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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남편과 함께 육아휴직…"그것도 기득권이잖아요?"

'3+3 육아휴직' 해본 기자가 바라보는 '6+6' 시대

저는 18개월 아들을 둔 워킹맘입니다. 3개월여의 출산휴가, 그리고 1년의 육아휴직을 쓴 후 지난 10월 복직했습니다. 복직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애는 누가 봐?"입니다. '부모님이 봐주시냐' '사람을 쓰느냐'라는 추가 질문이 더해지기도 하는데요,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에요"라고 답을 하면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누군가는 '좋겠다' '부럽다', 누군가는 '남편이 용기를 냈네'라고 말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요즘 트렌드대로 사는구나"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이런 반응을 보고 있으면 육아휴직(특히 남성의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참 다양하다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정부는 내년부터 생후 18개월 이내 자녀를 둔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첫 6개월 간 받는 육아휴직 급여의 상한선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12개월 이내 자녀를 둔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첫 3개월 간 육아휴직 급여를 200~300만 원까지 주는 '3+3 육아휴직제'를 '6+6'으로 확대하는 겁니다. (부부 각각 3개월 씩이라 3+3, 내년부터는 6개월씩이라 6+6입니다) '6+6'이 되면 첫 달은 부부 모두 최대 200만 원, 마지막 6개월 차에는 450만 원씩 받을 수 있습니다. '6+6 시대'는 더 많은 아빠 엄마의 육아휴직을 유인할 수 있을까요? 3+3 육아휴직제를 직접 사용해본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육아휴직 중인 남편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남편과 함께 3개월 동반 육아휴직 해보니


남편은 지난 6월 중순부터, 6개월 육아휴직을 냈습니다. 6월이 3+3 육아휴직제를 쓸 수 있는 마지막 달이었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쓰는 첫 남성 직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육아휴직 신청서를 회사에 내던 날 상사로부터 '회사에 돌아올 거지?'라는 말을 들었다는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했던 기억도 나네요.

육아휴직 자체도 큰 고민이었지만 사실 더 큰 고민은 어렵게 얻은 남편의 육아휴직을 언제 어떻게 쓰느냐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쓸지 아니면 순차적으로 쓸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공동육아를 하며 가족 세 명이 함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었지만, 부모님이나 외부인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부부가 오롯이 육아를 책임질 수 있는 기간을 늘리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고민 끝에 '동반 육아휴직'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24시간을 오롯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둘 다 회사에서 잘리지 않는 이상 이때뿐일 것 같다'는 게 선택의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6월 중순부터 9월까지 24시간 공동 육아를 했습니다. 모든 선택엔 단점도 있고 아쉬움도 있습니다. 일을 쉰다고 대출금 상환까지 쉴 수 있는 건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매달 내야 하는 공과금에 한 살 아기 육아 비용 지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적금을 중단하고 모아 놓은 돈을 까먹으며 사는 것이 불가피했습니다. 육아휴직 급여나 부모수당, 지자체에서 주는 출산장려금 등 정부지원금들이 있었지만 맞벌이 부부의 기존 월 수입과 비교하면 부족한 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던 큰 배경이 3+3 육아휴직제였습니다. 혼자 휴직했을 때 받던 육아휴직 급여에 비해 3개월 차 기준으로는 두 배 이상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경제적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줬기 때문입니다. 남들 출근하는 평일 아침에 산책을 하고, 낮에는 도시락을 싸서 한강 공원이나 근교 수목원을 다녔습니다. 여행도 길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고 초보 부모가 겪는 애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부부 육아휴직의 가장 큰 혜택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육아휴직 중인 남편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남편은 얼마 전 육아휴직을 석 달 연장했습니다. 입소 대기를 신청한 어린이집 중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아 내년 3월 신학기 입소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일단 우리 힘으로 해보자"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독박육아를 결단해 준 남편 덕분에 워킹맘이 처음인 저도 상대적으로 안정된 적응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부가 모두 육아휴직을 쓰면서 얻게 된 가장 큰 혜택은 '역지사지'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퇴근 후 설거지 거리를 한가득 쌓아놓고 잠이 들어버린 남편을 보면 슬슬 화가 나다가도, 불과 반년 전 집안일을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아이와 함께 잠들어 버렸던 제 모습이 떠오르며 화를 가라앉히게 됩니다. 둘 중 한 명만 육아를 전담해야 했다면 공감과 이해의 폭이 좁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네 마음이 내 마음, 이 '역지사지'가 그 어떤 경제적 지원보다 더 큰 부부 육아휴직의 순기능이었습니다.

'6+6'이 그들만의 제도가 되지 않으려면

육아휴직 중인 남편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육아휴직에 대한 제 경험과 생각을 최근 다른 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여성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아휴직 쓸 수 있는 회사를 다니는 자체가 기득권이잖아요? 못 쓰는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디자인 분야의 회사를 다녔는데, 대체인력을 구할 수 없으니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만류했다고 했습니다. 직원이 10명 이하인 회사라 그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권리만 내세울 순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제 이야기가 자랑처럼 들렸을까 봐 땀이 삐질 났습니다. 얼마 전 다른 취재로 만난 한 30대 여성 구직자 A 씨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현재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분인데, 이전 직장은 20여 명 규모의 업체였고 그곳에서 총무팀 업무를 했다고 했습니다.
"여자 기혼이면 이력서를 잘 안 뽑았어요. 임원분들이 우선 거르는 대상자들을 저희한테 미리 이야기해 주시거든요. 여성 기혼 직원은 웬만하면 안 뽑았어요. 회사에서 가장 선호했던 대상은 결혼 한지 얼마 안 되거나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남자."

A 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구직 활동을 하는 상황인데 결혼을 할 거란 이야기를 면접에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주로 20~30명 정도의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현실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사실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결혼할 거라고 말하면 충분히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니까 꺼려지는 거죠. 예전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했던 분이 있었는데 그걸 다 기다려줬는데 결국 퇴사하셨어요. 남자가 육아휴직 하는 건 전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 제가 그런 걸 많이 봐왔는데 제가 지금 딱 그 시기에 걸리다 보니까... 남편한테도 (결혼 후) 당장은 아기 갖지 말자고 했어요."
육아휴직 중인 남편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2년 육아휴직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대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인원은 19만 9976명으로 전년보다 14.2% 증가했습니다.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습니다. 육아휴직자의 27%가량이 남성이었고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 육아휴직자 10명 중 7명, 여성 육아휴직자 10명 중 6명은 모두 300명 이상 대기업 소속 직장인이었습니다.

기업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육아휴직이 모두 수월한 것은 아닐 겁니다. 대기업이어도 경직된 조직 문화로 인해 육아휴직이 쉽지 않다는 회사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육아휴직 확대가 대기업에겐 문화의 영역이라면 중소기업에겐 생존의 영역이라는 게 현장의 이야기입니다. 정부는 고용보험법에 근거해 500명 이하 우선지원대상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사업주가 직원의 육아휴직을 허용할 경우 한 명당 연간 최대 870만 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 비용도 2021년 기존 1,320만 원에서 450만 원 줄어든 금액입니다.)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기업에게도 인센티브를 준다는 취지이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선 최저임금 수준으로 대체인력을 구한다고 해도 이 지원금보다 더 많은 비용의 인건비가 들고, 그렇다고 자리를 비워두기엔 한 명의 부재가 업무에 큰 영향을 차지하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번에 6+6 제도로 육아휴직제가 확대됐지만, 정작 기업의 입장에서 근로자의 육아휴직을 지금보다 장려할 수 있는 인센티브나 유인책은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6+6 육아휴직제가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 특히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강구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승진을 포기했다" "연봉을 포기했다" 이런 결단이 없어도 육아휴직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문화와 인식, 그리고 기업에게도 직원의 육아휴직이 생산성 증대와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일 수 있는 제도적 유인책이 병행돼야 6+6 시대가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모든 가정의 현실에 녹아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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