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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디지털 성범죄는 더, 그리고 더 약한 피해자를 노린다

N번방 이후 4년이 지났지만…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달 20일, 관내 119 구급차로 이송 중이던 20대 여성을, 구급차에 동승한 30대 남성 소방관이 성추행하고 이를 휴대전화로 불법 촬영까지 했단 사실이 보도됐습니다. 해당 소방서는 이 소방관을 직위해제했고 경찰은 소방관을 준강제추행 및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했습니다.

사람들은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호해야 할 공간인 구급차에서까지 성범죄가 일어났다는 점에 크게 공분했습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 성역은 없다는 점이 충격이었죠.

'N번방 사건' 이후에도 패륜적인 디지털 성범죄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렇게 우리 사회를 크게 떠들썩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뿌리 깊은 디지털 성범죄는 우리나라에서 대체 언제 처음으로 시작된 것일까요?
 

N번방 이전의 N번방…디지털 성범죄의 역사

다크웹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탄생을 1990년대 후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촬영물이 불법으로 복제, 전국으로 유통돼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빨간 마후라*사건이 하나의 변곡점이었습니다. 〈성폭력범죄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촬영물' 관련 규제 조항이 추가된 게 이 사건 직후인 1998년이었으니까요.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도 이때 이후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빨간 마후라 사건: 1997년 미성년자들이 촬영한 성관계 영상이 불법 비디오의 형태로 전국적으로 불법 유통, 거래되면서 큰 사회적 논란을 낳았던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는 융성했습니다. 공고한 성차별, 성인지 감수성 결여라는 문화적 토대 위에서 디지털 성범죄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오히려 더 진화했죠. 워터파크와 공공화장실에서의 연이은 불법 촬영 사건, 소라넷*과 다크웹*에서의 불법촬영물 유통 등 디지털 성범죄는 법의 철퇴를 맞을 때마다 방식과 도구를 바꿔가며 질긴 생명력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가장 취약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착취하는 잔혹함을 보여 왔습니다. 이 뿌리 깊은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최신판 버전이 바로 우리가 4년 전 목격했던 'N번방 사건'이었습니다.

*소라넷: 소라넷은 서버를 해외에 두고 각종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는 회원수 1백만 명의 한때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였다. 해외 서버를 통해 운영진을 은폐하면서 17년간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 왔다. 2015년 수사가 시작돼 관련자 일부가 검거 됐지만 핵심 운영진임에도 징역 4년을 선고받는 등 피해의 규모와 정도에 비해 가벼운 판결을 받았다. 현재는 소라넷에 대한 국내 접속이 완전히 차단돼 있다.

*다크웹: 특별한 도구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암호화된 네트워크. 다크웹은 다양한 검색 엔진에 숨겨져 있으며, 사용자에게 철저한 익명성을 제공한다.

스프 더 스피커 CG
2019년 'N번방 사건'은 강압적으로 찍은 성착취물 유포를 빌미로 미성년 피해자 70여 명을 마치 성 노예처럼 다뤄 공분을 샀습니다. 사회적 분노가 들끓었고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라며 엄정한 경찰 조사를 주문했습니다. 이후 주범 조주빈은 대법원에서 징역 42년형이 확정됐고, 다른 공범들도 잇따라 법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N번방 방지법'* 등 관련 입법도 뒤따랐고요.

*N번방 방지법: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국회를 통과한 법들을 포괄해 일컫는 표현. 성폭법, 형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등 7개 법안이 포함돼 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관심도 옅어졌습니다. 과연 'N번방 사건' 이후,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떻게,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디지털 성범죄는 유의미하게 줄어들었을까요?

N번방 이후 디지털 성범죄는 줄었나?


안타깝게도 최근의 여러 보고서와 통계를 보면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모습입니다. 2022년엔 N번방과 유사한 수법의 '제2의 N번방'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죠. 범행 건수는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찰청 '디지털 성폭력범죄 수사 현황'에 따르면 성폭력처벌법의 통신매체 이용 음란죄로 입건된 피의자 수는 2017년 1,324명에서 2020명 2,300명으로 74% 늘었습니다. 2021년 입건자 수는 4,991명으로 전년 대비 117% 늘었습니다. 대표적인 디지털 성범죄로 꼽히는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의 발생건수 역시 2020년 2,070건으로 전년대비 40.3% 증가했습니다(〈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2021〉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집계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발생 건수도 매년 늘고 있는데, 지난 2021년 한 해에만 1만 353건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피해 접수됐습니다. 피해 유형 중에는 촬영물 유포 불안을 호소하는 비중이 25.7%(2,660건)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불법촬영, 유포, 유포협박 등 접수되는 항목별 디지털 성범죄 피해사례가 대체로 매년 큰 수치로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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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대상도 이전보다 더, 더 어리고 취약한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도입한 선제적 삭제지원을 통해 삭제한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은 2021년에 3만 3,437건, 2022년엔 더 늘어 3만 4,860건에 이릅니다. 피해자의 신상정보나 일상사진 같은 개인정보 유출 건수도 10대에서 폭증(2018년 246건 → 2022년 1만 8,857건, 한국여성인권진흥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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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2022년까지 딥페이크나 몸캠 피싱, 온라인 그루밍*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어 센터가 삭제지원을 한 사례의 연령대도 10대, 20대에 집중됐는데 특히 온라인 그루밍으로 피해를 입어 센터가 삭제지원을 한 건수(2만 2,564건) 가운데 10대 피해 비중이 50% 이상(1만 2,402건)을 차지했습니다.

*온라인 그루밍: 온라인 채팅, 모바일 메신저, SNS를 통해 아동 청소년에게 접근해 피해자를 유인하고 길들여 성 착취 행위를 하고 피해 폭로를 막는 행위.

지난달 19일 열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5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센터 관계자는 "N번방 이후 피해자가 줄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피해발생 현황을 집계해 보면 아동 청소년 피해자 수의 증가와 집단피해의 심화를 확인할 수 있다"고 콕 짚어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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