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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사기관에서 정치권 직행, 문제없나

[취재파일] 수사기관에서 정치권 직행, 문제없나
기사 제목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당연히 문제가 있다. 언론인이나 법관, 다른 공무원도 마찬가지지만 수사기관에 소속된 자가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건 특히 문제의 소지가 크다. 수사권과 소추권을 가진 자가 향후 정치적 행보를 염두에 두고 죄 있는 자를 죄 없다 하거나 죄 없는 자를 죄가 있다고 보고 수사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단언컨대 없다. 후술하겠지만, 이미 우리는 그런 사례를 여럿 목도한 바 있다.

최근 특히 두드러지는 건 검찰의 사례다. 지난주 검찰에서는 두 명의 부장검사가 총선 출마와 관련해 물의를 빚었다. "뼛속까지 ○○ 사람"이라는 문자를 고향 사람들에게 돌려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던 김상민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과 박대범 전 창원지검 마산지청장이다. 김 부장검사는 법무부에 사직서를 내고 주변에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것이 SBS 보도로 알려졌고 박 지청장은 총선 출마와 관련한 외부인과의 부적절한 접촉으로 특별감찰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전 정권 사람'으로 분류되는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신성식 전 수원지검장 등 검사장급 인사 두 명이 일찌감치 총선 출마를 시사하긴 했지만 일선에 있는 부장급 검사 두 명이 한꺼번에 총선 출마와 관련해 물의를 빚은 건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검찰 내부에선 위아래를 막론하고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서울중앙지검 현직 부장검사 내년 총선 출마문자

'황운하 판례' 탓, 정치권 직행 막을 방법 없어

대검찰청은 두 부장검사를 인사조치하고 징계‧감찰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검사들이 출마를 강행한다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 지난 2020년 현직 경찰 신분으로 총선에 나선 황운하 민주당 의원에 대한 당선 무효 소송에서 대법원이 내린 이른바 '황운하 판례'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상 기한, 즉 90일 전까지 사직원을 제출했다면 수리 여부에 관계없이 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재판이나 감찰을 받고 있어 사표 수리가 거부된 현직 공무원이라도 공직자 사퇴 시한인 내년 1월 11일까지 사표를 낸다면 출마가 가능하다. 문제가 된 검사들의 총선 출마 릴레이가 이어지는 건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대전시 중구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당선인

하필 황운하 의원과 관련된 판례 때문에 현직 공무원들의 출마 길이 열린 건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황 의원의 사례야말로 앞서 언급한 수사기관 관계자의 정치권 직행이 문제될 수 있는, 가장 나쁜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 의원은 울산지방경찰청장 시절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공모해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측 비위를 수사하게 한 혐의가 인정돼 최근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미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된 뒤였다.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긴 했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국회의원 임기 4년을 꽉 채우게 됐다. 수사기관 관계자로서 권한을 남용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준 사실이 인정됐지만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게 된 셈이다. 황 의원의 선례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수사기관 관계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법무부 (사진=연합뉴스)

'검사 출마 제한법'에 반대 의견 냈던 법무부…족쇄 됐다

그러나 검찰 입장에선 마냥 '황운하 판례'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동훈 법무장관 시절 법무부가 이른바 '검사 출마 제한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던 전력 때문이다. 지난 2월 법무부는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검찰청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취지의 검토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법무부는 "이미 공직선거법 등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90일 동안 출마를 제한하는 등 적절한 수단이 있음에도, 다른 공무원과 달리 검사에 대해서만 1년 동안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는 건 헌법상 공무담임권과 평등원칙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법무부도 할 말이 있다. 최강욱 전 의원이 발의한 '검사 출마 제한법'은 그 시기와 내용을 감안할 때 노골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법 앞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현행 법 체계에선 이번에 출마 의사를 밝힌 검사들 또한 헌법상 공무담임권과 평등원칙을 앞세워 얼마든지 '출마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매우 부적절"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와 명분은 사실상 부족한 셈이다. 검찰 내부에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일선 검사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편에선 언뜻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마저 비쳐지기도 한다.
 

부작용 뚜렷하다면, 입법으로 제도적 방지책 마련해야

기실 정파적 이익이 객관과 공정, 신뢰와 같은 당위적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현실 속에서 이런 우려가 얼마나 의미 있느냐는 냉소가 있을 수 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법무장관 출신 여당 대표가 엄연히 존재하는 정치 현실에서 부장검사 몇 명이 곧바로 총선에 출마하는 것 쯤 뭐가 대수냐는 주장 역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명백히 부적절하고 부작용마저 뚜렷하다면 냉소에 발목을 잡혀선 안 된다. 오히려 수사기관 고위직보다 일선 직원들의 일탈이야말로 더 위험하고 국민에게 직접적 피해를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부의 견제나 감시가 쉽지 않고 즉각적으로 국민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인사들의 정치권 직행이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를 좀 먹는 건 덤이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큰 사회적 해악이기도 하다.

국회 본회의

분명한 건 수사기관 관계자의 정치권 직행 사례가 이제 신호탄에 불과할 거란 점이다. 검사나 경찰 출신 정치인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노골적인 경우는 없었다. 이는 작금의 정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안 좋은 선례가 이미 하나의 정치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큰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정치권 직행은 더 노골적이게 되고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판례 탓만 할 게 아니라 입법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이유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검사 출마 제한법' 말고, 현직 수사기관 관계자의 출마 제한법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90일이 아닌 1년, 최소 6개월이라도 휴지기를 둘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헌법상 공무담임권이나 평등권, 직업 선택의 자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와 권리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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