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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뒤차는 "속 터져!"…1차로 주행 1시간 500대

전라남도가 광주와 영암을 잇는 47km 구간에 속도제한이 없는 이른바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댓글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은 8천 개가 넘었습니다. 속도제한 없는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을 반기는 의견도 있지만, 상당수가 우리나라의 운전 문화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특히 1차로를 정속으로만 달리는 일부 운전자가 있는 현실에서 '한국형 아우토반'은 위험하고 시기상조라는 댓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위험한 신경전

(재등록) 1차로 정속 주행하는 차량

고속도로를 달려본 운전자라면 1차로를 정속으로 달리는 차량을 분명히 본 적 있으실 겁니다. 1차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은 저 멀리서부터 상향등을 번쩍 번쩍 켜고, 앞차에 바짝 붙여 빵빵! 경적을 울리기도 합니다. 1차로는 추월차로니까 빨리 비켜달라는 겁니다. 재빨리 비켜주는 차량도 있지만, "내가 왜?" 생각하는 운전자도 있습니다. 1차로 주행이 길어지면, 뒤차는 우측 차로로 위험한 추월을 하게 되고, 앞차를 추월한 뒤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런 신경전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꽤 있습니다.
 

추월차로 주행, '사실은' 단속 대상

(재등록) 1차로 정속 주행하는 차량

고속도로 1차로는 추월차로입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4차로 도로인 경우 1차로는 앞지르기 차로, 2차로는 승용차와 승합차, 3차로는 대형 승합차와 특수차량, 그리고 4차로는 화물차 및 건설기계 차량이 주행합니다. 1차로로 들어가 앞차를 추월했으면 다시 2차로로 빠져줘야 합니다. 'ㄷ' 형태로 운전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물론 차량이 많아지면서 시속 80km 이하로 주행할 때는 1차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차들이 천천히 가는데, 추월차로를 비워 놓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추월차로가 최근 어느 정도 지켜지는지 서해안고속도로에 나가 확인해봤습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오로지 1차로만 주행하는 차량이 금세 눈에 띄었습니다. 평소 고속도로 운전할 때 누구나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추월차로로 주행하는 것은 사실 단속 대상입니다. 승용차 기준으로 벌점 10점에 범칙금 4만 원이 부과됩니다. 승합차는 범칙금 5만 원입니다. 하지만 실제 단속은 많지 않습니다. '다 저러는데 왜 나만 단속해?' 운전자들 불만이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1차로, 5분간 주행

1차로 추월차로를 얼마나 달려야 단속 대상일까요? 사실 명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추월 상황이 아닌데 1차로를 1분간 달리면 단속한다든가, 1km 계속 달리면 단속한다든가, 확실한 기준이 없다는 뜻입니다. 단속 대상인지 애매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편도 2차로 고속도로에서, 화물차가 줄지어 2차로를 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승용차가 'ㄷ' 모양의 추월 규칙을 지키기 위해 2차로 화물차와 1차로 추월차로를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그럴 때는 1차로를 쭉 직진하는 것이 맞겠지요.

다만 누가 봐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행량이 많지 않은데 오직 1차로만 고집하는 경우입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서해안고속도로에서는 5분 가까이 오로지 1차로만 달리는 차량도 볼 수 있었습니다. 속도는 80km/h 이상이었습니다. 뒤차는 답답합니다. 경부고속도로 구미IC 부근(4차로 구간)도 CCTV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10월 25일 오후 1시 38분부터 1시간 동안 관찰했습니다. 총 329의 차량이 1차로를 달렸습니다. 5분간 최소 15대에서 최대 35대까지 1차로를 주행했습니다. 순천완주고속도로 용강교(2차로 구간)에서는 1시간에 502대가 1차로를 달렸습니다. 2차로 화물차량을 매번 추월하기 귀찮으니, 1차로만 쭉 달리는 차량도 있었고, 그저 나 홀로 1차로를 달리는 운전자도 많았습니다.
 

운전자 35% "추월차로가 뭐야?"

(재등록) 1차로 정속 주행하는 차량

추월차로가 이렇게 지켜지지 않는 것, 데이터가 뒷받침합니다. "추월차로가 교통안전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적 단속방안"(2021) 보고서에 담긴 수치입니다. 보고서는 운전자 8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추월차로제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9%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런 운전자는 1차로를 달리다 뒤에서 '빵빵!' 하면 '왜 저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추월차로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는 응답도 27.5%였습니다. 추월차로제의 내용과 통행 방법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운전자가 전체의 35.4%에 달했습니다.
 

추월 아닐 때도…"1차로 매우 자주 통행"

두 개 차로가 있는 상황에서, 앞지르기 필요성이 없어도 추월차로를 이용하느냐 여부도 물었습니다. 10.1%는 추월 상황이 아니어도 "1차로를 매우 자주 통행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응답률에 가슴이 답답한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추월 상황 아니어도 "1차로를 가끔 통행한다"고 응답한 운전자는 33.4%였습니다. 운전자의 43.5%가 추월 상황 아닌데 1차로를 이용합니다. 세 개 차로가 있는 고속도로에서는 이 수치가 조금 낮아집니다. 1차로를 매우 자주 통행한다는 응답이 7.3%, 가끔 통행한다는 응답이 27.9%로 나타났습니다.
 

'1차로 운전자'의 항변

1차로를 달리는 운전자의 항변도 있습니다. 1차로를 100km/h로 달리고 있는데, 추월하라고 해서 살짝 과속했다가 단속이라도 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 응답자의 80.5%는 1차로에 한해 최고속도를 상향 조정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또 고속도로 분기점과 진출입로 등에 그려져 있는 분홍-초록색 유도선을 참고해 추월차로는 별도의 컬러 레인으로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조언합니다.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도 좋지만, 이런 변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운전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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