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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전기톱 든 당선자는 왜 자기네 화폐를 버리고 달러를 쓰자고 할까

[뉴스쉽]

143퍼센트. 아르헨티나의 지난 10월 물가상승률(전년대비)이다. 미국이 초유의 인플레이션으로 금리를 계속 올려 전 세계가 몸살인데, 그런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최고 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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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대비 물가상승률이 143%라는 건, 지난해 이맘때 100만 원 하던 물건이 지금은 243만 원이 됐다는 소리다.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은 수십 년 묵은 만성질환인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급격하게 나빠졌다. 올해부터 전년대비 물가상승률이 100%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같은 달 대비 물가가 2배를 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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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에는 전년대비 물가상승률이 170%를 넘길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금 아르헨티나에선 매달 10% 안팎으로 물가가 오른다. 한번 매긴 물건값이 2주를 못 간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의 상점들에선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식료품점, 지난 23일. / 출처 : 연합
언뜻 보면 '이게 뭐?' 하실 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식료품점 모습이지만 가격표를 자세히 보면 떼었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 메모지가 겹겹으로 붙어있다.
스프 뉴스쉽 (사진=연합뉴스)
가격을 하도 올려붙여야 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점포에서 취급하는 다양한 물건의 값이 다 오르니, 아예 이런 게시판을 만들어 놓았다.

아르헨티나 한 슈퍼마켓의 가격인상품목 게시판. / 출처 : 연합
서민들의 삶이 고단할 수밖에 없다. 물건값이 오른다고 해서 가게 주인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자기도 도매상에서 오른 값으로 물건을 받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오른 값에 물건을 살 돈이 없으니 물건을 들여놔도 팔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로이터는 아르헨티나 경제상황을 전하는 지난 9월 13일 자 기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육점 주인 카포비앙코(53)의 이런 한탄을 전했다. "이달 월세는 어떻게 내야 할지, 전기료는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모두 화가 나 있어요. 그럴 만하잖아요? 고기 1kg 사 먹을 돈도 없는데."

그래서 실제로 폐업하는 가게가 늘고 있고, 길바닥으로 나앉는 사람도 늘고 있다. 원래도 빈부격차가 큰 나라지만,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은 이제 40%에 이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길바닥에 나앉게 된 일가족. / 출처 : 게티이미지

추락하는 화폐 가치... 치솟는 달러 수요

아르헨티나 화폐는 페소(pesos)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7월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상점에서 촬영된 것이다. '1달러=270페소'라고 붙여놨다.

지난해 7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진=게티이미지
다음 사진은 1년 3개월 뒤인 지난 10월에 같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찍힌 것인데, 1달러의 가치가 1,100 페소나 된다. 아르헨티나 화폐의 가치, 구매력이 1년 남짓한 사이 그만큼 추락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단위도 $로 표기한다. 'Real'은 브라질 헤알 화. 지난 10월 24일 부에노스아이레스, / 출처 : 연합
아르헨티나 페소는 들고 있으면 가치가 뚝뚝 떨어지니, 가치가 유지되는 달러나 유로 등 외화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조금 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은 점점 더 달러 또는 유로, 브라질 헤알화로 돈을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달러화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달러 공급은 부족하다. 은행에서 달러를 바꾸면 현재 357페소 정도에 1달러를 살 수 있다는데, 그런 환율로 개인이 환전할 수 있는 양은 얼마 안 된다. 국가가 보유한 외화가 부족한 상황이라 환전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수요는 치솟는데 공식적인 공급이 부족하니 암시장이 발달한다. 도시의 상점가에는 암달러상들이 공공연히 호객을 한다. 이들에게서 달러를 사는 것은 불법이지만 은행에서는 필요한 만큼 달러를 구할 수 없어서 공무원도 경찰관도 모두 이들을 찾는다고 한다. 모바일의 시대이니 암달러상들은 메신저로 주문을 받아 달러 지폐를 배달해주기도 한다.

미국 바이스뉴스(Vice News) 유튜브 캡처
그러면 암달러상들은 달러지폐를 어디서 구할까? 미국 온라인매체 바이스 뉴스(Vice News)는 지난 1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환전상을 인터뷰했다. 그는 '중앙은행 직원들이 달러를 빼돌려 우리에게 판다. 그걸 받기 위해 월 20달러(당시 환율로 4천 페소) 내고 단체대화방에 가입해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사실무근이라며 이 보도를 부인했다.)
 

한때 세계 최고 부국 중 하나… 어쩌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농축산업 대국이고 천연자원도 비교적 풍부한 나라다. 그런 나라의 돈 가치가 어떻게 이렇게 떨어지게 됐을까?

비옥하고 넓은 국토를 지닌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미국보다 잘 사는 농업국가였다. 문제는 그 농업이 소수의 농장주에게 집중돼 빈부격차가 너무 컸다는 거다. 대규모 빈민층의 존재는 좌파 확산의 토양이 되었다. 현대 아르헨티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 후안 페론은 1946년 집권 이후 노동자 임금 인상과 사회복지 확충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무역장벽을 높였다. 페론의 정책은 처음엔 빈부격차 해소에 도움이 되었고 페론 부부(부인이 에비타)를 노동대중의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점차 아르헨티나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늘린 지출을 돈을 찍어서 메우다 보니 인플레이션이 불붙기 시작했다.

후안 페론과 부인 에바 페론 (에비타), 1945년. 사진=게티이미지
비대한 공공부문과 국영기업의 임금을 올려주고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며 에너지, 교통요금 등 각종 보조금을 주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선거에서 표가 된다. 1946년 이래로 페론주의자들은 그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14번의 대통령선거 중 10번을 이겼다.

선심성 지출을 충당할 지폐를 찍느라 조폐공장은 24시간 가동해야 했다.

24시간 가동 중인 아르헨티나 조폐공장, 2020년 8월 14일, 사진=게티이미지
그렇게 수십 년 쌓인 결과가 작금의 아르헨티나 경제 현실이다. 좌파 우파 정권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이런저런 땜질식 정책을 내놨지만 대수술이 필요한 경제에 약만 먹이는 수준에 그쳤고, 그 사이 경제는 골병이 깊어졌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한다.

"기회를 놓칠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는 나라"

"20일 떠났다가 돌아오면 모든 게 바뀌어 있지만 20년 떠났다가 돌아오면 모든 게 그대로인 나라"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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