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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자리 뺏기는 창작자들…AI 게임의 이면

막 내린 지스타, AI가 바꾸는 게임산업

국내 최대 규모 게임쇼인 지스타가 19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회째를 맞이한 '지스타 2023'엔 42개국, 1037개사(3,329 부스)가 참여하는 가운데, 과거 최대 규모였던 2019년(3,208부스)을 넘어 역대 최대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회사들이 다양한 신작들을 발표했는데, 특히 AI 업체들도 대거 참여했다. 게임 깊숙이 들어온 AI가 게임 산업 자체를 바꾸고 있다.
 

"내 목소리를 잃었다" 일자리 뺏기는 성우들

게임 ‘더 파이널스’ - 캐릭터 음성에 AI 활용

넥슨의 유럽 자회사 엠바크 스튜디오가 지난달 26일부터 2주 간 '더 파이널스' 오픈 베타 테스트를 열었다. 역동적인 화면 전환과 압도적인 폭파 장면으로 인기를 끌었고 테스트 개시 첫 주에만 동시에 26만 명의 접속자가 몰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게임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인공지능 음성이 활용됐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해외 성우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크게 반발했다. 게임 성우로 활동하는 지안니 마트라그라노는 "AI 음성 사용에 유감을 표한다. 실제 성우를 캐스팅해라"라고 말했고, 또 다른 성우 킷 해리슨도 "의자에서 일어날 때 나는 소리도 재현 못하면서, 내 일자리는 뺏는다니 웃기지 마라"고 비판했다.

해외 성우들의 ‘AI 음성 사용’ 비판 글

'더 파이널스'에 쓰인 기술은 AI TTS(Text to Sound)로 문자를 사람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기존 TTS 기술은 다소 어눌하고 부자연스러운 억양으로 기계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AI로 다양한 음성들을 습득하고 합성한 결과보다 자연스러운 음성을 생성할 수 있게 됐다.

Voice DB 재산권 독점적 이용허락 계약서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 국내 성우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수년 전부터 AI 업체와 게임회사들로부터 성우들의 목소리를 활용할 수 있는 계약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성우협회를 통해 확보한 'Voice 독점 계약서'에는 "대상저작물의 독점사용권은 ○○○에게 영구적으로 양도된다'고 쓰여 있다.
 
최재호 / 한국성우협회 사무총장
어떤 회사들은 이미 큰 돈을 주고 양도 계약을 다 받아놓은 상태예요. 저희 목소리를. 그러다 보니까 이 목소리를 해당 회사에서 게임 회사에도 팔고, 다른 업체에도 팔고 그러겠죠. 이런 부분들을 왜 허락했느냐 하겠지만, 개별적으로 계약서를 들이밀고 비용을 주겠다고 하니, 계약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고 진행한 거죠.

AI가 생기면서 한번 목소리를 주면, 특화된 것들만 좋은 것들만 쏙쏙 빼서 딥러닝을 시키면 정말 새로운 성우가 나타는 거죠. 인공지능 성우가 단점이 보완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건데, 성우들마다 독특한 캐릭터로 캐스팅되는 건데, 그런 캐릭터는 없어지는 거죠.
 

AI로 그린 일러스트, 수작업 가격의 10분의 1

음성보다 먼저 AI가 습득한 분야는 그림이다. 21년 5월 오픈AI 달리, 22년 7월 미드저니의 미드저니, 22년 8월 스태빌리티AI의 스테이블디퓨전이 출시되면서 이미지 생성 AI의 성능이 급격히 올라왔다(임희석 '생성AI 게임 산업의 마지막 반등 트리거' 인용), 노동집약적 산업인 게임에 생성형 AI가 도입되면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비용도 크게 절감된다. 실제로 수작업으로 하는 게임 일러스트 가격은 장당 수십만 원을 호가하지만, AI가 그리면 10분의 1로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국내 게임업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AI 조직을 만들어 키우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2011년부터 AI연구조직을 꾸렸다. 지난 8월에는 국내 게임사 최초로 자체 개발한 LLM '바르코(VARCO)'를 공개하고 생성형 AI의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넥슨도 자사 AI 연구소인 '인텔리전스랩스'를 통해 AI 게임 중계 등 서비스를 개발 중이고, 넷마블과 크래프톤은 각각 AI센터와 딥러닝 본부를 통해 AI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게임업체 관계자
게임 개발할 때 저희는 공장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그냥 다 공장이거든요. 사람 손으로만 모든 게 탄생해요. 세계관도 그렇고 이미지도 그렇고, 프로그래밍은 너무 당연하고. 하나하나 다 사람 손을 썼으면 개발 기간도 굉장히 오래 걸리고 노동 시간도 되게 오래 걸리고, 그만큼 개발비도 많이 들죠. 그런데 AI 기술이 있으니까 AI를 개발 도구로서 사용하면 기간도 단축시키고 비용도 세이브하는 효과가 있죠.

엄민재 취재파일

미국 미술감독 조합 '아트디렉터스길드' 소속으로 '토르: 러브 앤 썬더', '미즈마블', '더 마블스' 등의 콘셉트 아트를 담당했던 추유진 씨도 이런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콘셉트 아트는 영화나 게임산업에서 전체 분위기나 방향성을 표현하는 일러스트다. 영화나 게임은 이런 콘셉트 아트를 바탕으로 수십, 수백 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하나의 콘셉트 아트를 그리는 데는 최소 일주일에서 한 달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추유진 / 할리우드 콘셉트 아티스트
사실 모든 영화나 게임, 모든 시나리오 같인 것들은 다 거짓말(창작)인 거잖아요. 그런데 AI는 수억 개의 데이터를 합쳐서 조합을 만들어 내니까, 그것을 인간이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콘셉트 아트 분야에도 AI에 대한 위기감이 느껴지는지) 저뿐 아니라 다른 콘셉트 아티스트 분들 얘기해보면 '이제 우리도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콘셉트 아트 분야 뿐 아니라 3D 아트 디자인이나 VFX(Visual Effects)쪽 분들도 다 AI로 대체된다면 일자리를 잃는 거니까.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다 감독이 되거나, 게임 개발자가 돼서 모든 걸 다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내 그림 보고 만든 또 다른 AI그림…저작권은?

지난해 9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주립 미술대회에서 생성형 AI로 그린 작품이 1위를 차지했다. 출품자는 설명문을 입력하면 이를 이미지로 변환해주는 '미드저니' 프로그램을 활용해 3개의 작품을 제작해 출품했다. 그가 AI로 작품 3개를 제작하는 데는 80여 시간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AI 작품의 수상 소식에 '수상 자격이 없다'는 비판부터 '포토샵을 이용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등의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문제는 AI가 어떤 '데이터'를 통해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이다.
 
위정현 / 한국게임학회장
창작자들이 만들어낸, 즉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인데 그걸 AI가 학습하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학습에 대한 도구 교재를 내가 줬는데, 그 교재를 학습하고 난 다음에 오히려 창작자인 나의 일자리를 뺏으려 하면 어떻겠어요. 그런 점에서 저작권 침해를 하지 말든지, 아니면 저작권 침해를 했으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되지 않느냐라는 게 기본적인 문제의식인 거예요.

지난달 이 같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 주체로 '2023 서울 저작권 포럼'이 열렸다. 포럼의 주제는 '생성형 AI와 저작권'이었다. 기조연설을 한 미라 순다라 라잔 로스쿨 교수는 "AI를 이용해 생성된 작품의 경우 실제 창작한 주체가 누구인지, 작품에서 나오는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등의 논란이 있고 현재 어느 국가에서도 이를 법으로 규정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현실과 진실, 역사와 정체성, 인간의 창의성을 훼손한다면 모두가 패배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AI를 인간 창의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되 '저작인격권'을 강화해서 AI 창작물로부터 작가와 예술가들의 명예와 생계를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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