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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밀린 임금에 줄도산 공포까지…흉흉한 산업단지

위니아 계열사 임금 체불 1,714명, 601억 원 규모

김치냉장고의 원조 격인 딤채를 출시한 위니아, 한때 누적 판매량 1천만 대를 돌파한 기업이지만 지난 4일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위니아는 김치냉장고와 에어컨을 비롯한 주방가전, 생활가전을 출시하는 전자업체다. 1995년 김치냉장고를 출시하며 호황기를 누렸지만, 경영 상황 악화와 대규모 임금 체불이 맞물려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대유위니아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위니아전자와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도 지난달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해 10월 19일 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극단적 생계 위기에 놓인 근로자들이 수백 명에 달해 지역 차원이 아닌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위니아 계열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만 450여 곳에 달해 줄도산이 날 수도 있다는 흉흉한 말까지 나온다. 광주 산업단지를 찾아 임금 체불 근로자들, 협력업체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열 달째 컴컴한 공장…"마이너스통장도 다 썼다"

가동 멈춰 어두컴컴한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 공장

광주에 있는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이후 위니아MF) 공장은 어두컴컴했다. 흔히 예상되는 공장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취재진을 맞아준 건 노동조합 지회장 한 명뿐, 다른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8~11월은 김치냉장고가 한창 만들어지는 성수기다. 이맘때쯤 공장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창고엔 재고가 가득 쌓여있었다고 한다. 김장을 준비하는 소비자들이 김치냉장고를 주문하면 바로바로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남상국 / 전국금속노조 위니아전자지회 지회장
이맘때쯤은 성수기니까, 원래는 제품이 많이 쌓여 있어야 되는데. (공장은) 전기, 가스 다 끊겼고 지금은 라인이 완전 멈췄죠. 완전 가동이 중단된 건 지난해 12월, 그전에도 8월부터 가동했다 안 했다 했어요.

현재 위니아MF에 소속된 근로자는 280명, 1990년대에만 해도 4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나마도 다들 임금이 밀린 상태로 쉬고 있다.
 
임금 체불 근로자 A
거의 1년 넘게 급여가 안 나오고 있으니까, 체불된 상태라서 그 전에 마이너스통장 개설했던 것도 다 바닥이에요. 그렇다고 지금 어디 가서 돈 빌릴 데도 없고, 정부에서 빌려주는 대지급금도 한번 보고 있는데 신청 조건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막막하죠.
임금 체불 근로자 B
급여가 계속 밀려서 나오더니, 넉 달 동안은 아예 안 나왔어요. 일하는 곳이 다 여기(광주) 산업단지에 몰려있어요. 하남 공단 쪽은 난리예요. 지금 줄도산 난다고 어떻게 살아날 방법은 없냐는 거죠.
 

체불 임금만 1억 5천만 원…남은 가족의 고통

28년 동안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 공장에서 일한 A 씨는 지난 8월 출근을 준비하다 자택에서 갑자기 쓰러졌고 결국 숨졌다. 퇴직금과 밀린 임금까지 회사에서 받아야 할 돈은 1억 5천만 원이다. 남은 가족들은 당장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A 씨 사망 이후 두 달째 아무런 연락이 없는 회사의 태도다.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 공장에서 근로자에게 보낸 임금 체불 확인서
임금 체불 근로자 A 씨 아내
지금은 다른 가족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밀린 임금이 나오면 갚기로 하고. 직장도 알아보고 있어요. 당장은 부검 결과도 기다리고 있고 체불 임금 소송도 준비해야 해서… 회사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어요. 그게 더 화나요, 왜 연락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회사 이야기를 잘 안 하는 남편이었지만, 아내는 지난해 말부터 어렴풋이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월급이 들어오는 10일이 되면 어김없이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제때 못 보내줘서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남편이 쓰러지고 회사를 통해 받은 임금 체불 확인서를 보니 남편이 혼자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실감하게 됐다.

올해 초 구조조정이 있었던 회사에서 A 씨는 '살아남았다'. 한동안 멈췄던 공장도 미니 냉장고 생산으로 7~8월에 잠시 돌아갔다. 지난 8월에 출근하면서 A 씨는 무척 기뻐했다. 회사에 나가면서도 아내에게 조금만 참으면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했다.
 
임금 체불 근로자 A 씨 아내
회사 가니까 좋다고 그랬어요. 구조조정 끝나고 자기는 대상자도 아니었으니, 공장 가는 게 정말 좋다고 그랬어요. 한 6개월인가, 7개월 놀고 갔으니까. 당장 3개월 치 일할 것은 있다고 그랬어요. 이제 좋아질 것 같으니까 10월까지만 참으라고 그랬어요. 10월까지는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 쓰라고, 이제 10월 되면 회사에서 돈도 줄 거라고. 멕시코 공장도 매각하면 밀린 임금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위니아 계열사 3곳에서 임금을 못 받은 사람은 1천700여 명에 달한다. 위니아전자 545명, ㈜위니아 855명,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 314명이다. 그리고 그 규모는 지난 9월 기준 601억 원이다.
 

대지급금 제도 있지만…재직 중엔 받을 수 없다?

정부가 석 달 치 체불 임금을 대신 주는 제도가 있다. '대지급금' 제도다.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일정 범위의 체불 임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도로 특히 '간이 대지급금'의 경우 재작년 10월 개정된 법이 적용되면서 노동청에서 발급하는 '체불 임금 확인서'만 있으면 신청이 가능하도록 절차가 간소화됐다. 하지만 위니아 계열사에서 일하는 재직자 중에 이를 받은 사람은 없다. 지급 요건 상 3개월간 통상시급이 최저임금의 110% 미만'인 저소득 근로자를 지원하는 취지여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민재 취파용 표

협력업체도 줄도산 공포…"우리도 임금 못 줘"

광주경총, 대유위니아그룹 경영 정상화 촉구 (사진=광주경영자총협회 제공, 연합뉴스)

위니아그룹 내 계열사는 광주 전자제품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2%(매출액 기준)다. 최근 위니아전자, 위니아MF, ㈜위니아까지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들도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위니아 계열사 A 협력업체 대표 / 플라스틱 원료
원래 김치냉장고가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 동안 1년 생산량의 80%를 생산해서 아주 바쁜 시기입니다. 바쁜 시기에 이렇게 계열사들이 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공장은 가동 정지됐습니다. 원래 창고가 비어있어야 하는데, 물건들이 나가지 못해서 이렇게 쌓여있는 거예요. (중략) 지금 극성수기 시즌인데 지금 공장 가동을 안 하면 1년 동안 또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 협력사들은 다 파산하게 되는…
위니아 계열사 B 협력업체 대표 / 부품 도장
지금 우리는 세금을 못 내고 있어요. 돈이 들어와야 세금도 내고 4대 보험도 낼 거 아닙니까? (직원들은) 현재는 잡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문제가 계속되면 헤어져야 되겠죠. 장기화되면 은행 이자도 못 내게 되겠죠. 그러면 어떻습니까? 임금이 체불되겠죠. 은행에서도 신용 등급이 떨어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거예요.

광주 지역 협력업체만 450여 곳에 달한다. 이들이 대금 미지급으로 인해 겪는 피해 규모는 1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 기업의 위기가 지역사회 전반을 흔들어 놓고 지역 경제를 마비시킨 상황이다. 광주시와 광주상공회의소 등은 최근 호소문 발표를 하면서 신속한 회생절차 개시를 촉구해왔다. 광주시의회는 위니아 계열사 기업회생 신청에 따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했다.
 
박수기 / 광주시의회 의원(대책 마련 촉구 건의안 대표 발의)
위니아 계열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 회생 신청을 하면서 지역 경제 위기, 그리고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그룹 오너가 박영우 회장이시거든요. 이분이 결단을 내서 본인 사재 출연이나 이런 걸 해야 됩니다. 그래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이 건의안에 담겨있고 (박 회장에게) 문제 해결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여 달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비판받는 경영진…박영우 '체불 임금 변제' 약속했지만

박영우 대유위니아 회장 (사진=연합뉴스)

대유위니아그룹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비판 여론은 여전하다. 지난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선 박영우 대유위니아 회장에 대한 의원들의 책임 추궁이 쏟아졌다. 지난 17일 건강상 이유를 들어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았던 박영우 회장은 이번에 증인으로 나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했지만, 체불 임금 원인을 경영 적자 탓으로 돌리다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은주 / 정의당 의원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로서 임금 체불에 대해 직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1년 넘게 임금 체불에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가족들까지 극단적인 생계 위험에 처해있으며 줄도산으로 협력업체까지 막대한 피해가 가고 있습니다.

노웅래 / 민주당 의원
박 회장은 체불 임금 문제로 사회에 물의를 빚었고 노동자 및 협력업체까지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지역 협력사에 진 피해에 대해 통감하십니까.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임금 체불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게 맞습니까.

윤건영 / 민주당 의원
경영 실적 악화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면 안 됩니다. 기업 활동이 어려울 순 있지만,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면 안 되고 임금 체불은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지는 겁니다.

박 회장은 그룹 소유의 골프장이 조만간 매각될 것 같다면서 3천억~3천500억 원 정도에 매각하고 얻은 유동성을 체불 임금 변제에 최우선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 번에 매각액을 지급받는 것이 아니고 잔금이나 채무 등이 얽혀있다며 정확한 체불 임금 지급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강용석 위니아전자 노조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회사는 희망고문을 하면서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다"면서, "회장은 1년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급여 생활자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즉각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국정감사 발언 중엔 이런 부분이 빠져있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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