다
물론 법무부도 할 말이 있다. 최강욱 전 의원이 발의한 '검사 출마 제한법'은 그 시기와 내용을 감안할 때 노골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법 앞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현행 법 체계에선 이번에 출마 의사를 밝힌 검사들 또한 헌법상 공무담임권과 평등원칙을 앞세워 얼마든지 '출마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매우 부적절"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와 명분은 사실상 부족한 셈이다. 검찰 내부에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일선 검사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편에선 언뜻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마저 비쳐지기도 한다.
부작용 뚜렷하다면, 입법으로 제도적 방지책 마련해야
그러나 명백히 부적절하고 부작용마저 뚜렷하다면 냉소에 발목을 잡혀선 안 된다. 오히려 수사기관 고위직보다 일선 직원들의 일탈이야말로 더 위험하고 국민에게 직접적 피해를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부의 견제나 감시가 쉽지 않고 즉각적으로 국민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인사들의 정치권 직행이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를 좀 먹는 건 덤이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큰 사회적 해악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수사기관 관계자의 정치권 직행 사례가 이제 신호탄에 불과할 거란 점이다. 검사나 경찰 출신 정치인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노골적인 경우는 없었다. 이는 작금의 정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안 좋은 선례가 이미 하나의 정치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큰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정치권 직행은 더 노골적이게 되고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판례 탓만 할 게 아니라 입법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이유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검사 출마 제한법' 말고, 현직 수사기관 관계자의 출마 제한법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90일이 아닌 1년, 최소 6개월이라도 휴지기를 둘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헌법상 공무담임권이나 평등권, 직업 선택의 자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와 권리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